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철 사무금융노조 정책기획실장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으로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 지난해 10월부터 전국 광장을 밝힌 촛불이 거둔 성과다. 이제는 촛불혁명의 정신을 대선 국면에 녹이는 방식을 고민할 차례다. 노동계는 노동의제가 대선 공약이 되길 바란다.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정부를 구성하자는 말이다. 1987년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넥타이 부대' 사무금융 노동자들이 폐기해야 할 적폐와 차기 정부 과제에 관한 글을 <매일노동뉴스>에 보내왔다. 네 차례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최근의 금융은 일반 기업들처럼 이익논리에 휩쓸려 ‘(주주)이익의 극대화’라는 수익성 측면이 강조되면서 소위 ‘약탈적 금융’이라고 비판받고 있다. 그리고 최순실·박근혜와 재벌들의 정경유착 과정에 동원된 어떠한 금융기업에서도 내부통제가 작동한 곳이 없다. 그래서 사무금융노조는 ‘경쟁과 약탈의 차가운 금융’이 아니라 국민경제 수준에서 공익에 기여하고, 사회적 약자의 경제기회 장려를 위한 ‘협동과 돌봄의 따듯한 금융’으로의 패러다임 전환과 이를 위한 적폐청산의 시급함을 역설하고 있다.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과 적폐청산을 위해 노조는 현재 ‘대선후보와 함께 하는 정책제안 간담회’를 통해 4개 분야 32개 주요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현재까지 노조와 간담회를 진행한 진보ㆍ개혁진영 주요 대선후보들은 노조 제안에 적극 공감하고 있다. 그들이 공감한 우리의 제안대로 대통령선거 후 법과 제도가 바뀌게 되면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게 될까.

노조가 제안한 주요 정책 중 노동조합 추천 이사 도입, 산별교섭 법제화와 산별단체협약 효력확장제 도입, 여성임원 할당제 법제화, 횡령ㆍ배임죄에 대한 금융기관 대주주적격성 심사 강화가 시행될 경우 우리의 일터와 사회가 어떻게 변하게 될지 재벌계열 보험사에 다니고 있는 가상의 30대 중반 여성노동자 A씨의 일과를 통해 함께 상상해 보자.

A씨는 어제 꺼림칙한 사업계획안 내부제보를 받았다.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사업계획을 초과하는 자금흐름이었기에 확인이 필요한 사안이었다. 출근한 후 곧바로 노조 추천 이사에게 관련 사실을 보고하고, 긴급 이사회 소집을 요구하도록 했다. 혼자였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노조와 노조 추천 이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산별교섭 대표로서 오후에는 사용자단체 대표들과 교섭에 나가야 하기 때문에 오전 중에 이사회 여성임원들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다. 여성임원 할당제에 따라 이사회에 여성임원들이 30% 정도 되었기에 노조 추천 이사와 함께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내부단속이 되고 있었다. 안심하고 금융지주회사 사용자단체와 교섭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오늘 산별교섭의 주요의제는 지난하게 논의했던 고용안정 문제와 동일노동 동일임금 협상이었다. 지루한 협상과정이었지만, 오늘 중으로는 결론이 날 듯 했다. 사측은 노조가 요구한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 전환과 동일노동 동일임금안을 마침내 수용했다. 그리고 산별단체협약 효력확장제도에 따라 노조가 없는 회사에도 동일한 효력이 발생됐다.

산별단체협약에 최종 서명이 이뤄진 며칠 후, A씨는 노조가 없는 재벌계열 보험사 콜센터 업무를 하고 있던 여성노동자에게서 감사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오늘 그 보험회사와 정규직 전환 근로계약서를 썼다고 한다. 얼굴도 모르는 그녀의 울먹임 섞인 감사인사에 A씨 또한 코끝이 찡해진다.

그리고 한 달 뒤 지난 번 꺼림칙한 사업계획에 대한 이사회 차원의 내부감사 결과가 나왔다. 대주주의 부당한 요청으로 사업부서에서 계열사에 대한 대금계산을 과다하게 책정했다는 내부감사 결과였다. 이사회는 사업계획을 수정하고, 대주주에게 강력 경고했다. 계획대로 집행됐을 경우, 감독당국 검사에서 대주주 징계가 이뤄질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강화된 대주주적격성 심사결과에 따라 대주주자격을 상실할 수도 있었고 회사가 큰 혼란에 빠질 수도 있었는데, 내부통제가 잘 작동했기에 그러한 위험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일하는 기계가 아니라, 회사의 주인이라는 자부심으로 가득 찬 그녀의 하루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가족과 함께할 저녁시간을 위해 그녀는 미소와 함께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설정했다. 누군가에게는 세상이 망할 발칙하고 불온한 상상일 것이다. 2007년 사립학교법 개정으로 개방형이사제가 도입됐을 당시, 전교조에 의해 학교 이사회가 장악돼 사립학교가 망할 것이라고 했던 것처럼 기업 이사회가 노조에 의해 장악돼 기업이 망한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개방형이사제 때문에 사립학교가 망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런 주장을 할 그들에게 ‘신화와도 같았던 인물’이 했던 말로 대신하고자 한다. “해보기는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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