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근래 서울시가 산하 공공기관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노동조합과 긴밀히 협의하면서 노동시간을 단축함으로써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화제가 됐다. 나아가 산하 기관들에 이른바 ‘근로자이사제’를 도입해 노사공동결정과 책임경영 이상에 한걸음 다가가는 식으로 경영혁신을 도모하기도 했다.

이러한 실천들은 지방자치단체가 ‘모범 사용자’ 면모를 갖추면서 공공부문 일자리 정책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나가는 선도적인 모습으로 보인다. 자연스럽게 많은 정책전문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고, 뜻있는 다른 지자체들도 (예컨대 광주시) 이러한 성과를 벤치마킹하며, 서울시가 표방한 ‘노동존중’ 지방정부 대열에 동참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한 지자체에서 이뤄진 ‘일터 혁신’이 ‘사회 혁신’으로 이어지려는 것이다.

서울시가 행한 이런 유의 실천 원형은 20여년 전 독일에서 나타난 바 있다. 잘 알려진 대로 1990년대 폭스바겐이 해고를 피하면서 노동시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기업의 일자리 위기를 극복했다. 당시 노동자들은 주당 28시간 근무, 그러니까 1주일에 3.5일 정도만 일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소득 일부는 줄어들었지만 결과적으로 대량 정리해고 위기를 넘겼다.

말하자면 경영위기가 ‘해고 폭탄 돌리기’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와 사가 함께 지혜를 모아 약간의 소득 희생을 감내하면서 노동시간단축이라는 비법을 써서 뇌관 자체를 제거했던 것이다. 그러한 실천이 가능했던 것은 폭스바겐 종업원평의회가 사측과 직원들 사이에서 긴밀하게 그들의 이해를 조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창의적인 방안을 마련해 냈기 때문이다(근로자 이해대표체의 역할이 매우 기민하고 선도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에 대해서는 지난해 한국노동연구원에서 펴낸 번역서 <모든 일자리에는 얼굴이 있다>와 <숨 쉬는 기업>에 상세히 소개돼 있다).

경영이 어려워졌다고 해고를 쉽게 하는 방법을 찾는 회사에서는 대체로 노동조합을 진정한 경영 파트너가 아니라 그저 ‘임금 올리는 귀신’이자 ‘경영의 걸림돌’ 정도로 사고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곳의 노사관계는 서로 비난하면서 더 빼앗으려는 전략, 즉 물질적 이익의 상호극대화 전략에 몰두하는 양상을 띠기 쉽다.

노조는 장시간 근로를 통한 보상의 단기적 극대화 전략에 몰입하려는 조합원들의 욕망을 충족하려 하고, 기업은 보다 더 폐쇄적인 의사결정과 불투명한 경영행위에 몰입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일자리 질이 나빠질 뿐 아니라 노사가 협심해 새로운 고용을 창출해 갈 여지도, 노동시간이나 직무를 유연화하면서 노동자들의 일-가정 양립 요구를 채워 주고, 다양한 세대가 공존해 가는 역동적이고 신뢰감 넘치는 일터를 구현할 전망도 희미해진다.

조만간 막을 내릴 현 정부의 고용정책, 일자리 정책과 관련해 항간에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소모적 지출과 주변적 정책에 머물렀다는 비판이 강하다. 특히 노사관계 혁신과 투명한 경영의 진작을 모색하면서 기업에서 노사가 노동시간단축 같은 방식의 과감한 실천을 통해 일자리 질서를 스스로 재구성하면서 고용의 양과 질 측면에서 책임 있는 답을 찾게끔 유도하는 정책 구현은 크게 미흡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아예 “박근혜 정부에서는 일터 혁신 정책 자체가 아예 실종됐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토로한다.

앞서 살펴본 서울시의 실천과 20여년 전 폭스바겐의 그것은 모두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 질서를 바꾸면서 고용의 질과 기회를 진작시켰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 이해대변체 기능 활성화와 경영참여 심화를 도모하고자 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둘 모두 일터 혁신, 특히 노사관계 혁신을 도모하면서 고용질서 재구성을 모색한 것이었고, 의미 있는 성공을 거뒀다.

고용정책 암흑기에 그나마 서울시나 광주시 같은 일부 지자체들이 보여 준 이러한 성취야말로 조만간 출범할 새 정부가 확실하게 계승하고 확대시켜 나가야 할 소중한 자원이요 경험이다. 여기에 단기적 물적 보상보다 일자리의 보존과 창출, 그리고 그것을 스스로 이루는 과정에서 동반될 경영참여 심화에 보다 큰 관심을 갖는 쪽으로 노동조합들의 ‘주체적 전환’이 이뤄진다면, 향후 일터 혁신을 통한 일자리 정책 실효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믿는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mjnpark@kl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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