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성우 공인노무사(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한국에는 총 39개의 노동법이 있다. 현행 노동법들 중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법이 뭘까. 대다수의 예상과는 달리 정답은 노동위원회법이다.(1953년에 제정된 한국 최초 노동 3법 중 노동조합법과 노동쟁의조정법은 1997년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으로 통합되면서 폐지) 노동위원회법 역사는 당연히 노동위원회라는 기관의 역사이기도 하다. 현재 노동위원회는 고용노동부 소속이지만, 노동부는 1980년 말에야 생겼으니 노동위원회의 역사와 비교조차 어렵다. 당연시되는 ‘노동부 산하 노동위원회’라는 체계가 노동위원회 역사를 통틀어 보면 절반정도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노동위원회가 꼭 노동부 소속이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기도 하다.

노동위원회법의 역사는 한국 노동법 역사의 축소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노동쟁의 조정기구로 설립된 노동위원회는 부당노동행위 구제, 부당해고 구제, 비정규직 차별시정,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결정이라는 네 가지 심판기능을 시차를 두고 추가해 왔다. 이것은 지난 60여년간 한국 노동법의 변천 과정과 맥을 같이 한다. 노동법 전반의 개정 과정에서 새로운 노동분쟁에 대한 조정과 심판기능 대부분이 노동위원회 권한으로 수렴돼 왔다. 노동위원회는 연간 1만4천건의 심판사건을 처리하며 무려 95%의 분쟁해결률을 보이고 있다. 이런 현실까지 감안하면, 노동분쟁사건에 대한 노동위원회의 대단한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동시에 특히 신설제도로 발생한 노사 간 새로운 권리의무의 구체적 획정이 사실상 노동위원회의 판단에 맡겨져 왔다고도 볼 수 있다.

현재 노동위원회 체계는 소위 노사관계로드맵 법률의 일환이었던 2007년의 개정 노동위원회법으로 만들어졌다. 1997년 개정 이후 가장 큰 폭이자 ‘역대급’ 개정이었다. 핵심은 조직 및 위원 확대, 공익위원 위촉절차 변경, 상임위원 중심의 사건처리 체계 구축, 조사관제도 신설이라고 평가된다. 같이 개정된 근로기준법에는 해고서면통보·금전보상명령·이행강제금제도 등 노동위원회 심판과 연계된 주요 제도들이 도입됐다. 올해가 그 시행 10주년이다. 진중하게 지난 10년의 시행 내용을 평가하고 노동위원회의 내일을 물어야 할 시점이다.

노동위원회의 핵심은 두말할 것 없이 독립성·공정성·전문성이다. 개정 노동위원회법은 그전에도 부실했던 이 세 가지를 바닥으로 내몰았다. 2010~2011년에는 심지어 고작 3%대의 부당노동행위 인정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각종 현안들에 대해 노동위원회가 노동부 방침의 최선두 돌격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적인 언사로 이명박 정부하에서의 불공정성과 편파성이라 비판해 왔지만, 실제 그 기틀을 마련한 것은 노무현 정부의 2007년 노동위원회법 개악이었음을 분명히 해 둔다.

‘준사법기구로서 노사정 3자 협의제 행정위원회’라는 위상 정의 속에 노동위원회의 현재 문제점과 개선과제, 나아갈 바를 모두 찾을 수 있다. 법리와 현장성을 아우르는 전문성은 노·사·공 3원주의 구성 원리의 실질적 구현과 공익위원 위촉절차 개정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노동부로부터의 독립성 확보와 직권주의 원리에 따른 적극적인 조사권 집행은 필수다. 설령 법원에서 뒤집히더라도 결국은 판례마저 바꿔 내는, 노동법 입법취지에 맞는 노동위원회 고유의 올바른 판정원리 정립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이 노동위원회의 독자적인 존재이유다.

대안을 찾기 위한 노력들이 적지 않았다. 근래 대선 주자들 사이에서 노동법원 설립 공약도 나오고 있다. 민주노총도 올해 사업계획으로 노동법원 설립 추진을 결의했다. 노동법원 설립은 당위다. 노동형사사건까지도 관장하는 노동법원이 반드시 설립돼야 한다. 그러나 노동법원을 꼭 노동위원회의 대안으로만 이해할 일은 아니다. 또한 노동법원 제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참심제, 소송대리권 확대, 소송절차 특례제도 등의 난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에 대한 방안이 함께 얘기돼야 한다. 특히 미국 전국노동관계위원회(NLRB), 일본 노동위원회 등 유사한 외국제도들과 비교해 봐도 독보적인 우리 노동위원회의 신속성과 경제성이라는 최고 장점은 반드시 살려야 한다. 다소 간과되고 있는, 노동위원회 외에는 다른 구제절차가 사실상 없는 소규모사업장 미조직 노동자들의 권리구제에 실효성 있는 장치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고용관계와 노동분쟁 양상이 다변화하고 있는 현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권리분쟁과 이익분쟁의 성격을 동시에 띠는 사건들도 증가하고 있다. 변론주의와 증거주의에 입각해 권리의무관계의 존부를 중심으로 판단해 온 법원 소송절차가 과연 담을 그릇이 되겠는가도 생각해 봐야 한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답 없이 섣부른 당위만 주장할 일이 아니다.

노동위원회와 법원을 아우르는 새로운 노동분쟁해결시스템의 전면적 재설계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노동위원회에 내일이 있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누구보다 ‘노동위원회 사람들’ 스스로가 실천을 통해 보여 줘야 한다. 독자적인 존립 이유를 독립성·공정성·전문성을 통해 증명해 내고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 한편, 결국은 단결된 노동자의 조직된 힘만이 노동권의 정립과 확대를 가져올 수 있음은 진리다. 조직된 힘은 무엇보다 당연히 그 규모의 확대를 전제로 하겠으나 관건은 꼭 양적인 수치의 총량에만 있지는 않다. 마침 민주노총은 지난 1월 민주노총의 상설 특위로서 ‘노동위원회사업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노동위원회의 내일을 묻는 새로운 노동분쟁해결시스템의 올바른 대안마련에 민주노총의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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