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박근혜 퇴진을 위한 촛불이 한창이던 때 경남 촛불집회에서 한 청년노동자가 했던 발언이 여러 사람의 마음을 울렸다. "박근혜가 퇴진하면 우리 삶이 달라질까요"라던 그 질문에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려웠다. 내일을 알 수 없는 불안정한 노동, 경쟁에 지치고 밀려나면 퇴출되는 비정한 노동, 열심히 일해도 생계를 유지하기에 버겁고, 제품 안전을 위해 노동자 안전을 희생시키는 노동현실은 박근혜가 물러나도 꿈쩍하지 않는다. 이제 대선이 시작됐다. 후보들은 "내가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해 주겠노라" 공약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가 대통령이 돼도 우리 삶이 달라질 것이라고 믿기 어렵다.

우리는 촛불광장에서 민주주의를 경험했다. 시민들이 광장에서 정치의 주인임을 선언한 결과 박근혜는 탄핵됐고 권력은 바뀌었다. 광장에서 주인이었던 우리가 일터에서도 주인이 돼야 한다. 그래야 삶이 달라진다. 그런데 정치의 주체로서 시민의 권리는 승인됐지만 일터에서 노동자의 권리는 사회적으로 부정된다. 그 많은 민주주의는 공장의 담벼락에서 멈춘다. 존재하지도 않는 '경영권'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의 희생은 정당화된다. 기업이 잘돼야 사회가 잘된다는 논리는 이미 현실성은 없지만, 사회를 지배한다. 기업의 이윤 때문에 안전장치 없이 일하던 노동자들이 죽음에 이르게 돼도, 열심히 일하던 노동자가 정리해고와 계약해지로 쫓겨나도, 그렇게 열심히 일한 이들이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으로 고통받아도 그 모든 것이 정당화된다.

정치의 주체인 우리는 어떻게 일터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헌법에 보장된 '행복추구권'이 노동하는 자들의 권리로 어떻게 전화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이미 광장에서 그 가능성을 확인한 바 있다. 바로 '모이는 것'이다. 1천700만명의 시민들이 광장에서 촛불을 들자 국회와 경찰과 법원과 언론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광장의 요구를 수용했다. 광장에서 촛불을 들 때는 힘 있는 군중의 한 사람이었으나 일터로 돌아간 나는 약한 한 명의 노동자일 뿐이다. 그렇지만 현장에서 나와 우리가 '뭉칠 수 있다면' 우리는 일터에서도 권리의 주체로 설 수 있다. 그래서 헌법에서도 노동자의 단결권을 매우 중요한 권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헌법 33조는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돼 있다.

우리의 삶이 변화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노동조합 조합원이 돼야 한다. 노조 조직률은 지금 10%밖에 안 되고 비정규 노동자 조직률은 2%도 되지 않는다. 조합원이 되는 것은 해고 위험과 회사 탄압을 견뎌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노조가 가장 필요한 비정규 노동자들은 조직률이 오히려 낮다. 노조 가입이 일반화돼야 한다. 밥을 먹고 거리를 걷는 것처럼, 종교를 갖는 것처럼, 노조에 가입하는 것이 당연하고 쉬운 일이 돼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노조활동을 가로막는 법을 고쳐야 한다.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를 강력하게 처벌해야 하고, 손해배상 청구도 못하게 해야 하고, 원청 사용자 책임도 제도화해야 한다. 노조활동을 가로막는 여러 법을 고쳐야 한다. 노조도 문을 더 열어야 한다. 개인이 가입할 수 있도록 하고, 필요하다면 준조합원 제도를 만들어 더 많은 이들이 노조와 가까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때로는 노동조합이 자신의 삶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하고, 그래서 노조 가입이 두렵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조합원이 돼야 한다.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비정규 노동자들, 고용형태가 왜곡돼 누가 사장인지도 알 수 없는 노동자들, 영세 사업장에서 사장과 더불어 힘들게 일하는 노동자들은 조합원이 돼도 파업을 못하고 단체협약도 맺기 힘드니 노조가 뭔 소용이 있나 생각한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사업장 안에서 임금이나 노동조건을 올리는 일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 권리보장법을 만들거나 최저임금을 올리기 위해 함께 싸울 수도 있고, 함께 문화적으로 풍부한 삶을 누릴 수도 있다. 무엇보다 홀로 버티지 않고 여럿이 함께 싸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함께 뭉쳐서 시민의 권리를 이야기하던 촛불광장을 우리 일터로 확장하는 길은 바로 '조합원이 되는 것'이며, 그 힘으로 우리는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러니 이제 두려워하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조합원이 되자!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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