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복지공단이 생식독성물질 노출에 의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여성노동자의 ‘불임’을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불임을 산재로, 생식독성물질을 업무상질병 유발인자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일 노동계에 따르면 공단은 최근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한 김아무개(39)씨가 제기한 불임에 대한 업무상질병 요양급여 신청에 최종 승인을 통보했다.

김씨는 1997년 2월부터 2012년 4월까지 삼성반도체에서 일했다. 주로 반도체를 최종 테스트하는 EDS공정에 투입됐다. 그는 결혼 2년째인 2008년부터 불임 증상을 겪었다. 6번의 인공수정과 2번의 시험관아기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다. 2012년에 퇴사해 이듬해 산재를 신청했다.

공단은 “김씨는 15년간 반도체 EDS공정 오퍼레이터로 교대근무를 수행하면서 웨이퍼 박스 개봉, 반도체 검사 등의 반도체 웨이퍼 제조공정에서 소량이지만 에틸렌글리콜 등의 유기화합물에 노출됐다”며 “장기간 교대근무로 인한 과로와 스트레스로 면역력 저하 등 신체기능이 약화돼 불임을 유발한 것으로 업무와의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에틸렌글리콜은 기형아 출산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생식독성물질이다. 생식독성물질은 생식기능·유산·불임·태아의 선천성 질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물질인 탓에 엄격한 관리를 요한다.

문제가 된 에틸렌글리콜의 경우 미국에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자취를 감췄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별다른 규제 없이 사용되고 있다. 이종란 공인노무사(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는 “반도체산업뿐 아니라 제조업·병원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의 유산율과 불임률 등이 다른 산업보다 높은데도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산재 신청을 꺼려 왔다”며 “공단이 처음으로 생식독성물질과 교대근무에 따른 불임을 산재로 인정한 만큼 산재 신청과 승인이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노무사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에틸렌글리콜을 비롯한 생식독성물질 관리를 강화하고 삼성은 해당 공정 화학물질을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편 공단은 최근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했던 오아무개(58)씨가 제기한 뇌종양 요양급여 신청도 산재로 승인했다. 법원이 아닌 공단이 삼성반도체 노동자의 뇌종양을 산재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