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형 노동회의소 모델’이 제안됐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연구용역을 발주한 결과다. 특수고용직을 비롯한 비정규직과 실업자를 포함한 미조직 노동자를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노조라는 보호막이 없는 곳에서 노동회의소가 버팀목 역할을 하고, 새로운 중앙노사관계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는 반면 노조 힘을 약화시키거나 우리나라 현실에 맞지 않다는 우려도 있다. 노동회의소는 집권 가능성이 높은 더불어민주당의 대선공약이 될 공산이 크다. 찬성과 반대가 엇갈리는 노동회의소 논쟁을 들여다봤다.

노동회의소와 노조는 상호보완 관계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본부 실장

▲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본부 실장

노동조합의 취약한 기능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노조 조직을 확대해야겠지만 굉장히 접근이 어려운 곳도 있다. 그런 곳에는 노동자 이해대변기구가 필요하다. 노동회의소가 있는 나라에서도 노조와 노동회의소가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노조 조직률을 갉아먹는 게 아니라 서로 상승효과를 내고 있다. 산별교섭 활성화와 단체협약 효력확장을 위한 노력과 함께 미조직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문제는 노조가 열심히 하고 있지만 인적·물적 자원이나 여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외국에서는 노동회의소가 노조를 지원하는 역할을 많이 한다. 교육도 지원하고 지역사회와 노조를 연결시켜 주기도 한다. 노동회의소 지원하에 노조와 지역단위 사회적 대화를 진행하는 게 대표적이다. 노동회의소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취약계층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우산 역할을 할 것이다.

노조 역량을 강화하는 데에도 노동회의소가 필요하다. 노조가 정부위원회에 참여하고, 산업·업종 단위 중층적 사회적 대화채널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현재 그런 대안을 제시하고 역할을 할 역량이 노조에 없다. 노조를 약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데, 실질적으로 노동회의소가 있는 나라나 지역에서는 그렇지 않다. 독일도 노동회의소가 있는 지역의 노조 조직률이 월등히 높다. 노조가 노동회의소 의사결정기구인 총회나 이사회에서 권한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노조와 노동회의소는 협조적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관변단체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는데, 노동회의소 성격은 기본적으로 노동자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노동자 자치조직이다. 정부가 관여할 수 없는 구조다.


노동 3권 보장이 우선, 관변단체 전락 위험
남정수 민주노총 대변인

▲ 남정수 민주노총 대변인

기존 노조가 미조직 노동자들을 포괄하지 못하고 있으니 별도 단체를 만들어 권익을 보호하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정책으로 보인다. 선한 의도에서 나왔다고 해도 결과는 반대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한다.

노동 3권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해 노조 조직률이 낮은 현실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것은 90%의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노동 3권을 헌법과 법률이 정한대로 보장하고 보호해 줄 방안을 찾는 것이다. 노동회의소는 기본적으로 이런 의식에서 비켜나 있다. 노동 3권과 노조 지위를 무시하고 새로운 단체를 만들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편법으로는 미조직 비정규직을 보호하지 못한다. 양대 노총을 포함해 시민·사회단체가 노조 가입과 활동이 보장·보호되지 않는 현실을 바꿔 내기 위해 여러 요구안을 제시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87호)과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에 관한 협약(98호) 비준을 우선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순리에 맞다. 부당노동행위를 한 사업주를 엄격히 처벌하는 제도를 만들고,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노동자 권리를 약화시키지 못하도록 하는 정부 정책이 나와야 한다.

이런 과제는 비켜간 채 설립되는 노동회의소는 관변단체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양대 노총 조직률을 떨어뜨리는 역효과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에 우호적인 노동단체·세력을 만들려는 의도로 보일 수밖에 없다.


새 노사관계 모델 기대, 역순의 방법도 고민해야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

▲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

노동회의소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그런데 오해가 많아 아쉽다. 우리 실정에 맞춰 사회적 대화 시스템을 구축해 보자는 지향에서 노동회의소에 대한 검토가 시작됐다. 특히 정권이 교체되고 사람이 바뀔 때마다 요동치는 노동정책이 아닌, 시스템으로 유지되는 노사관계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 핵심 취지다.

우리 모두 노사의 사회적 대화가 필요함을 인정한다. 그러나 대화의 주체가 존재하는가. 현재까지 양대 노총과 현장 대표자들이 다양한 대화 노력을 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남은 것은 무엇인가. 안타깝게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비롯한 노동법률 체계로 해결하지 못하는 노동 문제가 많다. 사회양극화라는 구조 속에서 90% 미조직 노동자들이 그 고단함을 온전히 떠안게 되는 형국이 됐다.

그래서 노사관계의 완충 역할을 하면서 대화 물꼬를 트는 ‘새로운 방패’의 필요성을 모색했다. 이러한 고민 중에 검토된 것이 노동회의소다. 법정노동단체로서 우리 실정에 맞는 한국형 노사관계 모델을 새롭게 잉태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엿봤다.

노동회의소 논란에 대해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우려를 들었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외국의 제도가 좋으니 무작정 따라해 보자는 생각은 당연히 틀렸다. 그러나 전체 노동자와 기업의 이해를 대변할 수 없는 지금의 노사관계로 산적한 많은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노동이 존중받고 노사 간 자유로운 대화로 경제와 사회의 문제를 풀어 가는 보다 진일보한 미래를 꿈꾼다면, 다양한 방법을 함께 고민해 보자고 제안드린다. 수순이 어려울 땐 역순(逆順)의 방법도 있음을 잊지 말길 부탁드린다.


보편성·필요성 떨어져, 냉철한 검토 필요
김종국 한국경총 법제2팀장

▲ 김종국 한국경총 법제2팀장

노동회의소에 대한 재원 마련과 구체적인 기능 얘기까지 나온다. 하지만 먼저 그 적합성과 필요성을 면밀하고 냉철하게 검토해야 한다. 노동회의소는 국제적으로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일부 주에만 존재하는 제도다. 보편성과 관용성을 지닌 제도로 보기 어렵다. 오스트리아의 경우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생존과 독립을 위해 사회적 분열을 막아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등 독특한 역사적·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도입됐다. 또한 노동계와 경제계 그리고 농민 이익단체들과 정당과의 밀접한 관계, 발달된 분권과 지방자치 등 오스트리아만의 정치·사회 환경에서 운영되고 있다.

이처럼 오스트리아와 역사적·사회적·문화적 배경이 전혀 다른 상황에서 노동회의소 제도가 다른 제도와의 충돌을 가져올 수 있지는 않는지, 사회적 갈등만 증폭시키지는 않을지 우려스럽기도 하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와 노사발전재단과 같은 사회적 대화를 위한 유사한 기능의 기구들도 이미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비슷한 기능을 하는 노동회의소 필요성이 절박해 보이지는 않는다.

기존 기구들의 역할과 기능이 미약하다면 먼저 이를 개선하고 향상시키려는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새로운 제도 도입을 고민해도 늦지 않다. 노동회의소뿐 아니라 근로자이사제처럼 최근 제기된 다른 유럽 제도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 적합한지, 꼭 필요한지, 대안은 없는지를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봐야 한다.


노동 이해대변 확장에 도움,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우리 사회에서 노동의 이해는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 다양한 영역에서 전방위적으로 강화돼야 한다. 노동회의소는 비노조적인 노동 이해대변체의 하나다. 주로 기업 외부에서 그 역할을 하도록 설정된다. 즉 ‘노동조합이 아닌 주체가’ ‘기업 외부에서’ 노동의 이해를 대변하는 활동을 강화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에 못지않게 ‘노동조합이 아닌 주체가’ ‘기업 내부에서’ 그리고 ‘노동조합이’ ‘기업 외부에서’ 노동의 이해를 대변하는 활동과 방식이 더욱더 시급하게 강조되고 강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전자의 예로는 독일 종업원평의회(works councils)처럼 노조원만이 아닌 전체 종사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방식이다. 우리의 노사협의회는 행위자라기보다 장(field)으로서의 측면이 강하다. 전면적으로 개혁할 필요가 있다. 후자의 예는 산별노조의 임금교섭이나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노동조합의 정책참여다. 알다시피 한국에서는 이 둘 모두 20년의 노력에도 지지부진하다.

노동회의소 논의는 앞으로 우리가 확장해야 할 노동 이해대변의 영역이 어디까지고 그 방식은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 그동안 우리가 노동과 관련한 민주주의를 얼마나 제한적으로 생각해 왔는지 성찰하고 새롭게 상상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다만 그간 가꿔 왔지만 경작에 실패한 지대들을 어떻게 할지부터 모색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한다. 노동회의소가 겨냥하는 영역에서는 이미 기존의 다양한 노동 이해대변 주체들이 나름의 방식대로 활동해 왔다. 비록 구멍가게와 같았을지라도 그들의 활동을 존중하면서, 그들의 주도로 자연스럽게 그 필요의 연장에서 노동회의소 같은 기구로 대규모화·체계화시켜 내는 쪽으로 나아가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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