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우리가 이런 꼴을 보려고 촛불을 들었나 싶네요.” “역시 곰은 재주만 넘어야 하는 존재인가 봅니다.” “딱 죽 쒀서 개 준 꼴이지요.” “간단하게 표현하면 속은거지.” “아니야, 우리 능력의 한계지 뭐.” 요 며칠 노총 내외에서 나오는 말들이다. 그 수위와 양이 커져만 간다.

지난 4일 주요 5당 후보가 모두 확정됐다. 스스로 보수를 자임하는 후보부터 노동자 중심 정당까지. 다음달 9일 19대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할 각 정당 후보가 확정됐다. 기대가 많(았)다. 9년(햇수로는 10년), 노동자들과 평범한 시민들의 고통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양극화’ ‘노동개악’만으로는 설명하기 부족한 어려운 날들이었다. 그래서 바꾸자고 했다. 그리고 당당히 농민·시민·노동자가 나섰다.

그런데 정작 5월9일 선거에 나선 후보자들은 생각이 달라 보인다. 내놓은 공약들 면면을 뜯어보자니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촛불의 주역이었던 노동자와 농민·시민들이 처한 상황을 들어본 적이나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공약(空約)뿐이다. “진짜 우리가 이런 꼴을 보려고 유난히도 추웠던 그 겨울 광화문으로 나갔던가”하는 자조와 회한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아직 공약이 정리되지도 않았지 않느냐, 정당의 방향을 보고서 판단하더라도 늦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정말이지 그랬으면 좋겠다.

솔직히 지금까지 내놓은 공약과 보여 준 과정은 형편없다. 그래서 오늘까지 봐 온 실망스런 모습이 5월9일 이후에도 크게 다르지 않겠냐 하는 의심은 오히려 합리적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한국노총에서는 19대 대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전체 조합원들의 의사를 물어 지지후보를 정하고 확정된 후보자를 위해 전 조직적인 힘을 모아 선거운동을 펼칠 예정이다. 지난주에는 지지후보자에 대한 사전 평가작업으로 각 예비후보자들에게 노동정책 비전을 포함한 노동관련 세부 정책과제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참담했다. 지난달 27일로 예정된 마감시간을 지킨 후보자는 심성정 정의당 후보가 유일했다. 나머지는 시간을 어기거나 아예 제출하지 않았다.

언론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측은 아예 기일 내 제출 의사조차 밝히지 않았다. 같은달 30일 한국노총은 후보자들이 보내온 답변을 내용으로 ‘대선 예비후보 노동정책 토론회’를 열었다. 당일까지도 문재인 후보측은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않고서, 정작 토론회에서는 “공약은 말이 중요한 게 아니다”며 여론 1위라는 거드름을 피웠다.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다.

다른 후보자들은 아예 논하기 부끄러울 수준이다.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의 후보 답변은 부실하기 그지없다. 특히 노동기본권 관련 공약이 전무하거나 스스로 밝힌 공약을 보더라도 기본권에 대한 이해 수준은 평가자체가 부끄러울 정도다. “귀족노조가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자유한국당 후보 머리에는 과연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노동자가 있는 것일까.

자연스레 노동자들과 평범한 시민들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 실력이 이 정도이기 때문에 무시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시민혁명이다, 명예혁명이다’는 치켜세움에 너무 안주한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이렇게 자조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는가.

5월9일까지 시간은 충분하다. 나름의 답은 이러하다. 지난겨울 이상으로 노동자와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새로운 정부를 만들어 내는 데 참여해야 한다. 정권을 바꾸는 게 다가 아니라 노동자와 시민을 위한 진정한 정권교체가 절실하다. 우리 모두는 노동기본권을 이해하고 노동자를 존중하는 대통령을 원하지 않았나.

남은 한 달여가 그래서 중요하다. 노동자의 힘을 보여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후회한다. 거대했던 희망만큼 앞으로가 더 절망적인 시간일수도 있다. 정권이 그저 주어진 게 아니란 걸 보여 줘야 한다. 이 같은 목표 달성을 위해 한국노총은 4월 내내 100만 조합원 총투표 성사를 위해 전 조직적인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벚꽃이 질 때쯤이면 분명 깨달음이 있을 것이다. 깨달은 후보자가 노동자 후보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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