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확대와 임금인상·고용안정으로 대변되는 이른바 87년 노동체제의 위기를 부정하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98년 외환위기 이후 고용불안·노동시장 양극화·노동운동 약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촛불민심이 대통령을 끌어내린 2017년에는 87년 노동체제의 위기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위기에 동의한다면 다음 과제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노동체제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이냐다. 한국노동법학회·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한국노동경제학회는 29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87년 노동체제 30년과 새 정부의 노동정책’을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효율성·형평성·민주성의 균형”

발제를 맡은 김장호 숙명여대 교수(경제학)는 87년 노동체제를 대신할 새 패러다임으로 ‘윤리적·중용적 노동체제’를 제시했다. 기존 노동체제가 경제적 효율성을 지나치게 추구하다가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경제적 효율성 △사회적 형평성 △정치적 민주성의 균형을 달성해야 한다는 얘기다.

주요 과제를 보면 유연성 중심의 체제를 유연성과 안전성의 균형을 잡는 모델로 전환하고, 정규직 중심의 모델을 다양한 고용형태를 반영할 수 있는 모델로 바꾸자는 것이다. 김 교수는 “한국의 정규직 보호제도가 결코 유연성이 낮다고 볼 수 없고, 장시간 노동과 높은 임금격차는 노동시간·임금의 유연성이 대단히 높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사 자율주의를 보완하는 다층적·사회적 대화 활성화도 강조했다. 노동계에는 노동운동의 이념 확장을 주문했다. 김 교수는 “경제적 조합주의와 사회적 조합주의를 조화하고, 전통적인 노조간부 중심 운동에서 탈피해 다양한 영역·수준의 일반 조합원 참여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한계기업 정리”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는 ‘노사관계는 지속가능한가’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원·하청 연대임금과 최저임금 인상을 87년 노동체제의 대안으로 꼽았다. 원청과 하청 구조를 연대임금과 복지순환을 위한 단위로 설정해 원청의 경영성과가 하청 혜택으로 이어지도록 하고, 하청노동자의 노동생산성이 원청 제품 경쟁력을 높이도록 하는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와 함께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해 노동자의 생활안정을 이루면서 한계기업도 정리하자는 얘기다. 권 교수는 “우리나라는 유럽처럼 산업별 연대임금이나 산별교섭을 통한 임금수준 통일의 경험이 없고, 현재의 노동시장과 노사관계 조건을 고려하면 이런 해법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내다봤다.

“비정규직도 참여해 노동자 대표 선출”

87년 체제를 대신한 노동법적인 과제로는 비정규직 보호 입법 강화와 근로감독·노동위원회 제도 개선이 제안됐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990년대 이래 고용유연화 정책의 결과 노동법 보호 범위에 포섭되지 못하는 사각지대 규모가 지나치게 확장됐다”며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실현,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보호 입법 제정을 촉구했다.

또 낮은 비정규직 노조 조직률을 고려해 과반수 노조가 노동자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나 사업장 내 모든 노동자가 참여하는 선거로 대표를 선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근로감독청과 노동법원 신설, 노동위원회 독립성 확보도 대안으로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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