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국장

“그러나, 지금은 아직 전야다. 생기와 현실의 애정이 흘러 들어오는 모든 것을 수용하자. 여명이 밝아올 때, 불타는 인내로 무장하고 찬란한 도시로 입성하리라.”

프랑스 시인 아르튀르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 철> 중 마지막 장 ‘고별(Adieu)’에 나오는 시구다.

‘여명이 밝아올 때’로 시작하는 마지막 문장은 그가 시를 쓴 지 100여년이 지난 1971년 12월13일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으로 인용해 더욱 유명해졌다.

노시인은 말한다. “저는 우리 모두의 미래가 랭보의 시구에 표현된 대로라는 것을 선의의 사람들, 노동자들, 시인들에게 말하고자 합니다. 오직 불타는 인내를 통해서만 우리는 온 인류에게 빛과 정의, 존엄성을 부여할 찬란한 도시를 정복할 수 있습니다.”

2017년 오늘, 우리에게 닥쳐올 미래가 지옥에서 보낼 한 철이 될지 아니면 찬란한 도시로의 입성이 될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광장의 사람들은 박근혜씨 파면이 헬조선 탈출의 마침표가 되기를 희망하지만 만약 낡고 오래된 것이 지속된다면 그의 퇴장은 어제와 같은 내일이 반복되기 위한 쉼표에 불과할 뿐이다.

이제 우리들의 관심은 불과 53일(!)밖에 남지 않은 대통령선거로 빨려 들어간다.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가져온 참담한 결과를 뼈저리게 경험했기에 ‘이번만큼은’이라는 다짐 속에 그날을 기다린다.

쉽지만은 않다. 촛불을 함께 들었던 대세 후보 진영에서는 ‘악성노조’ ‘귀족노조’ ‘전문시위꾼’ 같은 구태의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당선 가능권에서 멀어진 진영은 대선과 함께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하는데, 그 내용이 국민 기본권 강화를 비롯한 직접 민주주의 확대보다는 권력 나눠 먹기에 가까워 촛불민심과는 거리가 멀다. 진보정당은 알찬 내용에 비해 여전히 대안으로 서지 못하고 있다. 스스로 적폐이자, 여론조사에도 잡히지 않는 지지율 0퍼센트대 도토리들은 논외다.

한국노총은 이번 선거에서 조합원 총투표 방침을 세웠다.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노동과 관련한 질문을 던지고 그들이 내놓은 답변을 분석 평가해 조합원들에게 제공한 뒤 총투표로 지지후보를 결정하겠다는 내용이다. 이 같은 방침에 대해 정권교체와 적폐청산을 위한 정치방침으로서 너무 소극적이고 느슨한 것이 아니냐는 시선과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겨울 광장이 우리에게 건넨 가르침 중 하나는 때로는 직선의 날카로움보다 곡선의 유연함이 더 강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촛불은 높게 비추기보다는 넓게 퍼져 나가며 서로 소통하고 이해했다.

한국노총 조합원들은 중앙에서 내려온 대선 투표 지침이 아니라 각 후보들의 노동관과 노동공약을 분석한 평가서를 받게 된다. 여기에는 기존 언론매체나 후보 선거홍보물을 통해서 보고 듣게 될 내용보다 더 구체적인 사실들이 담기게 된다. 무엇보다 조합원 총투표가 원만하게 진행된다면 그 기간 동안 직장과 사무실에는 수많은 노동 담론들이 펼쳐질 것이다. 지역과 세대로 갈리는 대신 오직 노동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노동유권자가 존재한다.

그리고 조합원들은 노동자의 입장을 가지고 노동자를 위한 후보를 뽑기 위해 기표소에 들어가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실제 대선보다 먼저 이뤄진다. 결과가 나오면 선정된 후보의 당선을 위해 전 조직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한다. 그 과정에서 지지후보와의 정책협약 체결은 필수요건이며 당선됐을 경우 사후적인 공약이행 점검도 놓치지 않을 계획이다.

이렇듯 짧은 대통령선거 일정 속에 조합원 총투표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의 선거운동이자 노동교육이 될 수 있다. ‘이번만큼은’ 술잔 앞에 앉아 계급을 배반한 투표(자)를 한탄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그런데 투표 결과를 어떻게 자신할 수 있냐고? 하나하나 모인 광장의 촛불이 ‘찬란한 도시’로의 안내자가 돼 줄 것이라는 믿음을 이번엔 현장 조합원 노동자들에게 돌린다.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국장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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