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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없는 세상
▲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박근혜의 탄핵과 구속으로 온 봄이다. 2017년 박근혜 없는 봄이 우리 앞에 와 있다. 박근혜는 청와대에 머물던 대통령에서 이제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미결수 503번으로 신분이 달라졌다. 이 박근혜 없는 세상, 이 나라 국민이 광장과 거리에서 촛불시민으로 행동해서 쟁취한 세상이다. 1천500만명이 넘는 국민이 외쳤던 ‘박근혜 퇴진과 구속’의 날이 왔다. 촛불집회가 서울 광화문광장과 전국 주요 도시 광장에서 20차례 열리고서 대한민국 국민 앞에 와 있다. 박근혜 없는 오늘은 국민 승리의 날이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촛불시민으로 참여했다. 그렇다고 오늘이 노동자 승리의 날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촛불집회의 주최자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의 주요 참여단체인 민주노총조차도 그렇게 말하지 못한다. 이 박근혜 없는 세상은 여전히 노동 없는 세상으로 이 나라 노동자들 앞에 와 있을 뿐이다. 광장과 거리에서 노동자는 뜨겁게 ‘박근혜 퇴진과 구속’을 위해 행동했지만 말이다. 민주노총 등 노동단체 깃발 아래 수많은 노동자가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촛불의 광장과 거리에서 노동자는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행동했던 것이고 거기서 촛불을 든 다른 시민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가 외쳤던 구호도, 그가 행진했던 장소도 다르지 않았다. 촛불시민으로서 행동했던 것이고, 그렇게 촛불광장은 국민의 광장이었지 노동의 광장은 아니었다. 그러니 이 박근혜 없는 봄이 여전히 노동 없는 세상인 것에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그저 박근혜만 탄핵되고 구속됐을 뿐이다. 그래서 이 국민 승리의 날에 이렇게 박근혜를 보내고서 그를 대신하는 새로운 권력의 선출을 위해서 모두가 몰두하고 있어도, 온통 노동 없는 정치가 판을 쳐도 노동자를 국민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2. 사실 거창하게 노동정치를 두고서 노동 없는 세상이라고 한탄할 일도 아니다. 그러기에는 이 나라 노동자에게 노동정치는 너무 멀다. 노동자당도, 노동자 정치세력화도 까마득한 일이니 말이다. 한 나라의 최고권력을 두고서 벌이는 노동정치는 우리 노동자에게 멀어도 너무 멀다. 그저 민주의 당이니 국민의 당이니 하는 대선주자들이 말하는 노동정책이 무엇인가 귀 기울일 뿐이다. 그들이 내세우는 노동정책이 박근혜의 노동적폐를 청산하는 것이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오늘 우리 노동자에게 노동정치는 너무 먼 것이고, 그걸 두고서 나는 노동 없는 세상이라고 한탄하고 싶지도 않다. 그보다 한참 낮은 수준의 것이라고 말해야 하나. 이 세상, 이 인간의 대지에서 사람이 근로계약을 체결하고서 노동자가 돼서 노동하는 사업장(작업장) 수준에서조차 노동 없는 세상이라고 나는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이 자본의 세상은 노사 당사자가 체결하는 고용계약이 불공정할 수밖에 없다고 인정하고서 노동법질서를 선언했다. 노사 당사자가 대등하게 임금 등 노동조건을 정하도록 단체와 대표 또는 집단으로 사용자 자본에 맞설 수 있도록 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자주적으로 노동조합을 조직해서 교섭과 쟁의로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근로기준법은 근로자대표나 과반수로 취업규칙 작성 및 변경 등에 대응하도록 했다. 이 나라에서 법은 노동자를 근로자로 명명하고서 사용자와 개별적으로 상대하는 경우 노동자권리를 확보하고 지킬 수 없다고 인정하고서 노동법을 통해서 이렇게 단체와 대표 또는 집단으로 자신의 권리를 확보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런데도 우리 노동자가 일하는 사업장 세상은 여전히 노동 없는 세상이다. “근로자는 자유로이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있는” 것이라서(노조법 5조 참조) 노동조합 가입을 강제할 수 없는 것인데, 유감스럽게도 이 나라에서 노조 조직률은 10% 안팎에 불과한 지경이다. 그러니 오늘은 이 나라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서 사용자를 상대로 자신의 권리를 확보하고 지켜 낼 수 있다고 기대할 수가 없다.

3. 촛불시민혁명 이후 이 박근혜 없는 봄에 1987년 노동자 대투쟁에서처럼 노조 설립과 가입이 폭발할 것이라는 조짐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나머지 90%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없이 자신의 권리를 확보하고 지켜 내야 하는데, 어째야 하는가. 문재인을 비롯한 대선주자들은 노동회의소 설립을 정책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됐다. 그러면 되는가. 노동회의소가 사업장에서 사용자를 상대로 노동자를 대표해서 노동자권리를 확보하고 지켜 내겠다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원칙적으로 사업장 밖에서 노동자단체로 논의되고 있다. 노조의 설립과 가입을 강제할 법은 없고 노조 없이도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임금 등 근로조건을 정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한 사업장 노동자들이 노조 아닌 노동자단체로 강제하거나 집단적으로 사용자를 상대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의 작성 및 변경에서 과반수노조가 있는 경우에는 과반수노조의, 그 노조가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 과반수의 의견을 듣고, 그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에서는 그 동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94조). 과반수노조, 근로자과반수 등으로 사용자를 상대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의 노동자는 감히 사용자를 상대로 노동자권리를 높은 수준에서 확보하고 있지 못한 것일까. 근로자 1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위와 같은 방식으로 취업규칙을 통해서 근로조건을 작성·신고하도록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과반수노조가 없는 사업장의 경우는 근로자 과반수로 사용자에 맞서야 한다는 것인데, 근로자 과반수는 조직되지 않는 근로자의 과반수인 것이고 노동조합도 없는 사업장 노동자가 사용자의 동의 요구를 거부하기가 어렵다. 노동자가 개별적으로는 사용자에 맞서 자신의 권리를 확보하고 지킬 수 없기에 노동조합을 조직해서 활동하도록 한 노동기본권 보장의 취지를 떠올린다면 그 노동조합도 없는 사업장 노동자들이 사용자에 맞서 자신의 권리를 확보하고 지켜 낼 수 있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것이다. 그런데도 한 사업장 전체 근로자의 근로조건 및 복무규율 기준에 관한 취업규칙을 사용자가 작성·변경할 수 있도록 해 놓고, 그 작성·변경에는 과반수노조 없는 경우 근로자 과반수의 의견을 들으면 되고 불이익변경에는 그 동의를 거치도록 근로기준법은 규정한 것이고 이 근로기준법이 이 나라를 노동 없는 세상을 만들었다. 이 근로기준법이 노조 없는 90% 노동자들을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임금 등 근로조건에 따라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예로 전락시켰다. 뭐 과반수노조가 있는 사업장의 노동자라고 반드시 다르다는 말하는 건 아니다. 우리의 경우 노조가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있어도, 조합원 노동자의 근로조건 중 많은 사항이 사용자가 별도로 정하는 제 규정인 취업규칙에서 정하도록 한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과반수노조가 있어도 노동 없는 사업장인 것은 다를 것이 없다. 어쨌건 이런 경우는 대표가 해 준 것이니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탓할 수 있겠다. 하지만 과반수노조가 없는 사업장 노동자에게는 우리 노동법은 그야말로 사용자의 먹이로 방치해 놓았다. 사업장에서 근로자대표로 근로자참여 및 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은 노사협의회의 근로자위원을 두고 있다. 이른바 경영참여를 위해서 이런 제도를 두고 있다는 것인데, 노동현실은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이 노동자를 대표해서 회사 경영에 직접 관여하는 사례는 찾기 어렵다. 간혹 노조 없는 사업장에서 임금 등 근로조건에 관하여 노사협의회에서 정하는 기이한 사례를 찾을 수 있을 뿐이다. 노사협의회를 독일 등 노사관계 선진 나라들에서 두고 있는 회사 경영참여를 위한 기구처럼 주장하기도 하는데, 한마디로 어처구니가 없다. 우리의 노사협의회는 노동자대표기구로서 단체성도 부여해 놓지 않았다. 그러니 노동자대표기구로서 사용자를 상대로 해서 노동자 이해를 대변한다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4. 우리 노동자에겐 사업장에서 자신들을 대표하는 노동자단체가 없고, 그것이 이 나라에서 사용자 자본이 사업자의 주인으로 노동자를 노예로 부리고 있게 한 것이다. 촛불집회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국민으로 주권자로서 행동했지만, 자신의 사업장에서는 결코 주인으로 행동하지 못한다. 헌법은 국민이 주권자라고 선언했지만, 우리의 노동법은 노동자가 주인이라고 선언하지 않았다. 우리의 이 노동 없는 세상은 이런 법을 통해서 세워져 있는 것이다. 사업장에서 사용자 자본에 맞서 자신의 권리를 확보하고 지켜 낼 수 있는 법 없이는 언제나 세상은 노동자에겐 노동 없는 세상일 뿐이다. 노동자를 노예로 만드는 법을 두고서는 노동 있는 세상은 없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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