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16대 국회가 개원한지 1년, 노동계는 다양한 정치적 실험으로 노동계의 정치활동의 가능성을 모색해 왔다. 지난 총선에서 국회에 진출한 노동계 출신 의원들은 국회에서 활동을 하고 있고, 간발의 차이로 국회진출에 실패했던 민주노동당도 활발한 원외 활동으로 재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16대 국회 개원 1년을 맞아 노동계 정치세력화의 현주소를 점검하기 위해 노동계 정치활동의 일선에 있는 인사들에 대한 연쇄인터뷰를 기획했다.


최근 민주당의 정풍 파문에는 눈길을 끄는 한 의원이 있다. 박인상 의원. 대부분 소장파 의원들로 이루어진 민주당내 개혁그룹에서 한국노총 위원장을 지낸 60대의 박인상 의원의 존재는 약간은 의외성을 띄고 있다. 한국노총 위원장 시절 DJ와의 정책연합을 성사시켜 정치권도 무시못할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고, 그만큼 그의 정치권 진출을 놓고 노동계 내 뜨거운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가 여당내 소장파 개혁그룹의 한 사람으로 떠오르면서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다.

박의원이 정치인으로 입문한지 1년 동안 그의 활동은 그리 눈에 띄지는 않았다. 여기에는 우리의 착시현상이 개입돼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노총 위원장 시절이 워낙 화려했었기 때문에 현재 여당 초선의원인 그의 활동이 상대적으로 약하게 보이는 현상 말이다. 어쨌든 그는 다시 우리의 시야에 들어왔고, 기자에겐 그동안의 변화가 궁금했다.

- 요즈음 민주당의 정풍운동으로 눈길을 모으고 있는데.

= 3년 전에 DJ 정부에게 기대를 걸고 밀어줬던 사람들이 떠나고 있다. 그 사람들은 우리만 당했다고 말한다. 소득격차는 더 커지고, 고용불안은 심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 사람들은 우리만 길거리에 나앉게 됐다며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여당이 제 역할을 하려면 당이 정책을 리드하며 가야 한다. 장관임명 하나 가지고도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는데, 책임질 사람이 책임을 져야 당의 정책 리드가 가능하다.

- 박의원이 소장파로 분류되는게 어색하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 어떤 사람들은 한국노총 위원장 출신이 왜 386세대들과 어울리느냐는 소리를 듣는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초선의원이고 국회에서는 '초짜'다. 그런 점에서 나도 소장파다. 초선의원답게 노력하는 의원이 되고 싶다.

박의원은 그래도 자신이 노조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그런 개혁 흐름에 함께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그렇지 않았으면 편한 길을 택했을지도 모른다면서. 아마도 그의 머리 한 구석에는 자신이 한국노총 위원장 출신이라는 사실이 자리잡고 있는 듯했다.

- 국회의원으로 1년동안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점도 많았을 것 같다.

= 지난 1년을 돌이켜 보면 참으로 벅찼다는 생각이 든다. 국회 내에서 노동쪽의 목소리는 소수파다. 노동문제가 터지면 주위에서는 '아이고 박의원 골치 아프시겠습니다' 그런다. 한마디로 자기들의 문제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노동문제는 나같은 노동전문가나 신경 쓰고 자신들의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막상 국회에 들어와 보니 노동쪽의 목소리가 너무 없다. 한편으로 보면 민주노동당이 한명이라도 국회에 진출했더라면 훨씬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도 해본다.

- 여당의원으로서 민주노동당 출신 국회의원의 필요성을 얘기해도 되는가.

= 내 생각은 그렇다. 솔직한 진심이다. 1년동안 의정활동을 하면서 노동을 아는 사람이 국회에 진출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동안 박 의원의 의정활동이 주목의 대상이 된 적은 많지 않다. 여기에는 박의원의 말대로 초선 의원으로서 활동의 한계가 있을 수도 있었을 터이다. 그러면 한사람의 초선 의원으로서 지금까지 그는 어떤 활동을 해왔을까. 그는 먼저 정치권 진출 당시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했다. 아마도 당시의 논란에 대해 아직도 마음에 짐으로 느끼고 있다는 뜻이리라.

= 처음에 정치권으로 올 때는 정말 고민이 많았다. 30년 노동운동을 마무리 짓고 야인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정치진출이 논란이 되면서 오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국회에서 할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국회의원이 됐고, 실제로 여기에 와보니 실제로 할 일이 너무 많다. 모성보호 문제, 근로시간 단축문제, 비정규직문제, 구속자 석방 문제, 건강보험 문제 등등 수없이 많다. 하나하나 정리해 나가야 하는데.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박의원은 환노위에서 노동문제에 관련해서는 자신이 가장 많은 자료집을 낸 의원일 것이라며 그동안 손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했다. 실제로 그가 건네준 자료에는 '노동개혁의 과제와 방향', 비정규노동자 보호를 위한 정책과제', 2000년 상반기 노동정책의 문제점과 대안' 등 노동관련 정책자료집이 들어 있었다. 말이 나온 김에 현정부의 노동개혁, 공공부문 구조조정 정책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어봤다.

= 정부는 노동개혁 한다면서 미리 정해진 인원감축 숫자에 맞추는 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게 진정 개혁의 목적은 아닐 거라고 본다. 시스템을 평가해서 문제점을 찾고, 그 문제점을 해결하는 식이 돼야 한다. 제도가 잘못인 건지, 아니면 인력이 많아서 문제인건지 검토를 해본 뒤에 노사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대안을 협의하는 과정을 거쳐서 개혁을 하든지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고 있다. 기획예산처에서 미리 짜놓은 인원감축안을 놓고 그대로 실행이 안되면 예산을 안주는 식으로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노사가 책임을 지고 협의를 해서 대안을 찾아가는 것이 돼야 한다.

- 당에서 이런 문제를 제기해보지 않았는가?

= 이런 문제는 당정협의를 거치게 되는데, 당에서는 개혁을 하려면 밀어 붙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그러다 보니 당정협의에서 통과가 되고 나면 그때부터는 일사천리로 진행이 된다. 그 뒤에 문제제기해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당정협의 전에 상임위 소속 의원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도록 하자는 쪽으로 대안을 만들어 가고 있다.

박의원은 노동계 출신 의원들의 발언력에 한계를 느끼고 있는 듯 했다. 그러면 그 한계를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가. 정치인으로서 그는 어떤 해답을 찾고 있을까. 한편으로는 박의원이 민주노동당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는 게 기자의 관심을 끌었다.

- 노동계의 정치세력화의 문제점이 뭐라고 보는가.

= 우리나라 노동조합운동은 노동자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어도 이것을 조직화 하는데는 약하다. 자기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내야 하는데, 결정적인 순간에는 지역이나, 학연, 친분관계라는 함정에 빠져 버린다. 그렇게 길들여져 온 것이다. 그래서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노조 표는 먼저 보는 놈이 임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래서는 안된다. 서로 발벗고 나서는 심정으로 뛰어서 투표까지 연결 시켜야 한다. 이렇게 정치세력화를 하기 위해서 지역적인 거점이 필요하다. 울산같이 공단지역에서는 성공가능성을 확인하기도 했고, 다음 선거에서도 노동계가 국회로 진출할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 민주노동당이 나름대로 대안제시를 잘하고 있다고 본다. 국회의석도 없이 전국적인 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 정말 너무 고생한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이런 활동이 17대 총선에서는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유럽에서는 5-6명만 되면 교섭단체를 꾸려서 정치적 발언권을 행사한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된다면 발언권이 정말 커질 수 있다.

박의원은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와 양대노총을 이끌던 기억이 새롭다고 말했다. 특히 97년 노동법 파업 때 양대노총이 연대투쟁을 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서 권영길 대표를 한번 보고 싶다고 했다.

올해 하반기에는 근로시간단축, 비정규직 노동자 보호 등 제도개선 쟁점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에 대한 박의원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가장 상징적인 문제인 근로시간단축문제를 짚어봤다.

- 최근에 노동부 장관이 올해 안에 근로시간단축 관련해서 법안을 상정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는데 어떻게 전망하는가.

= 근로시간 단축을 놓고 노사정 합의는 어렵다고 본다. 결국에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 공무원이나 공공부문부터 근로시간 단축을 실시하면 그에 따라서 은행 등이 주5일제로 전환하는 식으로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 이렇게 하면서 실업률 하락과 재고용이 가능한지, 가능성을 확인해 보면서 최종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기자는 마지막으로 정치인들이 구설수에 오르곤 하는 소재인 골프를 치는지를 물어봤다. 그는 운동삼아 실내연습장에는 가본 적은 있지만 아직 필드에 나가본 적은 없다고 했다. 아마도 그게 박의원의 현주소일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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