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국장

“엄마, 아들 보고 싶으면 어떡하려고? 3박4일인데 아들 보고 싶어서 어떡하려고? 하며 해맑게 말하던 호성이를 태운 세월호는 2014년 4월16일….”

말을 멈추고 잠시 큰 숨을 쉰다. 흠, 흠 하고 얕은 헛기침을 해 보지만 깊은 곳에서 묵직하게 올라온 무엇인가가 목을 막히게 한다. 교안을 만들 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교육이 시작되고 4월16일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어김없이 목소리는 잠겨 버린다. 나에게, 우리에게 세월호는 그렇다. 2014년 4월18일 금요일에 돌아왔어야 할 그 배가, 1천73일이 돼서야 모습을 드러냈을 때 찾아들었던 감정은 ‘미안함’이었다. 이것은 사람이기에 갖는 보편적인 죄책감과 그에 따른 고통이다.

세월호 참사가 난 지 한 달 하고도 사흘이 지난 2014년 5월19일 ‘악어의 눈물’ 기자회견을 한 박근혜씨는 그 뒤로 유가족 면담을 거부했다. 이를 신호로 쏟아져 나온 극우언론·정치모리배들의 폭언과 돈 받고 동원된 극우단체들의 추태는 귀로 듣고, 눈으로 보기 힘들며, 입에 담기조차 더러운 언행이었다. 그렇게 지나간 1천73일이었다.

파면된 박씨에 대해 그의 졸개는 “재임 중 파면이라는 대통령으로서는 최고 형벌을 이미 받았고, 사실상 가택에 유폐된 상태로 차마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 있다”고 이야기했다. 웃자고 한 소리일까.

“인터뷰를 하는 도중 그는 여러 번 크게 통곡했다. 가슴이 쪼그라들 것 같이 아프다는 그의 슬픔이 전해져 한참을 함께 울었다. 그가 이 끔찍한 비극에 맞서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 그 대단하고 고통스러운 에너지가 고스란히 느껴졌다.”(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금요일엔 돌아오렴> 중에서)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이란 이런 것이다. 아픈 고통은 전염된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최근 박근혜의 모습을 보면서 일말의 동정심을 느낀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에게 2014년 10월29일 국회 본관 앞 동영상을 보여 주겠다.

그날 박근혜는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국회를 찾았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이 소식을 듣고 전날 밤부터 노숙을 했다. 박근혜가 나타나자 경찰에 둘러싸인 유족들은 있는 힘껏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를 외쳤다. 하지만 그는 외면했다. 아니, 심지어 담소를 나누며 그 옆을 두 차례나 스쳐 지나갔다. 그날, 그의 모습은 곱씹어 봐도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박근혜가 구속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올림머리를 한 채 서울중앙지법 321호실로 들어갔다. 나는 그가 사회로부터 (가택이 아닌 공공시설물로) 영원히 격리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습니다”라고 말했던 세월호 대국민 담화와 “이 모든 사태는 모두 저의 잘못이고 저의 불찰로 일어난 일입니다”라는 최순실 게이트 대국민 담화, 그리고 담화 이후의 언행에서 보듯이 그는 파렴치한이다.

법에 문외한인 나는 그에게 적용될 죄명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형법 몇 조에 해당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누가 "그의 가장 큰 죄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다. 박씨의 가장 큰 죄는 이재용한테 받은 뇌물이 아니라 세월호 유가족에게 생지옥의 고통을 겪게 하고, 모든 국민에게 치유하기 어려운 참사의 기억을 남겨 줬다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어느 경로를 통해서도 박근혜의 소식을 듣거나 보고 싶지 않다. 그의 구속과 긴 수감을 기원한다.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국장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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