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인구는 850만명이다. 남한 인구는 5천만명이다. 오스트리아 면적은 8만4천제곱킬로미터, 남한 면적은 10만제곱킬로미터다. 오스트리아의 노조 조직률은 28%, 남한은 10%다. 산업별 교섭이 지배적인 오스트리아의 단체협약 적용률은 95%다. 사실상 모든 노동자를 포괄한다. 기업별 단체교섭이 지배적인 한국의 협약 적용률은 일부 비노조원에 대한 확대 적용을 감안하더라도 노조 조직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스트리아에서 사업장 안의 종업원 대표는 종업원평의회를 통해 이뤄진다. 노동자를 대표하는 역할을 노조가 맡고 종업원을 대표하는 역할을 종업원평의회가 맡는 이원 체계라는 점에서 독일과 비슷하다. 공공부문은 물론 민간부문을 포괄하는 노동이사제가 존재한다. 오스트리아는 내수경제가 지배적이고, 한국은 무역을 통한 대외경제가 지배적이다.

2014년 기준으로 오스트리아의 노조원은 120만명이다. 5분의 1은 퇴직자다. 노총은 OeGB 단 하나만 존재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출범한 OeGB는 7개 산별노조를 가맹조직으로 두고 있다. 민간사무직노조(28만명), 중앙정부노조(24만명), 제조업노조(23만명), 지방정부노조(15만명), 교통운수문화체육노조(14만명) 등이 대형 노조다. 이 밖에 건설목공노조와 우편통신노조가 있다. 오스트리아 산별노조의 역사는 조직 통합의 연속이었다. 2009년 화학노조와 금속노조가 통합해 제조업노조가 됐다. 2006년 철도노조와 호텔요식업노조, 교통노조가 통합해 교통문화체육노조가 됐다. 민간사무직노조는 사무직노조·인쇄노조·언론노조·제지노조가 통합한 조직이다. OeGB 가맹조직은 2004년 13개에서 지금은 7개로 줄었다.

오스트리아는 풍부한 사회민주주의 역사를 갖고 있다. 1공화국(1918~1934) 시기에 노동조합 요구를 반영한 사회적 입법을 통해 사회복지 토대를 닦았다. 이를 위한 기업 수준의 토대로 노동자 이익을 반영하는 경영참가를 위해 1918년 사업장 단위에 종업원평의회 설치를 입법화했다. 노동개혁 입법도 이어져 1919년 단체협약법, 1920년 노동회의소법을 만들었다.

종업원평의회와 노동회의소는 조합주의(corporatism)의 출현과 궤를 같이한다. 당시 노동조합은 공산파·사회민주파·기독교파·독일민족파로 나뉘어 갈등했다. 여기에 사용자가 만든 어용노조까지 등장해 노동운동 분열상이 극심했다. 다른 한편으로 당시는 ‘오스트로 마르크스주의’라 불릴 정도로 오스트리아사회민주노동자당에 속한 사회주의 이론가들의 활약이 대단했다. 빅터 아들러·오토 바우어·칼 레너·막스 아들러 같은 이가 대표적이다.

1930년대 들어 기독당 정권이 의회 활동을 방해하고, 34년 군부가 노동자들의 시위를 진압했다. 내전이 발생했고 파시즘 정권이 등장해 자유노조와 파업을 불법화했다. 정부가 만든 단일노조가 강제됐다. 38년 히틀러의 독일군이 진입했고, 노동자들은 독일 파시즘 체제가 강요한 '게르만 노동전선'에 가입해야 했다. 많은 노조간부들이 강제수용소에서 죽어 나갔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오스트리아 노동운동가들은 파시즘 이후 노동조합 체계를 토론했다. 결론은 1공화국 시기에 정치적으로 분열된 노동운동(노조 다원주의 union pluraism)이 아닌 다양한 정치적 이념의 차이를 뛰어넘어 하나로 단결된 노총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45년 4월 전쟁과 파괴의 참화 속에서 사회민주파·기독사회파·공산파가 한데 모여 OeGB(오스트리아노조연맹)를 출범시켜 오늘에 이르렀다.

오스트리아의 사회적 파트너십을 지탱하는 기관은 노동회의소·상공회의소·노총(OeGB)·농업회의소다. 이들 4개 기관이 사회적 대화를 통한 합의로 정부가 추진할 정책을 자문한다. 노동회의소는 19세기 국가가 설립한 상공회의소에 대응하는 기관으로 1920년 설립됐다. 가입이 자율적인 노동조합과 달리 민간부문 노동자는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반대로 자영업자와 기업가들은 상공회의소에 의무적으로 가입한다. 9개 광역지자체에 설치된 노동회의소들이 모여 오스트리아노동회의소를 구성하며, 회장 조직은 수도인 비엔나노동회의소가 맡고 있다.

노동회의소는 실업자와 휴직자를 포함해 노동자와 소비자 320만명을 대표한다. 공무원과 농업노동자는 노동회의소 가입이 제외되나, 퇴직노동자의 이익은 노동회의소를 통해 대변된다. 노동자와 소비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싱크탱크로 기능하며, 입법활동에 관여한다. 노동법·사회보험·세법·여성가족 정책·노동자 보호·청년노동자 보호·실업보험·소비자 보호와 관련해 전문적인 정보와 자문을 제공한다. 노동회의소는 노동법원에서 노동자를 무료로 변론하며 교육과 문화활동, 직업훈련 사업도 한다. 노동회의소 소장과 임원은 5년마다 회원 투표로 선출한다. 노동회의소에 채용된 직원은 전국적으로 2천400명에 달하고, 그중 4분의 1이 비엔나노동회의소에서 일한다. 재정은 320만 회원 임금의 0.5%에 해당하는 금액인 노동회의소세(Chamber of Labour Levy)로 충당한다. 정부에서 노동회의소를 지원하는 부서는 노동사회소비자보호부다.

노동조합이 단체교섭과 단체행동에 집중한다면, 노동회의소는 노동자 이익과 관련한 연구·훈련·정책 사업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소비자 문제도 노동회의소가 다룬다. 노동자와 소비자를 한데 묶는 접근법은 비엔나노동회의소가 1955년 쇼핑자문협회에 자금을 대는 것을 시작으로 위에서 언급한 사회적 파트너십 참여조직들과 공동으로 61년 오스트리아소비자협회(VKI)를 설립하는 데로 이어진다.

현재는 과거의 연장이다. 제도는 역사적 결과며, 사회계급의 투쟁과 타협의 산물이다. 역사성을 쏙 뺀 채 제도만 수입할 수는 없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옛말이 나온 이유다. 네덜란드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노사발전재단이 지금 무엇을 하는지를 보면, 오스트리아에서 힌트를 얻은 노동회의소가 어떻게 굴러갈지 감이 온다.

선거 시기다. 인기에 영합해 설익은 것을 마구 내놓아 판을 어지럽히기보다 초점을 잘 잡고 우선순위를 잘 정리할 때다. 내용 없는 형식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고용’이라는 미명하에 실업보험으로서의 기능을 잃어 가는 고용보험에서 노동회의소 운영비용을 대겠단다. 노동부 관료들의 퇴직 후 일자리, 혹은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실업기금을 쓰겠다는 것도 기본을 무너뜨리는 발상이다. 미조직 노동자와 비정규직을 위해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은 풀지 않고 노동회의소로 대체하겠다는 건 앞뒤가 바뀐 접근이다. 새 정부 ‘노동 존중’의 출발점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87호와 98호 비준이다. 이것 없인 다 사기극이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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