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학생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닌 이들이 있다. 노동자임에도 법적인 노동자성을 박탈당한 특수고용 비정규직처럼 가장 열악한 노동인권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는 젊은이들이다. 올해 1월 LG유플러스 고객센터인 LB휴넷에서 격심한 감정노동에 시달리다 전주 아중저수지에서 목숨을 잃은 홍수연씨를 비롯한 현장실습생들은 학교와 노동현장의 경계에서 권리를 보호받지 못한 채 값싼 저임금 노동력으로 치부돼 내몰리고 있다.

중대재해로 사망사고를 당한 현장실습 노동자들이 잇따르고 있다. 2011년 광주 기아자동차에서 일하다 뇌출혈로 쓰러져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김군도 현장실습생이었다. 지난해 구의역에서 안전문을 수리하다 참변을 당한 김군도 현장실습생으로 일하다 취업했다. 우리 사회 미래 동량인 청소년들에게 사회진출의 관문인 산업현장이 사지가 되는 기막힌 현실이다.

현장실습생은 학생노동자다.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노동관계법을 적용받는 노동자이면서 직업교육훈련 촉진법상 현장실습생 지위를 모두 가진다. 무엇보다 현장실습생은 현장실습의 실질적인 내용을 볼 때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한다. 대법원도 "사업주와 실습생 사이의 채용에 관한 계약내용, 작업의 성질과 내용, 보수의 여부 등 그 근로의 실질관계에 의해 근로기준법 제14조의 규정에 의한 사용종속관계가 있음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실습생은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명목상 현장실습생이라 할지라도 사업장 노동자와 동일하게 근로시키는 경우 노동관계법에 따른 노동자로 인정하고 권리를 보호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는 까마득히 멀다. 관행화한 현장실습제도의 문제점들은 이번 홍수연씨 사망사건에서도 드러났다. 표준협약서에 따른 현장실습계약보다 적은 임금을 받았다. 고객사 프로모션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회사는 직업교육훈련 촉진법을 위반해 현장실습 시간을 초과해 일을 시켰고, 연장근로에 따른 임금도 주지 않았다. 도처에서 근기법상 임금체불이 발생한 것이다. 학교와 교육청의 책임도 크다. 산업체 선정이 부적절했고 현장 지도가 부실했다. 홍수연씨는 애완동물과 소속이었지만 현장실습을 한 곳은 해지방어 부서였다. 해지방어 부서는 이른바 '욕받이부서'로 불릴 정도로 상담센터 부서 중에서도 정신적 스트레스 정도가 높아 기존 근무자들도 기피하는 곳인데 현장실습생을 고강도 감정노동 업무에 투입한 것이다. 게다가 학교는 현장실습계약에 실습 산업체 의무사항으로 규정된 노동관계법령에 대한 교육과 직장내 성희롱 예방교육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현장실습생들은 무방비 상태로 전장에 떠밀린 것과 진배없다.

이번에는 흐지부지 끝내서는 안 된다. 우선 홍수연씨 사망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사망사건에 대한 산업재해 인정과 사용자 등의 손해배상 책임도 물어야 한다. 전주센터만의 문제가 아니므로 고용노동부가 나서 LB휴넷 전국센터들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해야 마땅하다. 현장실습제도가 더 이상 학생들을 사지로 몰고 가지 않도록 관련 법·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촛불시민혁명 이후 5월 장미대선을 앞두고 적폐 청산과 새로운 공동체 건설이 화두다. 청운의 꿈을 품고 비상해야 할 청춘의 날개를 잔인하게 꺾어 버리는 현장실습제도야말로 반드시 개혁해야 할 적폐다. 한국 사회 최대 난제가 노동과 교육 문제일진대, 그 두 부문의 폐단이 난마처럼 얽힌 상황에서 현장실습생들이 희생양이 된 꼴이다.

학생이 죽어야 사회적 관심이 잠깐이라도 모아지는 현장실습제도를 근본적으로 혁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언제까지 현실 타령으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미룰 것인가. 이윤에 눈멀어 빼내 버린 세월호 평형수처럼 지원예산과 연계된 취업률에만 눈멀어 학생노동인권을 도외시한 채 산업현장으로 학생들을 내몬 현장실습제도는 이미 침몰 직전이다. 지금이라도 항로를 바꾸고 새로운 제도 설계를 통해 현장실습 노동자들을 살려야 한다.

31일 저녁 서울 용산 LG유플러스 본사 앞에서 추모문화제가 열린다. 안타깝게 숨져 간 현장실습 노동자 홍수연씨를 추모하는 자리다. 산 자들이 더 이상 비탄에만 빠지거나 추모에만 머물지 않고 더 나은 현실을 만들기 위한 결의를 다질 수 있도록 많이들 오셔서 마음 보태 주시길 부탁드린다. 현장실습 현장에서 청소년들이 고통스러워하며 눈물 흘리지 않도록, 그들의 일상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지 않도록 하는 건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춘삼월이지만 노동현장에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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