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현아 민변 노동위원회 간사

우리나라에서 성평등 문제는 많이 해결되고 있는가. 이전보다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적정한 수준까지 올랐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여성으로서, 노동자로서, 그리고 여성노동활동가로서 살아가는 내게 현실은 그런 정도로밖에 인식되지 않는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남성과 여성의 임금격차가 가장 큰 나라다. OECD 통계 조사가 시작된 이후 16년 동안 변함없이 불명예스러운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이 받는 임금의 64%밖에 받지 못하고 있는데, 이를 하루 8시간 노동으로 환산하면 여성들은 오후 3시부터 무급으로 일하는 셈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것은 임금뿐만이 아니다. 직장내 성희롱과 성차별 등 여성들이 일터에서 겪는 부당함은 무수히 많다. 올해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 행사에서도 열악한 노동환경에 내몰린 여성들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과거에 비해 여성인권이 한걸음 진전됐다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여성 상위시대'를 운운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터에서 일상적으로 부당함을 겪는 여성들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느낀다.

얼마 전 여성 실업률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기사를 봤다. 기업들이 출산전후휴가·육아휴직 비용을 줄이기 위해 여성 고용을 꺼리고 있는 게 실업률이 오르는 원인 중 하나였다. 면접 자리에서 결혼과 출산계획 관련 질문을 받는 것도 언제나 여성이다. 이렇게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채용 과정에서부터 성차별을 겪는다.

좁은 취업문을 통과해도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직장내 성희롱은 일하는 여성들이 겪는 가장 큰 고충이다. 특히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은 성희롱 사각지대에 놓여 있음에도 불안정한 지위 때문에 대부분 참고 견딜 수밖에 없다. 노동 현장에서 20~30대 여성은 남성이라면 겪지 않을 외모·옷차림·태도에 대한 통제를 경험하기도 하고, 임신·출산·육아로 인해 부당한 대우를 당하기도 한다.

최근 부천의 한 복지관 간부는 임신 사실을 알린 여성 노동자에게 "가정일로 피해를 준다, 이래서 가임기 여성은 잘라야 한다"는 폭언을 했다. 정부는 출산을 장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여성노동자의 임신과 출산은 여전히 회사에 피해를 주는 일로 취급된다. 임신과 출산은 가족 구성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지만, 여성에게 전가되는 경우가 많고 이는 결국 여성들의 경력단절 원인이 된다.

경력단절 여성은 구조적으로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일터에서, 가정에서 반쪽짜리 노동자로 저평가를 당한다. 도시가스 검침원 노동자들은 "우리도 똑같은 노동자인데 '주부사원'이라는 딱지를 붙여 최저임금을 주고 똑같은 노동을 하는데도 부업 수준으로 인식하는 시선이 짙다"고 말한다.

'박근혜 없는 봄'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촛불을 들었다. 광장에는 다양한 의제들이 공존했고, 그 가운데 '성평등 민주주의'를 추구하자는 외침도 있었다. 여성에 대한 평등 없이는 민주주의도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광장의 시민들이 함께 공감한 것이다. 다가오는 5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대선주자들이 한목소리로 '성평등'을 외치고 있다. 대선 지지율 1위 주자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고, 다른 주자들도 앞다퉈 각자 추구하는 성평등 공약을 발표했다.

사실 박근혜도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임기 동안 여성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성평등 수준은 추락했다. 지금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대선 공약들이 성평등 이슈에 편승해 경쟁하듯 내놓는 말뿐인 공약이 아니길 바란다. 검증을 거친 제대로 된 공약이 실천돼 성평등 문화가 상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변화가 필요하다. 성평등 민주주의, 더 이상 '나중'으로 미뤄 둘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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