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자은 기자

“인천공항 외곽 청소를 하는 오후 1시30분부터 두 시간 동안 화장실을 못 가게 해요. 청소노동자가 화장실에 들어간 시간을 관리자가 재서 8분 걸렸다고 경위서를 쓰라고 했어요. 다른 직원은 잠시 약을 먹는다고 자리를 비웠더니 남자 관리자가 '입을 벌려 봐라, 진짜 먹었나 확인해 보겠다'고도 했어요. 수치스럽죠. 40대 관리자는 60대 직원들에게 늘 반말에 무시하고…. 사람 취급 받으면서 일하고 싶어요.”

인천국제공항 청소노동자 오순옥씨의 말이다. 용역업체 관리자들의 반말과 폭언, 인권유린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인천공항 청소 용역업체 세 곳 가운데 한 곳이 이달 1일 변경되면서 직원 6명에게 면접 불합격을 통보해 고용불안에 떨고 있다.

인권 사각지대 ‘용역’
최저임금 미지급 수두룩, 휴게공간도 없어


5일 공공기관 청소노동자들이 국회의원들과 직접 만나 직접고용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간접고용 노동자로 일하는 현실을 전달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공공운수노조 조합원인 청소노동자들이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실에서 집담회를 열었다. 오순옥씨는 용역노동자를 직접고용해야 문제가 풀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용역노동자의 임금은 예산 항목에서 사업비로 책정된다. 임금이 아니기 때문에 동결과 삭감이 수시로 이뤄진다. 국립국악원 청소노동자들은 이날 파업에 들어갔다. 최저임금도 안 되는 시급 때문이다. 올해 국립국악원 예산이 동결돼 최저임금을 채워 줄 수 없다는 이유를 댔다고 한다. 국악원의 미화원 시급은 6천250원, 보안직은 6천170원이다. 올해 최저임금 6천470원에 미달한다.

이미한 노조 국립국악원분회장은 “용역노동자 인건비를 사업비로 취급하고, 최저임금도 안 주는 게 말이 되느냐”며 “노동위원회의 조정이 결렬돼 오늘 파업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청소노동자들의 휴게공간을 마련하지 않아 화장실 한쪽에서 밥을 먹는 사례도 있다.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 이연순씨는 “건물은 계속 짓고 청소할 공간은 늘어만 가는데 우리가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계획은 없는 것 같다”며 한숨지었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을지로위원회에서 지속적으로 현장을 방문해 휴게공간 설치 필요성을 환기시키겠다“고 말했다.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노조와 시민·사회단체가 연계해 청소노동자들의 휴게공간을 마련하지 않은 공공기관 리스트를 해마다 공개해 여론의 압력을 넣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겠다”고 제안했다.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은 그림의 떡

정부는 2011년 공공부문 용역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겠다며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을 발표했지만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정부는 올해 경영평가에 용역근로자 보호지침 준수 여부를 경영평가에 반영하겠다고 했지만 실효성은 크지 않다. 배점이 100점 만점에 0.2점에서 0.4점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권한과 책임의 분리 문제가 현장에서 누적된다. 노동조건과 직결된 휴게실 설치나 인력충원은 용역회사가 결정할 권한이 없다. 한 청소노동자는 “원·하청 사이에서 오가는 탁구공 신세”라고 한탄했다.

이학영 의원은 “성장 위주의 효율성을 우위에 둔 경영평가를 사람 중심으로 고쳐야 한다”며 “고용지수가 경영평가에 높은 배점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바꾸겠다”고 말했다. 같은 당 김종민 의원은 “공공부문 일자리를 새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 공공부문 일자리를 개선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정책적 공감대가 있다”고 밝혔다.
 

▲ 공공부문 청소노동자들이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함께 5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공공부문 청소노동자 직접고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청소노동자 직접고용한 국회·서울시·광주시

최근 국회(203명)와 서울시(1천367명)·광주시(896명)는 간접고용 청소·시설관리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했다. 광주시는 올해 2월 청소노동자들을 공무직으로 전환했다. 광주시청 청소노동자 이매순씨는 “전환되기 전에는 직접고용하면 예산이 굉장히 많이 소요될 거라거나 노조 요구사항이 너무 많아질 것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용역회사로 나가는 비용을 제하니 예산이 절감됐다”며 “2007년 해고돼 시청에서 끌려 나왔는데 10년 만에 정규직이 됐다”며 웃었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은 “용역노동자를 직접고용한 세 곳의 사례를 살펴보니 오히려 예산을 절감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그러나 아직까지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의지를 보이지 않는 한 직접고용 전환이 너무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새롭게 들어서는 정부가 직접고용을 가로막는 법·제도를 개선해야 현장에서 적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가 청소노동자를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한 것은 희망적”이라며 “국회 사례를 모델로 삼아 전 사회가 변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조성덕 노조 부위원장은 “공공부문부터 정규직화하겠다는 공약은 대선 때마다 나오지만 이번엔 지켜지길 바란다”며 “공공기관부터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아야 환경노동자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류남미 노조 전략조직팀장은 “청소·시설관리 노동자를 직접고용한 국회·서울시·광주시 사례를 통해 예산이 직접고용에 문제가 되지 않았고, 오히려 노동조건과 고용불안 문제가 상당 부분 해소된 것을 확인했다”며 “다른 공공기관까지 확산해 나가자는 논의가 이제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조는 22일 오후 서울 보신각에서 세종로 공원까지 행진하며 청소노동자의 요구를 알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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