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눈이 녹아 물이 흐르던 아스팔트 위에서 촛불의 저항이 넘실대던 것이 얼마 안 된 일 같은데, 이제는 봄비가 내린다. 박근혜 구속수감, 세월호 인양, 그리고 주요 정당들의 경선 결과를 담은 소식들이 TV를 오르내린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너무 흉측해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는 것도 두려웠는데, 이제는 요란한 헤드라인들이 소소한 정보들로 재구성돼 눈과 귀에 자연스레 담기기 시작했다. 세상에 대한 환멸과 그로 인해 얻은 내면의 상처가 조금씩 옅어지는 기분이다.

내 또래 동료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탈조선 말고는 답이 없다고 말하던 젊은 사람들이 어색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작은 희망과 기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크고 작은 고통을 겪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연결되고 상처의 치유와 회복을 거쳐, 희망이나 기대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때 진정한 변화와 돌이킬 수 없는 개혁이 이뤄질 것이다. 그렇다. 5월9일은 장미대선이 아니라 촛불대선이다.

대선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난제가 너무나도 많다. 반복해서 이야기하지만 나는 실업문제를 포함한 먹고사는 문제와 인간의 존엄에 대해 강조하고 싶다. 고용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실업률은 매년 치솟고 있다. 이제 막 경제활동에 뛰어드는 청년, 그리고 만성적인 고용·경력의 단절 위험에 빠진 여성, 그리고 노동시장에서의 조기 이탈로 내몰리는 중·장년층이 직격탄을 맞는다. 경제의 위기, 그리고 분배의 실패가 가져다주는 고통은 부모와 자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지난 시기 10여 차례 발표된 정부의 청년실업 대책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결과론적으로는 사실이다. 청년실업 대책이 수차례 반복되는 동안에도 청년실업 문제는 꾸준히 악화돼, 지금의 관점으로 10년 전을 돌아보면 ‘다들 취업이 잘됐네’라는 말이 절로 나오기 때문이다. 정부부처 관계자들도 난색을 표한다. 청년실업이 한국의 경제·산업·교육·문화·복지 등을 아우르는 구조적이고 심층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중·장기적 전망과 단기적 대책을 병행하고 있음에도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청년실업 문제를 진단하며 수요 측면에서는 ‘경제위기와 고용구조의 변화에 따른 신규인력 수요 저하’, 공급 측면에서는 ‘고학력화와 노동시장 이중구조로 인한 인력수급 불균형’ 문제를 지적한다. 이론적으로는 합리적일지 모르나 현장의 시선으로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거칠게 해석하면 경제성장률이 갑자기 높아지거나, 청년들이 갑자기 대학을 안 가고 중소기업을 선호하는 현상이 발생하거나, 두 가지 사건이 동시에 발생해야만 청년실업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애초 청년실업을 진단함에 있어 ‘해결할 수 없는 과제’로 설정해 놓고 대책을 쥐어짜 내려니 답이 안 나오는 거다.

청년실업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과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대책을 위한 대책이 아니라 진짜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예컨대 청년 니트를 ‘예비 취업자’가 아닌 독립적인 사회정책 대상으로 설정하고, 정책목표를 당장의 취업률이 아니라 정책 참여자의 생활안정과 사회참여 역량 강화로 설정한 유럽연합의 청년보장제도(Youth Guarantee)는 우리 사회에 영향력 있는 참조점이 된다. ‘취업준비’가 하루라도 빨리 끝내야 하는 부끄러운 시간이 아니라, 스스로의 존재를 새롭게 탐색하고 사회와의 성숙한 만남을 모색하는 격려와 지지의 시간으로 새롭게 규정돼야 한다.

복잡한 이야기는 나중에 천천히 다양한 방법으로 이어 가도록 하고, 우선은 기대와 희망을 말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은 함께 소리 내어 읽어 주시라. 부끄러워하지 마시고. “청년실업은 우리 사회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청년유니온 위원장 (cartney13@hanmail.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