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사정위원회

“고령화 시대에, 나이가 많을수록 임금이 높아지는 연공중심 임금체계는 근로자에게 정년 이전 퇴직을 강요하는 한편 신규채용보다는 비정규직을 쓰거나 하도급을 활용하려는 유인을 강하게 합니다. 또 기업들이 기본급을 줄이고 변동급인 성과급을 확대하려는 유인을 제공합니다.”(정진호 한국노동연구원 고용영향평가센터소장)

“답보상태에 있는 임금체계 개편 논의가 출구를 찾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노동조합의 인식과 태도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임금체계 개편도 중요하지만 임금수준 향상과 임금격차 해소 문제도 등한시할 수 없습니다. 노사가 대화와 협의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는다면 임금체계 개편은 쉽지 않은 과제로 남을 겁니다.”(이상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임금연구회가 2016 임금보고서를 21일 발간했다. 이를 기념해 노사정위와 한국노동경제학회가 이날 오후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개최한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임금체계 개편 필요성과 방향, 방법을 두고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노사정위 임금연구회가 임금보고서를 내놓은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이번 보고서에서 연구회는 직무급·역할급·능력급과 대안적 종합급 같은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다양한 모델을 선보이는 데 주력했다.

저성장·고령화·4차 산업혁명 시대의 임금체계는

발제에 나선 정진호 노동연구원 고용영향평가센터소장은 임금체계 개편 필요성을 강조하는 데 힘썼다. 정진호 소장은 “저성장·고령화·정년연장 같은 환경·제도 변화와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연공중심 임금체계는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들다”며 “대기업 정규직 중심 연공급 임금체계가 오히려 장년근로자 해고와 비정규직 채용 유인을 확대하는 만큼 연공성을 완화하거나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소장은 “일본이나 유럽 국가들도 근속연수가 늘어나면서 임금수준이 증가하는 우상향 임금곡선을 나타낸다”며 “그러나 우리나라는 우상향 기울기가 다른 나라에 비해 크게 높다(연공성이 강하다)는 데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민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노사가 공동의 목표를 세우고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는 한 임금체계 개편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교수는 “정부가 적극 나서고 경영계도 연공급 완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의도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다”며 “노동계 입장을 이해하고 다양한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노사 공감대 없으면 개편 쉽지 않다”

이 교수는 노동계 입장을 “대안적 임금체계를 찾지 못해 수세적으로 현상을 유지하려는 모양새”라고 표현했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임금정책의 명시적 원칙으로 제시하면서도 구체적인 실현방안은 찾지 못했다는 지적도 제기했다.

금속노조가 발주한 ‘금속산업의 임금구조와 임금체계 분석 보고서’와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이 만든 ‘금속노조 산별임금정책을 위한 연구 보고서’, 민주노총이 수행한 ‘산별노조시대, 임금·고용·복지 연대전략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다.

그는 “민주노총은 임금수준을 높이는 동시에 노동 내부의 임금격차를 해소하려는, 결과적으로 전체 근로자의 임금 상향평준화를 꾀하겠다는 전략을 펴고 있다”며 “그러나 실제로는 대기업 근로자의 임금인상 요구를 억제하지 못했고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획기적으로 높이지도 못하면서 실질적 대안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한국노총에 대해서는 △임금구조 단순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실현 △연공급을 포함한 다양한 임금체계 모색이라는, 민주노총보다 다소 유연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이에 대해 “연공급은 사회안전망이 미약하고 가계지출 비용을 전적으로 임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상황을 반영한 가장 한국적인 임금모델”이라고 설명했다. 정 본부장은 다만 “기업별·산업별로 임금격차가 확대하고 있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실현을 위한 대안적 임금체계 모색은 필요하다”며 “기업 차원을 넘어선 산업·업종별 직종 단위의 숙련요소가 반영된 표준임금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엄교수 전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정책실장도 “임금체계 개편을 위해서는 노동자가 생존권을 보장받도록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이 구축돼 있어야 한다”며 “산별노조를 중심으로 노동계를 사회적 합의 주체로 인정하고 논의를 진행해야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획일적 대안 말고 기업 실정에 맞는 방안 찾아야

이상민 교수는 재계에는 △임금 저하 없는 개편 △추가 인건비 발생 최소화 △임금체계 개편시 기득권 최대 보장 △임금항목 단순화 같은 사전 원칙을 수립해 피해 보는 노동자를 최소화하고 노동계 수용성을 높일 것을 주문했다.

이와 관련해 하상우 한국경총 임금체계혁신지원센터장은 “상당수 기업이 기존 임금체계 틀 내에서 개편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려할 때, 직무가치·능력·근속 같은 다양한 요소를 적절하게 조합한 종합급이 수용성 높은 임금체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밝혔다.

실제 이날 토론회에서 ‘임금체계 개편의 방향과 대안’을 주제로 발제한 박우성 경희대 교수(경영학)는 새로운 임금체계 대안으로 직무급·역할급·능력급과 함께 대안적 종합급을 제시했다.<표 참조>

직무가치에 따라 기본급을 결정하는 직무급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역할급은 각 개인이 조직에서 부여받은 역할의 크기나 중요도에 기초해 임금을 주는 체계다. 박 교수에 따르면 직능급·기능급·숙련급을 포함하는 능력주의 임금체계는 개인의 능력과 함께 경험적 숙련(근속)을 반영하기 때문에 연공성·임금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대안적 종합급은 직무가치와 능력·숙련, 근속(연공급) 같은 다양한 가치를 모두 포괄하거나 일부 조합해 새로운 임금체계를 만들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노사 간 다양한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박 교수는 “모든 기업이 획일적인 임금체계를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며 “과도한 연공성은 완화하면서 임금의 안정성과 공정성,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기업 실정에 맞는 대안을 노사가 함께 마련할 때 임금체계 개편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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