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2008년 6월 말 민주노총은 비상중앙집행위원회를 언론노조가 입주한 프레스센터 18층 회의실에서 열었다. 중집 장소를 굳이 프레스센터로 택한 건 5월 말부터 한 달째 타오르던 ‘광우병 촛불시위’에 결합하기 위해서였다.

오후 2시에 시작한 회의는 저녁이 되면서 이명박 대통령 ‘퇴진’을 내걸 건지를 놓고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공전했다. 한쪽에선 ‘즉각 퇴진’을 내걸자고 하고, 다른 한쪽에선 이제 임기 6개월 지난 대통령 퇴진을 내걸고 싸웠다가 관철되지 않으면 조합원들에게 누가 책임 질 거냐며 대통령 ‘사과’ 정도로 가자고 했다. 회의장에선 해가 어스름해질 때까지 공방이 오갔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18층 창문 밖을 내다보니 벌써 10~20대 청년들이 촛불을 들고 꽤 많이 모였다.

결론 안 날 회의장을 나와 촛불에 합류했다. 10대 청소년들은 저마다 A4 용지에 ‘MB OUT’이라고 써 붙이고 나왔다. '꼰대'들이 앉아서 ‘퇴진과 사과’ 사이를 오갈 때 젊은 진보는 ‘OUT’이라며 그 모든 것을 덮어 버렸다. OUT이란 구호가 내게로 향하는 것 같아 내내 부끄러웠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28일 3면에 박근혜 전 대통령 영장실질심사를 맡은 판사를 향해 '검찰 기록만 1만쪽 … 43세 강부영 판사가 영장심사'라는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다른 언론도 박 전 대통령을 맡은 영장담당판사가 셋 중 가장 어리다고 보도했다. 담당판사가 40대 초반임을 강조해 제목에까지 반영한 이유가 뭘까. ‘새파랗게 어린 게 뭘 알아?’ 하는 심리가 깔려 있지 않으면 이런 제목을 굳이 달 이유는 없어 보인다.

조선일보가 의도했든 안 했든 이런 흐름은 박 전 대통령 구속 직후 기자간담회를 연 이경재 변호사의 입에서도 나왔다. 이경재 변호사는 법원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영장전담판사 중 막내인 강부영 판사가 심사를 맡았다. (전직 대통령 구속 여부 판단이라는) 복잡한 문제를 풀 능력이 없는 학생에게 ‘고등수학’ 문제를 풀라고 시킨 꼴”이라고 공격했다.(한국일보 4월1일자 4면) 그나저나 이분은 박 전 대통령 변호인이 아니라 최순실씨 변호인인데, 박 전 대통령 구속 직후 자기가 왜 기자간담회를 열었을까. 이런 걸 자꾸 뉴스라고 써 주니, 이런 이들이 입을 연다.

박 전 대통령 수감기사도 마찬가지다. '샤워기 달린 3.2평 독방 … 1천440원짜리 식빵으로 첫 식사' 같은 제목의 기사가 일간지 3면 머리기사 감인지 모르겠다. 동아일보는 이 기사에서 ‘주로 미군 수감했던 넓은 방 배정’ ‘하루 2만원까지 음식물 살 수 있어’라고 작은 제목을 달았다. '올림머리 핀 뽑고 서울구치소행'(매일경제 4월1일자 3면) 기사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관음증을 자극하는 기사는 방송도 한결같았다. YTN은 4월1일 내내 서울구치소 식단을 소개했다. YTN은 "박 전 대통령이 식사를 마친 뒤 식기를 제 손으로 설거지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동안 동아일보가 주한미군이 범행을 저지르고도 우리 감옥에서 일반인보다 넓은 방을 사용해 왔다는 사실을 얼마나 충실히 보도해 왔는지 묻고 싶다. YTN이 얼마나 재소자 인권을 위해 의미 있는 보도를 해 왔는지 묻는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대선 보도를 보면 언론들은 일희일비하는 여론조사 결과와 후보들의 막말을 받아쓰기에 여념이 없다. 정책을 비교하는 보도는 선거 종반에도 나오기 어려워 보인다. 이미지 선거로 또 이상한 대통령을 만드는 데 언론이 한몫 단단히 할 것 같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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