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금융권 성과연봉제 확산을 위한 꼼수”라는 비판을 받은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금융사지배구조법) 시행령 개정작업을 중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입법예고기간이 끝난 상황에서 국회 논의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법 위의 시행령”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시행령 개정을 강행하려 했던 때와 대비되는 모습이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금융당국이 성과연봉제와 관련한 '정치적 판단'을 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입법예고 종료 후 후속절차 '스톱'

6일 노동계에 따르면 금융위는 지난 4~5일 금융사지배구조법 시행령 개정작업을 유보하겠다는 뜻을 국회와 금융노조에 통보했다. 시행령 입법예고기간은 올해 2월24부터 이달 5일까지였다. 통상 입법예고기간이 끝난 시행령은 규제개혁위원회와 법제처 심사를 거쳐 국무회의에 상정되는데 이 과정을 당분간 진행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문제의 시행령 개정안은 성과연동 보수 이연지급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성과급제를 확대하려는 속내가 깔려 있다. 현행 시행령은 단기성과 추진이 투자자 손실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임원과 금융투자업무담당자에 한해 성과연동 보수를 '3년 이상' 이연해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개정안에는 성과연동 보수 이연지급 대상을 △대출·지급보증 △어음의 인수·할인 △팩토링 업무 △보험상품 개발 △보험계약 인수 업무 △증권 인수 업무 △매출채권의 양수 △신용카드의 발행 업무 △그 밖에 단기성과보수를 지급할 경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 업무로 확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금융노조는 입법예고기간에 시행령 개정에 반대한다는 의견서를 금융위에 제출했다. 노조는 금융위 항의방문에서 “금융업종 종사자 대부분을 성과급제 대상으로 못 박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금융위는 “성과급제 대상을 명확히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회도 움직였다. 시행령 개정안과 반대되는 내용의 금융사지배구조법 개정안을 발의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같은당 이학영 의원이 금융위에 반대의견을 전했다.

박근혜 탄핵·조기 대선 영향 준 듯

금융위는 입법예고기간 종료를 하루 앞둔 이달 4일 이학영 의원에게 “대선 때까지 시행령 개정 추진을 보류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노조에도 “국회의 입법 논의를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는 박용진 의원이 지난해 10월 발의한 금융사지배구조법 개정안이 상정돼 있다. 성과연동 보수 지급대상을 대통령령으로 정하지 못하도록 모법에 '임원과 금융투자업무담당자'로 한정해 명시하자는 내용이다.

같은해 7월 정부가 금융사지배구조법 시행령을 제정하면서 금융회사 임원과 직원 전체에 성과연동 급여를 적용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만들었는데, 이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였다. 당시 금융위는 시행령 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뒤 “일정 규모 이상 금융회사 임직원을 대상으로 성과보수체계를 도입해 성과중심문화 확산의 계기가 됐다”고 발표했다.

그랬던 금융위가 논란이 된 시행령 개정작업을 중단하고 국회 논의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지난해 노조 파업을 비롯해 금융·공공부문 성과연봉제 논란이 한창일 때 보란 듯이 문제의 시행령을 제정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노조 관계자는 "성과주의라면 무조건 밀어붙였던 금융위 태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라며 "탄핵된 박근혜 정권의 핵심 정책이 성과연봉제였고, 주요 대선후보들이 성과연봉제를 반대하는 정치적 상황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사지배구조법 국회 논의가 조만간 구체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여 입법예고기간 종료 후 통상적으로 하던 후속절차를 미룬다는 의사를 국회와 노조측에 전달했다”며 “보통 2개월마다 국회가 열려 대선 이후라고 한 것이지 정치적인 의도가 담긴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는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성과연봉제에 대한 금융위 입장은 기존과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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