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갈등, 노동계 내부 자성의 목소리


노동조합운동이 비정규직 문제로 비상이 걸렸다. IMF 체제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가가 눈에 띄게 늘어난데다, 곧바로 노동조합 조직률과 직결되면서 '노동운동의 위기'로까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국내 비정규직 규모는 지난해 기준 53%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왔다. 이 수치를 두고도 절반이 넘어섰다고 아우성이었는데, 얼마전 비정규직이 지난해 8월 기준 58.4%라는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반면 노동조합 조직률은 89년도의 17% 수준에 비해 한참 줄어든 11% 수준으로, '비정규직의 조직화'가 담보되지 않는다면 조직률 회복은 기대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 정규직노조의 비정규직 조직화, 그것은 '꿈'인가?

비정규직 문제는 IMF 이후부터 적극적으로 제기돼왔으나 올해처럼 첨예한 사회적 쟁점을 보여온 예는 드물다. 더구나 지금 노동계는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외부환경 말고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대립' 혹은 '정규직의 이기주의'라는 내부모순에 봉착해있어 노동계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최근의 대표적인 예는 한국통신계약직, 캐리어사내하청 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통신계약직노조는 7,000여명의 계약해지를 앞두고 지난해말 우여곡절 끝에 노조를 건설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규직노조는 비정규직 조직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고, 규약상 문제로 비정규직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또한 계약직노조가 현재 6개월째 장외투쟁을 벌이고 있지만, 양 노조간 연대투쟁은 아직도 걷돌고 있다.

캐리어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에 폭력사태로 비화되기까지 했다. 캐리어의 정규직노조는 사내하청노조를 건설하는데 도움을 주긴 했지만, 비정규직노조가 막상 정규직화, 차별철폐를 요구하며 투쟁에 나섰을 때의 반응은 냉랭했다. 심지어 공장점거 농성 중인 비정규직 조합원에 대해 회사측의 물리적인 대응과정에 일부 정규직 조합원이 합류했고, 경찰폭력이 발생했어도 정규직노조는 별로 움직이지 않았다.

특히 캐리어는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업무에 파견을 금지하고 있는 파견법을 무시하고 불법 파견을 자행, 결국 불법파견근로 시정지시를 받기까지 했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채 오늘도 캐리어사내하청 조합원들은 공장 밖을 떠돌고 있다.

이같은 내부적 모순은 정부, 재계쪽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우선 노동계 내의 갈등부터 풀어라"라는 공세를 펴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 노동계의 비정규직 조직사업,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그렇다고 마냥 불리한 여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각각 비정규직보호특별위, 미조직특별위 등을 구성해 비정규직 조직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이미 일찌감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차별철폐 방침을 밝힌바 있다. 또한 외곽에서는 지난해 6월 20여개의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파견·용역노동자 노동권쟁취와 간접고용철폐를 위한 공동대책위'를 구성해 지원에 나선 상태다.

▲한국노총 = 지난 2월말께 비상설 회의체 형태의 '비정규직 보호 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그동안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법개정, 실태조사, 조직사업, 법률상담 등이 분산돼왔던 것을 하나로 묶어내 더욱 효율성을 발휘하겠다는 것. 이를 위해 비정규직보호특위는 우선 산하 산별 및 지역본부 차원에서 조직화대상 현황파악에 나섰으며, 이를 바탕으로 비정규직 근로실태 현황조사 및 대안 연구에 나선다. 현재 한국노총이 조직화에 나선 비정규 조합원은 대략 1만여명 수준으로, 롯데월드(650여명), 조선호텔(200여명), 대전지역비정규노조(430여명) 등이 대표적인 비정규 조직화 사업장. 이중 롯데월드는 비정규직노조를 따로 건설했고, 반면 조선호텔의 경우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감싸안은 경우다. 또 대전지역비정규직노조는 건설일용노동자 주축으로 지역노조로 출발하고 있다.

이와 관련 한국노총은 빠른 시일내 산하 사업장 비정규직 실태조사를 마무리짓는 한편, 6월 한달을 비정규직 조직화 집중기간으로 설정, 전조직 차원의 캠페인을 벌이고 7월말께 산하 비정규직연대회의를 결성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현재 노사정위에 '비정규노동자대책특위'가 구성돼있는 만큼 법제도 개선 문제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민주노총 = 민주노총은 올해 사업기조로 '비조직 조직화와 산별노조 시대'를, 투쟁방침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차별철폐'로 결정한바 있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비정규 노동자 문제제기 및 조직화에 나섰던 민주노총은 올해는 정규직노동자가 앞장서 비정규 문제를 해결하는데 주력해야 한다는 기조를 확정한바 있다. 이를 위해 △단체협약 동일적용 △조합원 자격 인정 △조직화 사업 등을 중심으로 전개하며, 이는 자연스레 산별노조 건설사업과 연동돼 진행하게 된다.

이를 위해 민주노총은 조직쟁의실을 조직·쟁의와 미조직 사업실로 분화, 재편방침을 검토하고 있고, 각 연맹과 지역본부에 가능한한 미조직 사업국을 설치해 골간 조직의 중심의 되도록 할 방침. 또한 미조직노동자 조직화를 위해 인력과 사업비를 우선적 배치를 검토하고 있다. 현재는 미조직특별위가 주축이 돼 비정규직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지난해 한해동안 비정규직노조 90개, 3만5,784명이 조직됐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이룬 사업장이 27개사업장 944명이었다. 99년 재능교사노조를 시발로 방송사비정규노조, 서울대시설관리노조, 보험모집인노조, 골프장경기보조원노조, 한국통신계약직노조, 건설운송노조 등 폭발적으로 비정규직노조가 건설됐고, 지난해 상반기 투쟁에서는 병원, 호텔노조를 중심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요구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오고 있는 등 조건이 그렇게 불리하지만은 않다.

* 비정규직 조직화,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아직 많은 한계과 과제를 안고 있는게 현실이다. 현재 비정규 노동자 관련 법제도 개선이 본격 논의되면서 다시 사회적 쟁점이 될 전망이다. 노사정위가 지난달 31일 '비정규근로자대책특별위'(비정규특위)를 구성하고, 6월중순께부터 본격적 논의에 들어갈 계획이다. 비정규특위는 노동시장 유연화 제고, 비정규 노동자 보호를 목표로 △기간제 근로계약 △파견 근로 △단시간 근로 △특수고용형태(특수업무형태) 등을 논의하게 되며, 하반기 정기국회 때까지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이같이 법제도 개선이 추진되는 것과 별도로 경영계의 인식전환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법으로 제한해놓았어도 캐리어의 경우처럼 이를 무시하고 불법파견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철저한 감시·감독과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 비단 캐리어만의 문제만이 아니라, 제조업에서 비슷한 불법파견이 확산되고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해지는 속도에 비해 노동운동진영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크다. 예컨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충돌은 비단 캐리어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가지 않으면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진단하긴 하지만 이에 대한 유효적절한 '접근법'에 대한 논의가 요구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채우고, 비정규 노동자 문제에 조직적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상급단체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금속산업연맹 문성현 위원장은 지금 시기를 "노동운동이 진보와 퇴보의 갈림길에 서있다"고 따끔한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문 위원장은 연맹이 최근 발행한 '비정규직 투쟁 특보'를 통해 "마음을 열고 원-하청 노동자간 실제 존재하는 차이를 서로 인정하면서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며 "이제는 차이를 극복하고 어디에서부터 출발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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