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대통령선거(5월9일)가 한 달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각 정당들은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에 돌입한 상태다. 조기 대선인 만큼 경선은 이달 초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대선주자들은 일자리·노동공약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주요 대선주자들이 발표한 공약을 분석한다. 크게 △일자리·청년일자리 △노동시간·휴가 △임금·근로조건 △비정규직·산업안전 △노동권·노사관계·사회적대화로 나눠 5회에 걸쳐 싣는다. 분석 대상은 유의미한 여론 지지율을 보이면서 일자리·노동공약을 꾸준히 발표한 7명이다.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안희정 충남도지사·이재명 성남시장, 국민의당 예비후보인 안철수 의원·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바른정당 대선후보인 유승민 의원, 정의당 대선후보인 심상정 상임대표다.<편집자>

▲ 지난달 22일 한국노총 전국단위노조대표자대회에 참석한 대선후보들이 친노동자정권 수립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정기훈 기자
 

2017년 한국 사회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처한 처지는 썩 좋지 않다. 헌법 33조에는 노동 3권이 보장돼 있지만 교사·공무원·비정규직·특수고용직 등 노조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수두룩하다. 파업을 할라치면 공격적 직장폐쇄나 업무방해, 손배·가압류로 가로막고 필수유지업무라고 걸고넘어진다. 복수노조와 타임오프도 노조활동을 약화시키는 데 악용된다.

사업장 노사협의회는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중소·영세 기업 노동자와 비정규·미조직 노동자를 대변하는 기구를 찾아보기 힘들다. 산별노조나 초기업단위노조 교섭은 맥을 못 춘다. 그나마 체결하는 단체협약의 효력도 제한적이다. 2015년 9·15 노사정 합의가 파기된 뒤 사회적 대화마저 멈춘 상태다. 노동 4법·2대 지침·단협 시정명령·성과연봉제를 밀어붙인 ‘박근혜표 노동정책’이 남긴 상흔이다.

그런데 19대 대선공간에서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잘 안 보인다. 노동권·노사관계·사회적대화 등 노동정책을 독자적으로 내놓은 대선주자가 많지 않다. 좋은 일자리 정책은 노동권을 보장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전문가들의 주문을 새겨들어야 하지 않을까.

문재인·이재명 “노동경찰 통해 노동자 보호”
이재명, 한상균 면회 이어 노동계와 폭넓은 정책협약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에 대한 공약이 전무하다고 할 정도다. 노동공약을 별도로 발표한 적이 없다. 일자리공약에서 일부 언급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문 전 대표가 노동권 강화를 직접 언급한 적은 없다. 다만 근로감독 강화로 노동자 권리를 지키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올해 1월 ‘권력적폐 청산 3대 방안’을 통해 “특별사법경찰인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의 실질수사권을 강화해 힘없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할 것”이라며 “최저임금 위반행위를 철저히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노사정이 함께 고통을 분담하는 사회적 대타협을 대통령이 직접 나서 만들어 내겠다”고 덧붙였다.

문 전 대표는 지난달 13일 일자리위원회 출범식에서도 “철저한 근로감독으로 최저임금 이하 일자리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없도록 국가가 보호하겠다”고 말했다.

근로감독관 수사권을 강화하는 노동경찰 공약은 이재명 성남시장도 내놓았다. 그는 지난달 3일 발표한 일자리정책에서 “형식적이고 무능한 근로감독관이 아니라 실질적인 노동권을 보호할 수 있는 노동보안관 성격의 노동경찰제를 도입하겠다”며 “노동법원도 별도로 신설해 운영하겠다”고 약속했다. 노동경찰을 1만명 수준으로 대폭 늘린다는 구상이다.

이 시장은 “노동자 출신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하면서 노동권 강화를 앞세운다. 노동계와도 정책협약 등을 통해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 그는 1월 춘천교도소에 수감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면회했다. 2월에는 SBS <대선주자 국민면접>에서 "한상균 위원장을 고용노동부 장관에 발탁하고 싶다"고 말해 신선한 충격을 줬다.

이 시장은 금융노조·공공운수노조·사무금융노조·공무원노조·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와 정책협약을 맺고 성과연봉제 폐기·해직공무원복직법 제정 같은 다양한 노동정책에 뜻을 함께했다. 공동후원회장을 김승하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이 맡는 등 친노동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재명·손학규·심상정 제외한 후보들 ‘낙제점’
심상정, 노동 3권 강화·노동계 정책협약 눈길

결론부터 말하면 노동권·노사관계·사회적대화에서 공약 같은 공약을 선보인 후보는 이재명 시장·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정도다. 다른 후보들은 거의 언급이 없거나 부족한 인식을 드러낸다. 일자리 정책으로 접근하는 한계도 보인다.

심상정 대표는 “내가 노동자 출신 대통령 원조”라고 밝힐 정도로 노동정책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그는 노동권 강화를 위해 노조 조직률 30%·단체행동권 보장(노동 3권 실현)·노사공동결정제도 도입 등 노동의 교섭능력과 참여를 획기적으로 높여 가겠다고 공약했다. 심 대표는 2월에는 헌법 전문에 ‘노동존중’과 ‘평등사회 실현’이라는 문구를 넣고, 노동인권교육을 정규교과과정으로 편성하는 한편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로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노동부총리제 신설과 노동전담 검사제 도입, 노동부에서 고용청·근로감독청·산업안전청 분리 공약도 눈에 띈다. 심 대표는 공공운수노조·사무금융노조·전교조 등과 정책협약을 맺거나 정책간담회를 개최하면서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재명 시장도 심 대표와 비슷한 인식을 보였다. 이 시장은 1월 국회에서 열린 ‘민생, 현장에 답이 있다’ 타운홀미팅에서 “노동부가 노동자·약자를 위한 호민관이 아닌 노동탄압 첨병이 되고 있다”며 “불평등을 해소하려면 노동권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근로기준법 교육 의무화도 약속했다. 이 시장과 심 대표 모두 "노동자를 위한 노동부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관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손학규 전 대표는 '노사 민주화'라는 개념으로 접근한다. 노동자 경영참여 확대와 노조활동 강화, 사회적대화 활성화 등 교과서 같은 노동공약을 내놓고 있다. 그는 노동자 경영참가 보장방안으로 △노조 또는 종업원 이사추천권(노동이사제) 도입 △노사공동결정법·노동자경영참가법 제정 △종업원지주제(우리사주조합 포함) 적용 확대를 공약했다. 노조 조직률 제고와 단협 효력 확장, 노동법원 설립, 산별교섭·초기업단위교섭 활성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상 재정립도 약속했다.

안희정·안철수·유승민 구체적 공약 안 보여
문재인, 양대 노총 정책질의 답변 거부 논란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지난달 6일 인터넷언론 합동토론회에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 되도록 하고 노동법원·노동이사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구체적인 이행수단 등 추가적인 공약을 내놓지는 않았다. 안 지사는 지난달 사무금융노조와 정책간담회를 갖고 "노조가 제기한 정책을 수용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과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별다른 노동공약을 발표하지 않았다. 안철수 의원은 공노총 집행부 출범식, 유승민 의원은 한국노총 전국단위노조대표자회의를 찾아 러브콜을 보냈다.

공식적으로 발표한 노동공약 외에도 양대 노총에 제출한 정책답변서에서 대선주자들의 노동공약을 살펴볼 수 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단결권·단체교섭권과 관련해 안희정 지사·유승민 의원은 언급이 없었다. 반면 이재명 시장·안철수 의원·심상정 대표는 공무원·교사 단결권을 약속했다. 안 지사와 유 의원은 단체행동권(파업권)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

안철수 의원과 심상정 대표는 정리해고 파업권 보장·필수유지업무 폐지에 주목했다. 심 대표는 손배·가압류 청구 금지도 공약했다. 문재인 캠프는 민주노총 질의와 관련해 “발표하지 않은 (노동)공약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변하기 곤란하다”며 답변서를 보내지 않았다.

문재인 캠프는 한국노총 정책질의에도 마찬가지 태도를 취해 논란에 휩싸였다. 한국노총이 지난달 27일 오후 5시까지 정책답변서 제출을 요구했지만 제출하지 않았다. 30일 한국노총 주최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문재인 캠프 홍종학 정책본부장은 “찬성·반대 식 설문에는 응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해명했다가 빈축을 샀다. 문재인 캠프는 31일 답변서를 작성해 한국노총에 제출했지만 내용이 부실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노총에 따르면 타임오프 등 노동기본권 보장에 대해 안희정 지사·안철수 의원·유승민 의원이 ‘일부 동의’라고 답했고, 노동이사제 포함 노동자경영참가법 제정에는 안철수 의원이 ‘일부 동의’ 태도를 취했다. 2대 지침·성과연봉제 폐지에는 유승민 의원만 반대했다.

노사정위에는 부정적, 사회적대화 대안 안 보여
노동회의소 대선이슈로 부각, 심상정·이재명은 “글쎄?”

대선주자들은 대부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면서도 사회적 대화기구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문재인 전 대표는 1월 일자리정책을 발표하면서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동자도 마음을 열고 함께해야 한다”며 “기업과 노조, 정부, 지자체를 포함한 이해당사자가 대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노사민정 대타협을 통해 적정임금을 보장하면서 기업의 적극적 투자를 이끌어 내는 윈윈 모델인 ‘광주형 일자리 모델’에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심상정 대표는 “이미 수명을 다한 노사정위원회를 해체하고 중앙과 광역시·도, 노사정·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기구인 ‘경제사회전략대화’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손학규 전 대표는 “노사정위 위상을 재정립하겠다”며 “관료 중심 운영에 따른 폐해를 줄이기 위해 노사정위에서 정부 역할을 조정하겠다”고 말했다. 안희정 지사는 ‘전 국민 안식제’를 발표하면서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삶이 있는 일자리 문화를 확산하겠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한국형 노동회의소’가 대선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문재인 캠프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과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정책토론회에서 노동회의소를 띄우면서 조명받고 있다. 한국노총도 노동회의소 도입을 공식적으로 요구한 상태다.

한국노총에 따르면 노동회의소 도입에 대해 이재명 시장은 취지에 동의했고, 심상정 대표는 조건부로 동의했다. 이 시장은 “모든 노동자 의무가입이 용이하지 않고 법률상담·직업훈련 등 기존 제도와 중복돼 실효성이 의문시된다”는 우려도 전했다. 심 대표는 “노조 조직률 제고·노조 무력화 조치 철회·산별교섭 법제화와 효력 확장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후보들은 노동회의소 도입에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냈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좋은 일자리의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은 노동권이 실현되거나 노동자 이해대변이 충실히 되는 일자리”라며 “단순히 임금을 올리기나 고용률을 올리는 것으로 접근했다가는 경제사정이 조금만 나빠져도 다 무너지는 사상누각이 된다”이라고 경고했다.

박 연구위원은 “박근혜 정권하에서 노동계나 정치권 모두 새로운 사회적대화 시스템을 축적하는 시간을 갖지 못했다”며 “졸속으로 처리하지 않기 위해서는 노사정과 정당 싱크탱크·국책연구기관 등이 모여 진중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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