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형태가 다변화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노동조건 최저수준을 정하는 근로기준법과는 다른 새로운 차원의 근로계약법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인공지능과 자동화, 디지털 플랫폼이 노동의 공간과 시간적 제약을 없애고 고용형태 다양화를 불러올 것이 분명해 보이는 만큼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9일 오전 서울 광화문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4차 산업혁명과 고용미래포럼 전체회의에서 “4차 혁명시대에는 종속적 노동 대신 자영적 취업이 다수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며 “종속적 노동에 기반한 노동법시스템을 유지하되, 노무제공 일반에 대한 보호를 확대하고 사회보장 범위를 넓히는 포괄적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종속적 노동 넘어 자영적 취업 대비하자”

전문가들은 인공지능과 자동화 같은 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 절대량을 감소시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교수는 그러나 “노동의 종말은 인류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며 “구성·종류·성격이 달라지는 노동의 진화 혹은 변화를 예상하고 대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기술진보로 나타날 노동의 성격 변화로 △자동화로 중간 숙련단계가 사라지는 고용의 양극화(고숙련·저숙련 고용 증가) △풀타임 정규직이라는 표준 노동관계 쇠퇴 △글로벌 인력공급체인 확대 △노동의 개인화(1인 노동 증가 혹은 자영업화) △공간·시간 제약을 받지 않는 일자리 확대를 꼽았다.

노동자와 자영업자 사이에 위치한 특수고용직은 물론 노무 제공자와 수령자가 일대일 관계가 아닌 다자 대 다자 관계에서 계약을 맺는 포트폴리오 노동, 집단적·협업적으로 노무제공이 이뤄지는 협업고용을 비롯한 다양한 고용형태가 생겨날 것으로 전망했다. 노동조건 최저기준을 정해 일률적으로 강제하는 전통적 노동법으로는 이러한 고용형태를 포괄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기존 노동시장과 노동법이 균질성·획일성·강행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 앞으로는 다양성과 당사자들의 집단적·개별적 자치에 기반한 계약 형성과 규율이 이뤄지도록 법·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의미다.

“새로운 유형의 일자리, 어떻게 대응할까”

이 교수는 대안으로 민법에 기초한 근로계약법제를 제안했다. 그는 “형벌을 전제로 한 근로기준법의 실효성을 높이는 동시에 더욱 넓고 다양한 고용관계 영역을 포괄하도록 민사법에 기초한 근로계약법제를 마련해야 한다”며 “근로기준법이 가지는 경직성·획일성은 최저 근로기준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새로운 노무제공자 집단에 대한 합리적이고 공정한 계약형성에 관한 규칙을 제공하지 못하는 만큼 새로운 근로계약법제와 상호보완 관계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국가가 계약내용에 직접 개입해 엄격히 노동자를 보호해야 하는 영역과 당사자 간 자유로운 계약이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이뤄지도록 지원하는 영역을 나눠 각각의 법제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는 노동자와 자영인에 대한 법체계가 완전히 분리돼 있어 전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all or nothing) 형태의 규율을 받게 된다”며 “임금고용과 자영고용이 혼재된 새로운 유형의 일자리 등장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미래고용 향방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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