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민주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많은 노동법령 중에서 그 법이 만들어진 목적이 잘 드러나는 법률은 단연코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과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이다. 법에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이 법이 파견근로자와 기간제 근로자 ‘보호’를 목적으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파견법 제3조에서는 “정부는 파견근로자를 보호하고 근로자의 구직과 사용자의 인력확보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각종 시책을 강구·시행함으로써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직접 고용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정부의 책무’까지 명시하고 있다.

이 법들은 우리 노동현실에서 어떻게 반영되고 있을까. 전화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그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8년을 한 회사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 성실히 근무했는데, 하루아침에 계약기간 만료로 해고됐습니다. 이게 가능한가요?”

떨리는 목소리에 담긴 사정은 이러하다. 그는 한 파견업체 구인공고를 보고 지원해 1차 합격한 후 ‘실제’ 그의 노동력을 사용할 한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재단의 2차 면접을 거쳐 대표자의 운전기사 겸 비서로 일하게 됐다. 그가 작성한 근로계약서에는 그를 고용한 사용자가 파견업체이고, 그의 노동력을 실제 사용하는 회사는 제3자(사용사업주)로 표시됐다.

그는 성실한 자세로 최선을 다해 일했다. ‘제3자’(회사)에게 업무능력을 인정받았으며, 그 결과 파견업체와의 기간이 종료된 이후 회사에 직접고용돼 근로계약을 체결하게 됐다. 비로소 그의 노동력을 실제 향유하던 회사가 근로계약서상 사용자가 된 것이다. 비록 기간제 신분이었지만 최선을 다해 일한 자신을 알아 준 회사에 고마움을 느끼며 더욱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그가 생각한 근로관계에 대한 상식적 흐름은 딱 여기까지였다. 기간제로 근무한 지 2년이 끝나 갈 즈음 회사는 그에게 파견업체 소속으로 변경해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하고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일할 수 없다고 했다. 결국 그는 회사가 지정해 준 파견업체가 사용자로 나와 있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파견법에 따라 1년의 기간을 정하고, 1년이 지난 후에 또 1년짜리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여전히 이전과 같은 장소에서 같은 업무를 수행했다.

그렇게 또 2년이 지날 즈음, 회사는 이번에는 파견업체 소속으로는 계속 근무할 수 없으니 다시 회사와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할 것을 요구했고, 그의 앞에는 사용자 표시가 달라진 ‘1년’짜리 근로계약서가 다시 놓였다. 그는 회사를 사용자로 하는 1년짜리 계약서에 서명하고 해고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렇게 또 2년을 일했다. 그리고 또다시 2년이 지날 즈음 이번에는 파견업체가 사용자가 돼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1년, 또 1년이 지났다.

자, 이번에는 근로계약서에 회사가 다시 ‘사용자’로 등장할 순서! 하지만 그가 받은 것은 근로계약서가 아닌 근로관계종료 통보서였다. 해고사유는 오로지 하나, 기간 만료였다.

늘 같은 자리에서 같은 노동력을 제공했으며, 그의 노동력을 사용하는 자도 같았지만 정작 계약기간만료 통보서에 찍힌 파견업체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그의 노동력을 사용한 자의 실체는 분명한데, 자신의 노동력을 사용했던 자는 그에게 사용자가 아니라고 한다. 그는 기간제 근로자였지만 기간제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고, 파견근로자였지만 파견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그는 보호받을 권리를 위해 힘든 싸움을 시작했다. 힘든 결정을 내린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최근 한 방송국 앵커가 세상 이치와 법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정의와 동의어로 사용되는 법(法)이라는 한자는 물(水)이 흐르는(去) 형상에서 유래됐고, 이를 풀어 보면 물 수(水)변에 갈 거(去). 즉 물이 흐르는 이치와도 같이 마음이 편한 쪽으로 행동하면 그것은 곧 법과 같다는 것이다.”

법의 해석은 ‘형식’이 아닌 근로관계의 ‘실체’를 직시해야 한다. 물이 흐르는 이치와도 같이 법(法)이 보호하고자 했던 곳으로 흘러가면 그것이 법이 실현하고자 한 정의로 가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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