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야권 주요 대선 주자와 후보진영이 노동·시민·사회단체 끌어안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노동·복지 관련 단체들이 제기한 대선과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미흡한 공약은 다듬겠다고 약속했다. 대선 후보들은 22일 오전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열린 '복지, 노동, 공공성 강화를 위한 대선 후보 초청 토론회'에 참석했다. 토론회는 양대 노총과 참여연대·한국여성단체연합 등 15개 단체가 공동 주최했다.

문재인 "특수고용직 노동 3권 보장" 공약
심상정 "구속 노동자 즉시 석방"


토론회 주최 단체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이끈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에서 중심 역할을 했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원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선후보들에게 요구·전달하겠다"는 게 토론회 개최 취지다.

대선 주자들은 토론회에서 "촛불혁명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인 문재인 전 대표는 "대선은 명예로운 촛불혁명을 완수하고 상식을 사회 곳곳에서 바로 세우는 과정이 될 것"이라며 "참여정부는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부족했던 만큼 반성도 하고 다짐도 하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공공인프라를 확충해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공공서비스를 새롭게 탈바꿈하겠다"며 "부양의무제도(부양의무자 기준)를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부양의무제는 장애인·빈곤층이라도 직계가족 등 부양의무자의 소득이나 재산이 있으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없도록 한 제도다. 복지 수혜자 규모를 줄이거나, 복지재정을 절감하는 데 이 제도가 악용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정의당은 당론으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예비후보와 유승민 바른정당 예비후보도 공약으로 폐지를 약속한 상태다.

노동공약도 잇따라 내놓았다. 문 전 대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법제화하고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일체 차별을 폐지하겠다"며 "노조 조직률과 단체협약 적용률을 높이고, 특수고용직의 산재보험 가입 의무화와 노동 3권을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고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말도 남겼다.

문 후보에 이어 연단에 선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원내정당 중 제일 왼쪽에 있는 정의당을 넘어서는 경제민주화 공약이 제출되는 등 대선에서 바람직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면서도 "민주당 후보들은 비정규직을 확산한 역사를 성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참여정부 시절 제·개정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과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심 후보는 "노동개악에 맞서서 집회·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노동자 대표가 3년 중형을 받는 나라에서 노동과 복지를 논의한다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 일인지 곱씹어야 한다"며 "당선되면 노동탄압으로 구속된 이들을 우선적으로 사면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노동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점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시행, 과감한 노동시간단축으로 일자리를 나눠야 한다"며 "헌법이 보장한 노동 3권을 실현하는 한편 조세개혁과 사회복지세를 신설해 복지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촛불정부, 기득권 중심 사회를 99% 시민 중심으로 바꿔야"

토론회 발제자들은 '촛불혁명'으로 치러지는 대선으로 수립된 정부는 광장의 요구와 이해를 대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기본적 소득보장과 공공인프라 확충'을 주제로 발제한 윤홍식 인하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촛불정부는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과 사회보장제도 사각지대를 없애는 숙제를 풀어야 한다"며 "고용보험·건강보험을 강화하고 실업부조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공적 사회서비스 인프라 확충을 위해 공공부문 고용을 확대해야 한다"며 "공정한 과세와 누진적이고 보편적인 증세를 통해 조세구조를 정상화해 복지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윤 교수는 "촛불정부는 우리나라 세력관계를 기득권 중심에서 99%의 시민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며 "공적소득 보장확대·공공부문 고용확대·누진적 보편증세는 광범위한 정치적 지지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창근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박근혜 정부 적폐 해소와 노동존중 평등사회 건설을 이번 대선 핵심의제로 꼽았다. 그는 "우리 사회의 경제·사회적 불평등은 지속불가능한 수준까지 악화됐고 재벌대기업이 이윤을 독식하면서 노동자·서민은 물론 중소하청기업과 자영업자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며 "경제·사회·노동 분야의 정책방향이 전면적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실장은 노동 분야 핵심 정책으로 △최저임금 1만원 △노동 3권 보장 △재벌책임 강화 △장시간 노동 근절 △박근혜표 나쁜 노동정책 청산을 제시했다.

후보들 "촛불민심 적극 수용, 미흡한 점 고치겠다"

각 대선캠프 정책담당자들은 두 발제자의 제안에 동의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문재인·안희정·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예비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 진영이 토론회에 참여했다.

홍종학 문재인캠프 정책본부장은 "탄핵의 주인공이자 민주공화국의 주인인 촛불시민들과 함께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길 희망한다"며 "돈 벌이보다 공공의 가치를 우선으로 여기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공공기관 평가나 기업지원을 결정할 때 좋은 일자리 확대와 원·하청 상생 여부를 기준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홍 본부장은 "노동이사제로 노동자들이 경영의 주인이 되고, 노사정 대화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 저희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안희정 후보쪽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노동법원을 만들어 심판기능이 효과적으로 진행되도록 만들고 기존 노동위원회를 공정노동위원회로 격상시켜 근로감독기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겠다"며 "산별노조를 강화하고 노동회의소를 설치해 미조직노동자들의 단결권을 확보한 뒤 노동자를 사회적 대화의 핵심 주체로 세우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고용보험을 확대·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상대방이 있는 싸움이기 때문에 협치와 연정으로 풀어 보려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후보쪽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금 우리는 가난과 불평등을 모두 개인의 잘못으로 여기고 받아들이도록 시스템화돼 있는 공포스러운 사회에 살고 있다"며 "정권교체 목표는 사회를 바꾸는 것에 있고, 이를 위해 보편적 복지라는 가치를 잃지 않도록 노동·시민·사회가 대선 후보들을 질책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노동기본권을 강화하는 것이 시대정신인데도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겠다는 등의 발언이 나오고 있다"며 "공약검증을 매섭게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안철수 후보쪽 김원종 국민의당 정책위원회 부위원장은 "공공부문의 정규직 일자리를 늘리는 한편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기업에 불이익을 주고 세액공제 감액을 통해 정규직 전환을 도모하겠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의 복지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기조를 가지고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노동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안 후보를 향한 현장의 비판을 수용해 전달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심상정 후보쪽 김용신 정의당 정책위의장은 "헌법 전문에 노동존중과 평등사회에 대한 가치를 넣고 정규직 고용 원칙이 명시돼야 한다"며 "비정규직 사용사유를 제한하는 방식의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역진불가능하게 사회를 바꿔 나가기 위해서는 개혁을 중단 없이 추진할 수 있도록 하는 세력이 형성돼야 한다"며 "노조 조직률 30%가 달성된다면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한국사회가 뒤로 쉽게 후퇴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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