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지난 10일 오전 11시21분.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2016헌나1 대통령(박근혜) 탄핵' 사건을 선고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바로 그 시각, 대통령이 탄핵됐다. 대다수 시민과 노동자들이 원하던 탄핵이었다. 그 무게가 경험하지 못한 것이라 기쁨과 황망함까지,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그리고 1주일, 세상은 평온하다. 정신을 차리고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읽어 봤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 나름 평가해 본다.

90여쪽에 이르는 긴 글임에도 쉽게 읽혔다. 대개 법률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들이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읽어 내기란 쉽지 않다. 아마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임을 감안해 최대한 평이한 문장으로 구성하려 노력했으리라. 게다가 우리는 지난 3개월 동안 시시각각 사건을 접해 오지 않았나. 익히 알고 있기에 한숨에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박 전 대통령을 탄핵한 법률위반의 핵심은 헌법·국가공무원법·공직자윤리법이다.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에 “최서원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것으로 공정한 직무수행이라고 할 수 없으며 헌법·국가공무원법·공직자윤리법 등을 위반한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이른바 미르·케이스포츠재단 설립으로 사익을 취하려는 최서원(최순실 일당)의 행위에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국가기밀에 관한 많은 문서를 최씨 일당에게 유출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박 전대통령의 위헌·위법 행위는 헌법수호 관점에서 용납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이고, 헌법위법 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사실인정과 헌법적 평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이다. 8대 0.

다만 못내 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사실 오전 11시 선고 초반만 하더라도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공무원 임면권을 남용해 직업공무원제도를 침해했다는 주장, 언론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주장, 시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보호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주장 등이 모두 배척됐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파면이라는 주문이 나오고서야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바라건대, 만약 시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보호의무 위반이나 언론의 자유 침해가 받아들여졌다면 우리에게 좀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언론보도가 구체적 사실 인정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확인된 내용만으로도 박 전 대통령의 위 두 가지 쟁점에 관한 위반은 충분히 확인되지 않았나. 열심히 했겠지만 소추인인 국회측이 이 부분의 입증을 위해 더 힘썼으면 어땠을까.

항소심이 있다면 항소하고 싶을 정도다. 시민의 생명과 언론의 자유는 헌법 중의 헌법이다. 생물학적인 목숨과 사회적 목숨이 아니던가. 이 둘이 없고서는 (자유평등)민주주의 국가라는 체제가 있을 수 없다.

결과는 사뭇 머리를 갸우뚱하게 했다. 피청구인의 행위로 인해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자는 바로 대기업이었다. 헌법재판소는 “재단법인 미르와 케이스포츠의 설립, 최서원의 이권 개입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준 피청구인의 행위는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하였을 분만 아니라 기업 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기업의 재산권과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했다니.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두 재단에 대기업이 출연한 돈은 뇌물이다. 박 전 대통령이 최씨 일당과 공동으로 뇌물을 수수했다는 게 특검 수사 결과 아닌가. 그렇다면 이들은 당연히 공범이어야지, 대기업이 피해자로 둔갑하다니. 크게 실망스런 대목이다. 뇌물죄로 인정하고 마땅히 그 피해자를 노동자와 시민으로 판단했어야 한다. 저성과자를 빙자한 쉬운해고 도입의 대가가 486억원(미르), 288억원(케이스포츠) 아니었던가.

지난 4년, 뇌물의 대가로 노동자들의 노동 3권은 철저히 유린당했다. 기업의 재산권과 경영의 자유를 어찌 노동 3권과 비교할 수 있겠나. 어찌 시민의 생명권과 언론의 자유와 비교할 수 있겠나. “시민의 생명권과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고 무엇보다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말살했다”는 결정이 내려졌더라면.

필자의 모자란 분석에도 불구하고 이번 결정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바꾼 결정으로 두고두고 높이 평가될 것이다. 다만 명예혁명이라 불리는 오늘의 결과를 만들어 낸 주인공들, 여전히 광장을 가득 메운 노동자와 시민의 피와 땀이 제대로 인정받길 바라는 마음에서 짧은 감상을 풀어 본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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