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지난 2월 말일부로 6년을 강의했던 대학에서 계약기간 만료로 고용종료가 됐다. 한마디로, 잘렸다.

‘강의교수’ 채용공고를 할 때부터 대학은 “1년 단위로 근로계약, 최장 3년까지 고용 가능”을 강조했다. 그러다가 문제제기가 일자 “최초 고용 3년 후, 신규채용 절차를 거쳐 통산 6년까지 고용”으로 규정을 바꿨다.

사실 비정규교수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상 사용기간 제한을 받는 직종이 아니기 때문에 2년 이상 사용해도 기간을 정하지 않은 근로자로 간주되지 않는다. 따라서 비정규교수로 십수 년을 계속 사용한다 하더라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할 부담이 없다. 해당 근로계약기간이 만료됐을 때 재계약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언제든지 쉽게 자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대학이 강의교수에게 고용연한을 두는 이유는 장기간 사용했을 때 재계약에 대한 노동자의 기대권이 생길 것을 우려해서다. 즉 누군가가 재계약이 안 됐을 때 법원에 들고 가서 문제 삼을 수 있는 소지를 원천적으로 없애겠다는 것이다.

노동법 연구자로서, 비정규직노조 조합원으로서, 나와 같은 처지에 아니 나보다 훨씬 어려운 처지에 있는 기간제 노동자들의 사연을 수없이 접하게 된다. 근로계약서에 계약기간이 쓰여 있다는 이유만으로 재계약이 안 될까 전전긍긍해야 한다. 기간제법 사용기간 제한을 받는 기간제 노동자들은 사용자들이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기 위해 2년이 도래하기 전에 어김없이 고용을 종료시킨다. 혹여 노동위원회나 법원에 가 봐도 “그건 계약기간 만료일 뿐 해고는 아니다”는 답을 듣기 일쑤다.

우리 사회에는 이런 방식으로 근로기준법 해고제한 규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최소 870만명 있다. 여기에 해고제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4인 이하 사업체 노동자 200만명을 합하면, 어림잡아 노동자 3명 중 2명은 근로기준법에 따른 해고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기간제법과 판례가 노동법의 해고제한 원칙을 공허한 것으로 만들었다는 비판은 십수 년 전에도 제기됐다. 노무현 정부가 비정규직 남용을 규제하겠다며 사용기간 제한 중심의 기간제법을 입법예고했던 2004년부터 민주노총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는 줄곧 투쟁을 벌여 왔다. 민주노총이 총파업 등 총력투쟁을 전개했던 당시 노무현 정부는 사용기간 제한 때문에 비정규 노동자들이 주기적인 계약해지를 당할 것이라는 노동계의 우려는 과장된 것이며 ‘비정규직 보호법’에 반대하는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귀족노조의 기득권 지키기에 불과하다고 응수했다.

2006년 겨울 국회 밖에서는 민주노총이 투쟁하고 국회 안에서는 당시 민주노동당 단병호 국회의원이 경비들에게 제압당한 채 여야 합의로 기간제법 제정안과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개악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 후로 10년, 기간제 노동자들은 1~2년마다 일회용품처럼 쓰다 버려지고,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 임금격차는 더 벌어졌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의 여당은 여러 번 당명을 바꿔 가며 정부 노동정책을 비판했지만 ‘민주’정부 10년 동안의 노동정책에 대해서는 한 번도 제대로 반성하거나 사과한 적이 없다.

노무현 정부 시절 노동계가 요구했던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은 시장에 대한 지나친 규제라며 일축했던 이들이 지금은 왜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을 찬성하는 것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민주’정부 시절의 노동유연화 정책의 과오를 인정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은 시장을 규제할 수 있는 시기라고 판단이 바뀐 것인지, 제대로 된 반성과 평가가 없다면 이들이 부르짖는 정권교체가 ‘김대중·노무현 시즌2’가 아니라고 믿을 수 없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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