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승일 사무금융노조 정책연구소 소장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으로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 지난해 10월부터 전국 광장을 밝힌 촛불이 거둔 성과다. 이제는 촛불혁명의 정신을 대선 국면에 녹이는 방식을 고민할 차례다. 노동계는 노동의제가 대선 공약이 되길 바란다.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정부를 구성하자는 말이다. 1987년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넥타이 부대' 사무금융 노동자들이 폐기해야 할 적폐와 차기 정부 과제에 관한 글을 <매일노동뉴스>에 보내왔다. 네 차례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민주주의가 국가 통치구조(지배구조)에 관한 담론이라면, 경제민주주의란 경제 통치구조에 관한 담론이다. 경제민주주의는 기업의 통치(corporate governance)와 산업의 통치(industrial governance), 그리고 경제의 통치(economic governance)에 관한 기획을 포함한다.

"민주주의는 회사 정문 앞에서 정지한다"는 유명한 격언이 있다. 제아무리 차기 대통령을 민주적으로 선출하면 뭐하나. 정작 매일 출근해서 하루 일과 대부분을 보내는 직장에서 노동자들이 노예 취급 받으며 일체의 투표권과 피투표권이 없다면 말이다. 직장에서는 '자본의 독재'가 판을 치면서 노동자들은 노예인 것이 헬조선의 현실이다.

참된 경제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직장에서도 관철된다. 유럽에서는 부장급 이하 전체 직원-노동자들의 직접선거로 선출된 대의원들이 이사회에 이사로 진출한다. 주주와 함께 직원-노동자가 회사를 공동으로 통치하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1940년대 말부터 이러한 노사 공동결정제를 시행하고 있다. 대기업의 경우 이사의 절반이 노동자대표 이사다. 스웨덴의 경우 이사회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경제민주주의의 본질을 산업민주주의 또는 노사 공동통치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논의된 경제민주주의는 1920년대 유럽에서 시작된 노사 공동통치 담론이었다. 그리고 68혁명 이후 70년대에 서구에서 다시 부활한 경제민주주의 논의 역시 공정한 노사질서 또는 산업민주주의(industrial democracy)에 관한 담론이었다. 1주1표 또는 1원1표라는 자본주의의 룰(rule)에 맞서 1인1표라는 민주주의의 룰(rule)이 기업과 산업, 경제의 3차원에서 관철돼야 한다고 본 것이다.

회사에서는 주주(오너 및 소수주주 투자자)가 독점한 이사회 권력과 각종 의사결정 권력을 해체해 노동자-직원 대표들도 1인1표 원칙으로 공동통치하는 기업 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를 구축한다. 산업 차원에서는 사내·외 하청노동자와 비정규직을 포괄하는 진실한 1인1표 원칙의 산업별 연대 노동조합을 만들어 산업별 사용자단체와 함께 해당 산업을 공동통치하는 지배구조(industrial governance)를 구축한다. 또한 국민경제를 관리하는 경제기관인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소비자보호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방송통신위원회에 노동운동과 소비자운동이 사회공동체 대표로서 참여해 공동통치하는 경제적 지배구조(economic governance)를 구축한다. 참여민주주의의 원리가 경제영역에서 뿌리내리는 ‘실질적 민주주의’가 본래의 세계 보편적 경제민주주의 기획이다.

현재 사무금융노조의 정책제안에는 이러한 세계 보편적 경제민주주의가 고루 담겨 있다. 우리 노동운동 역사상 처음이 아닐까 싶다. 기업 차원에서는 노동조합 추천 노동이사제와 금융지주회사의 사용자성 인정, 구조조정시 노·사·주주 협의 의무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폐지를 제안했다. 산업 차원에서는 산별교섭 법제화와 산별교섭 효력 확장제를 주문했다. 국민경제 차원에서는 한국은행·금융감독원·예금보험공사 등 경제와 금융의 시스템 안정에 필수적인 기관의 의사결정에 노동조합과 소비자단체 추천 몫의 의무화를 요구했다.

사무금융노조는 △중앙은행의 독립성 및 공공성 강화 △금산분리 강화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의 정부 기능 분리 △금융소비자 보호 정부조직의 독립화 △금융지주회사 규제 강화를 비롯한 다양한 금융공공성 확보 방안도 제시했다. 금융공공성의 본래 취지가 ‘금융자본 및 금융시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라고 할 때 이 역시 넓은 의미에서 경제민주주의의 일환이다.

경제민주주의의 궁극적 목적은 직장과 산업, 국민경제 전체에서 노동권과 인권이 신장되고 건강한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재벌그룹 개혁과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은 그 목적의 구현을 위한 수단, 그것도 여러 수단의 일부일 뿐이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경제민주주의 담론과 전략이 세계사적 보편성을 지니는 진짜 경제민주주의로 힘차게 전개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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