▲ 곽상신

산업4.0 광풍이 불고 있다. 이를 주제로 하는 토론회가 늘어나고 관련 서적이나 전문가 칼럼이 쏟아진다. 산업4.0에 비해 노동4.0은 미풍 수준이다. 산업4.0과 노동4.0은 독일 정부가 한 묶음으로 만든 개념인데도, 우리 학계나 정부는 산업4.0에만 관심을 보인다. 심지어 대통령후보들조차 산업4.0만 발언하고 노동4.0은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최근 들어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노동4.0을 주제로 대규모 토론회를 열었다는 소식은 그래서 더욱 반갑다. 독일의 노동4.0을 추진하는 과정을 보면, 흥미로운 점이 노사관계에서 발견된다. 국가 수준의 노사정 단위에서 노동4.0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 수준에서 노사정 협의가 가능한 배경은 작업장 수준에서 생산기술과 노동조직 문제를 매우 오랫동안 다뤄 온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노사는 생산기술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가 여전히 크다는 점에서 독일과 대조를 보인다.

자동차 공장을 사례로 들어 보자. 자동차 공장은 컨베이어벨트가 설치된 공장이다.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노동자가 자동차를 조립한다. 이런 작업방식은 독일이나 우리나라나 큰 차이가 없다. 차이는 생산기술을 노동과 결합하는 방식에서 나타난다. 자동차 공장의 대량생산 방식은 노동을 구상과 실행으로 철저하게 분리함으로써 효율성을 실현했다. 노동이 관리직과 생산직으로 갈라진 시점도 대량생산이 시작되면서다.

미국 포드가 공장에 컨베이어벨트를 도입하자 노동자는 반복작업만 하는 단순 노동자로 전락했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타임즈>에 나오는 단순반복 장면은 너무나 유명하다. 컨베이어벨트는 노동자의 자율성을 빼앗았고 기계의 통제는 강화됐다.

노동자는 노조를 조직해 노동시간단축과 임금인상으로 대응했다. 이 시기는 노사관계가 매우 대립적 상황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대량생산 방식이 위기를 거치고 자동화 기술이 도입되면서 기업은 노사관계 전략을 수정한다. 생산기술은 분업노동을 완화하고 노동자 참여를 확대했다. 이런 흐름은 독일뿐만 아니라 흔히 포스트 포디즘으로 불리는 스웨덴의 사회기술체계, 이탈리아의 유연전문화, 일본의 린생산방식에서 공통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분업문제를 해결했다. 국내 자동차 공장이 취한 방식은 거의 유사하다. 서구에서 작업조직 구조를 혁신해 분업 문제에 접근했다면, 우리나라는 힘에 의한 방법으로 분업노동을 해결했다. 독일식 그룹작업이나 일본식 팀작업은 분업노동의 문제를 극복하려는 시도였다.

우리나라 자동차 조립공장의 작업조직은 여전히 포디즘적인 요소를 띠고 있다. 조립공장의 공정이 200공정 이상으로 설계돼 있다. 그런데 노동자의 노동강도는 독일이나 일본에 비해 낮다는 평가가 나온다.

왜 그럴까. 바로 여기에서 독일과 우리나라의 차이가 있다. 우리는 노사가 생산기술을 배타적으로 접근했다. 회사는 생산기술의 효율성만을 고려했다. 회사의 생산기술 엔지니어를 만나 보면, 그들은 여전히 분업노동이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라고 믿고 있다.

노동조합은 분업노동을 노동강도 완화로 대응했다. 현장의 ‘쳐올리기 작업’과 ‘맨아워협상’이 대표적인 근거다. 앞 공정으로 쳐올리기를 하면 10분 이상 여유시간을 갖게 된다. 맨아워협상은 작업속도를 결정하는 사이클타임과 노동자의 배치인원을 결정하는 협상이다. 신차가 출시되면 공식적으로 하는 단체교섭이다. 신차 출시를 앞둔 시점에서 진행되는 맨아워협상은 노조의 교섭력이 크게 작용한다. 그래서 회사 기대치보다 낮은 수준에서 편성효율이 결정된다. 그만큼 인원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노동강도는 떨어진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생산기술과 노동이 결합하는 방식은 노사 간에 상호배타적이고 구조적 혁신과 거리가 먼 방식으로 전개돼 왔다.

이처럼 산업4.0과 노동4.0에서 노사관계 행위주체자 스스로 방해자가 되고 있다. 행위주체자가 생산기술에 대한 인식차이를 줄여 나가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워크인연구소 연구실장 (imksgo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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