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선아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고용노동부에 임금체불 진정을 한 어느 방송작가가 조사를 받으러 가기 전 상담을 받으러 왔다. 근로감독관이 방송작가는 프리랜서라며 노동자라는 증거를 내라고 하면 무슨 자료를 줘야 하는지와 같은 여러 걱정이 많았다.

방송작가는 방송프로그램 대본을 작성하는 직업군이다. 경력에 따라 전체 대본을 주도적으로 담당하는 메인작가, 꼭지 대본을 쓰며 메인작가를 보조하는 서브작가, 자료조사와 수집, 진행자, 촬영장소 선정 및 섭외, 복사 및 잔심부름 등을 담당하는 막내작가로 구분된다. 이 방송작가는 막내작가였다. 그녀가 받던 급여는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으나 심지어 그중 일부가 체불돼 노동부까지 가게 된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방송작가들은 프리랜서라 불리우며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고 있다. 그러나 소위 프리랜서라 함은 일정한 회사에 전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계약을 맺으며 독립적으로 일하는 1인 사업자를 지칭한다. 진정한 프리랜서 형태(1인 독립사업자 형태)로 일하는 방송작가는 소수에 불과하다. 다수의 방송작가들은 사용자의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으며 종속적인 관계에서 노동을 제공한다.

이는 언론노조가 635명의 방송작가들(메인작가 42명, 서브작가 296명, 막내작가 297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2016년 발표한 방송작가 노동실태조사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방송작가들의 주당 평균 근무일은 5.63일(6일 근무 41.9%, 7일 근무 13.6%),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53.8시간,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62.4%다.

상당수 방송작가들이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있고, 주 5일 이상, 주당 50여시간이 넘게 사용자의 지휘·감독하에서 근무하고 있다. 근로관계 실질에 따라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노동관계법상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지위에 있는 것이다. 특히 막내작가들의 대부분은 노동자성 논란이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명백히 종속관계에서 노동을 제공하고 있다. 그럼에도 실태조사에 따르면 막내작가들 급여 시급은 3천880원에 불과했다. 2016년 최저시급 6천30원에 현저히 미달한다.

사용자들이 방송작가들의 위와 같은 근로실질을 무시하고 프리랜서라 부르며, 프리랜서 계약을 강요하는 궁극적 이유는 당연히 각종 노동관계법상 사용자 책임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FD·PD·촬영·기술스태프·아나운서 등의 다른 방송종사자들 역시 소위 ‘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하기도 하나, 실제로는 사용자와의 종속관계에서 노동을 제공하며 비정규직 형태로 근무하는 경우가 상당수 존재한다.

그러나 노동부는 이러한 사용자들의 탈법행위를 단속하지 않는다. 노동부는 특수고용노동자 관련 진정이나 고소가 접수되면, 법리적 논란이 있으니 법원 소송을 통해 해결하라며 취하를 종용하기 일쑤다. 노동자측에 여러 입증자료를 요구하며 사실상 노동부 진정을 취하할 것을 압박하거나, 증거불충분으로 사건을 종결하는 경우도 많다. 위 방송작가의 걱정이 단순 기우만은 아닌 것이다. 덕분에 사용자들은 프리랜서라는 미명하에 부당해고도, 장시간 근로 강요도, 최저임금 위반도 아무런 제재 없이 자유롭게 행하고 있다. 이에 “일할 땐 막내, 자를 땐 FREE! 해서 프리랜서냐?”는 자조 섞인 농담이 나오기도 한다.

특수고용노동자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려면 법·제도 개선 같은 제반조치가 필요하다. 그런데 노동부는 노동관계법 준수와 적용을 통해 노동자들의 기본권(인간 존엄성 및 노동 3권 등) 보호의무를 이행할 궁극적 책임이 있는 국가기관이다. 법·제도 개선 전이라도 상당수 방송작가들처럼 판례 법리에 따라 노동자성이 인정될 수 있는 경우라면 적극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언제까지 이들을 프리랜서라는 허울 아래, 노동법 사각지대에 방치해 둘 것인가.

부디 노동부는 지금부터라도 프리랜서 혹은 특수고용 운운하며 "소송으로 해결하라"는 식의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던 이제까지의 행태를 중단하고, 적극적인 조사와 근로감독권 행사를 통해 노동관계법상 정당한 보호를 받아야 할 노동자인지를 직접 조사·판단하고, 적극적 시정조치를 취함으로써 기본권 보호기관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바란다. 물론 위 방송작가 임금체불 사건에서도 당연히 그러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