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에는 다양한 형태의 프리랜서가 존재한다. 이들 대다수는 방송국의 업무 지휘와 감독을 받으면서도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고용안정도 먼 얘기다. 프로그램 존폐가 이들의 근로기간을 결정한다. 그런 상황에서 노동위원회가 프리랜서 PD의 근로자성을 인정해 관심이 모아진다. 방송국 다른 직종과 노동조건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주급, 근로제공에 대한 대가=지난해 6월 프로그램 폐지로 계약해지된 프리랜서 PD A(40)씨는 최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잇따라 근로자성을 인정받았다. A씨는 9일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10년간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는데 부당해고를 당해 억울했다”며 “프리랜서는 근로자가 아니란 이유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는데, 근로자성을 인정받아 기쁘다”고 말했다.

A씨는 2007년 10월30일부터 2014년 9월18일까지 계약서 없이 교통방송(tbs)에서 프리랜서 PD로 일했다. 2014년 9월19일 이후 A씨는 방송국과 3회에 걸쳐 업무위탁계약을 맺었다. 그러던 중 방송국은 청사 이전을 이유로 A씨가 담당하던 프로그램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방송국은 지난해 5월16일 A씨에게 그해 6월3일자로 계약기간이 종료된다고 통보했다. A씨는 서울지노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다.

프리랜서인 A씨를 근로자로 볼 수 있느냐가 쟁점이 됐는데, 서울지노위와 중앙노동위는 근로자성을 인정했다. 방송국이 결정한 아이템에 따라 주간업무회의에 참석해 프로그램 제작을 논의하는 등 업무수행 과정에서 방송국의 상당한 지휘·감독이 이뤄졌다는 판단에서다.

중앙노동위는 A씨가 받은 보수의 성격에 대해 “근로시간과 무관하게 프로그램 제작 횟수에 상응해 주급으로 급여를 수령했으나 이는 근무시간과 노동력을 고려해 결정됐다”며 “보수는 일의 완성이라는 결과에 대한 것이기보다는 근로제공 자체에 대한 대가로서의 성격이 훨씬 강하다”고 판단했다.

◇“방송국과 종속노동관계”=서울지노위와 중앙노동위는 A씨의 무기계약직 인정 여부에서 판단을 달리했다. 서울지노위는 A씨가 성격이 비슷한 프로그램을 이어 제작했지만, 프로그램 제작이나 방송을 위해 매번 새로운 기간의 정함이 있는 근로계약을 체결해 왔다고 봤다.

반면 중앙노동위는 “A씨가 2007년 10월30일부터 객원PD로 근무했기 때문에 계약기간 2년을 초과한 2009년 10월30일부터 기한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전환됐다”며 “청사 이전에 따른 프로그램 중단을 이유로 근로계약을 해지한 것은 부당해고”라고 판단했다.

중앙노동위는 △프로그램 중단 후 5개월 후 재운영 △‘다음 개편 전일까지’라는 업무 종료시점의 불확실 △10년간 업무 중단 없이 조연출과 PD 업무 수행 △객원PD 업무의 필요성 존재 등의 이유로 볼 때 A씨가 수행한 프로그램 제작과 부수업무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예외조항인 한시사업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A씨는 “방송작가나 조연출·PD처럼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프리랜서가 많다”며 “저 역시 부당해고 구제신청 과정에서 기간제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프리랜서들이 이번 판정의 영향으로 근로자성을 인정받고 법의 보호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신선아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방송국 프리랜서는 외주업체 소속 유무와 상관없이 프로그램 제작과 방영에서 방송국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일한다”며 “종속노동을 제공하는 근로자임에도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 변호사는 “대부분의 방송국 프리랜서가 독자적 업무를 수행할 수 없고, 방송국에서 업무 지시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사례는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며 “당연히 인정돼야 할 프리랜서의 근로자성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판정”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