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영 기자

 

“42년 전이랑 달라진 게 없어요. 아침 8시에 출근해 일이 많을 땐 밤 10시까지 일합니다. 시간외수당이요? 받아 본 적 없어요.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종일 작업대 앞에 앉아 있습니다. 어깨·목 안 아픈 곳이 없어요.”

최현미(58) 전태일재단 봉제사업단장은 1970년대나 2017년이나 봉제노동자 노동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봉제사업단 출범 기자회견에 참석해 “봉제노동자들은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감내해야 하는 구조에 놓여 있다”며 “창신동 봉제거리를 중심으로 70년대 열악한 노동환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귀띔했다.

◇근골격계·호흡기질환 시달려=75년 가을, 최 단장은 야학에서 평화시장 어린 시다들을 위해 목숨 바친 전태일의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잘 다니던 전자회사를 그만두고 전태일이 사랑했던 창신동 평화시장으로 들어갔다. 봉제산업에 첫발을 들인 어린 소녀들이 그랬듯 그도 시다(보조)로 일을 시작했다.

70년대 봉제노동자들은 햇빛도 들지 않는 다락방에서 하루 14시간씩 일했다. 창문이 없어 환기가 되지 않아 폐질환에 걸린 사람이 많았다. 최 단장은 “이제 70년대 다락방은 없어졌지만 지금도 좁은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작업공간 위에 선반을 다는 곳이 많다”며 “허리 펴고 걷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하루 종일 가위질을 해야 했던 최 단장은 손가락 관절이 좋지 않다. 그는 “봉제노동자들이 신체를 구부려 장시간 동일한 동작을 반복하다 보니 근골격계질환에 많이 걸린다”며 “어깨·목·팔 근육통은 물론 허리통증과 마른기침·비염 증상을 보이는 노동자가 많다”고 호소했다. 환풍시설이 부족해 호흡기질환에 시달리는 노동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

70년대 수출 효자산업이었던 봉제산업은 90년대 이후 생산기지가 동남아로 이동하며 쇠락하기 시작했다. 영세사업장이 대다수인 산업 특성상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역시 70년대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건 70년대 10대 소녀가 앉았던 작업대 앞에 40~50대 중년 여성이 앉아 있다는 정도다.

서울노동권익센터에 따르면 2015년 봉제노동자 10명 중 8명이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았다. 국민연금은 10명 중 7명이 미가입 상태다. 봉제노동자의 산업안전과 실업대책·노후가 말 그대로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

◇밀집지역에 쉼터 마련=70년대에 머물러 있는 봉제산업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노동·시민·사회단체가 힘을 합쳐 ‘9만 봉제노동자 노동권익 향상을 위한 공동사업단’을 발족해 봉제노동자 권익향상을 위한 행동에 나섰다.

봉제사업단은 서울 종로구 평화시장 전태일다리에서 출범했다. 봉제사업단은 “서울에만 9만명에 이르는 봉제노동자가 있다”며 “실질적 권익향상과 노동 가치 실현을 위해 공동사업단을 구성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봉제노동자들은 점심시간을 빼고는 화장실 갈 시간이 없을 정도로 노동강도에 몰리고 있다”며 “정부와 서울시가 봉제노동자 밀집지역에 쉼터를 마련하도록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봉제사업단은 봉제산업이 모여 있는 서울 동대문·종로·중랑·성북·용산·금천구를 중심으로 봉제노동자 집단인터뷰를 통해 현장 요구를 수렴할 계획이다. 봉제사업단은 앞으로 △봉제산업 노동실태 조사와 근로조건·작업환경 개선 △봉제노동자 건강권 확보를 위한 사업 △노조 조직화와 봉제노동자 권익향상을 위한 법·제도 개선 △봉제산업 활성화를 위한 정책개발과 정부·지자체 차원의 지원협약 추진 △일상적 노동 상담과 생활법률 상담을 진행할 예정이다.

봉제사업단에는 전태일재단·화학섬유노조·우리동네노동권찾기·일과건강·성북구노동권익센터·서울동부비정규노동센터·구로구근로자복지센터·서울노동권익센터가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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