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많은 논객이 이번 시위운동을 ‘시민혁명’ ‘촛불혁명’ ‘국민혁명’ ‘명예혁명’ 등 혁명으로 명명했다. 그리고 지난 10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을 인용함으로써 이 혁명은 첫 막을 내렸다.

우리는 과연 혁명을 한 것일까. 우리는 혁명운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필자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 하나를 옮겨 보겠다.

“박근혜는 파면됐다. 평화적인 촛불시위의 의의가 없진 않지만 결과적으로 자유주의 세력에게 몰빵한 거다. 촛불혁명은 아니다. 혁명적 이론 없이 혁명적 실천과 전국조직은 유명무실했다. 사회주의적 조직활동으로부터 훈련(단련) 되지 않으면 지금의 상황은 고스란히 답습된다. (…) 작금 대중성의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세력에게 ‘몰빵’ 하면 혁명이 아닌가. 그렇다면 반파쇼 민주주의혁명이나 반제국주의 민족해방혁명은 혁명이 아니고 오직 사회주의혁명만이 혁명이란 말이 된다. 또 사회주의혁명을 추진하는 이론과 조직 없이 대중의 자발성만으로는 혁명이 전혀 실현 불가능한가. 위의 글은 대중의 자발성에 의한 반독재(군사독재든 자본독재든) 민주주의혁명을 혁명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촛불혁명이 대중의 자발성에 주로 의지했으며, 사회주의혁명은 말할 것 없고 급진 민주주의혁명도 되지 못하고 아직은 겨우 정권 타도에 머무르고 있어 매우 미흡하지만, 그런 점을 이유로 혁명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는 대중의 자발성으로 이승만 독재정권을 타도한 4·19 의거를 민중이 혁명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혁명은 무엇인가. 사전을 보니 이렇게 돼 있다. “본뜻. 본래는 이전의 왕통을 뒤집고 다른 왕통이 그 자리를 차지하여 통치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었다. 바뀐 뜻. 피지배계급이 국가의 권력을 빼앗아 사회체제를 변혁하는 일을 말한다. 그러나 단순히 권력만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종래의 관습·제도·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혁시키는 일을 말한다.”

이런 말뜻에 비춰 본다면 이번 촛불혁명은 매우 미완성된 혁명이다. 기존의 국가 권력을 무너뜨렸지만 아직 피지배 민중이 권력을 빼앗아 자기 것으로 삼지 못했으며, 더구나 사회체제 변혁은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우리 혁명운동은 바로 그러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혁명의 진전 수준이 거기에 머물러 있고, 대중의 자연발생성에 주로 의지하고 있음도 사실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번 시위운동은 박근혜 정권을 타도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고, 오히려 그의 탄핵과 퇴진이 세상을 바꾸는 역사적 과정의 시작이라고 말하고 있다. 계속해서 광장에서 만나서 박정희 군사쿠데타 이래 60여년간 누적된 악폐·적폐를 청산하자고 외치고 있다.

이런 목소리를 보면 1960년 당시 이승만의 하야가 곧 사회체제를 바꾸는 데로 이어지지 못했지만 그 직후부터 악폐를 청산하고 사회체제를 변혁하려는 운동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듯이, 이번에도 노동자·민중의 변혁적 투쟁이 활발하게 분출할 것이다. 물론 이번에도 지배계급은 60년 당시처럼 구정권 퇴진 이후 새로운 정권을 창출하는 선거나 지배계급 내의 새로운 권력분점 질서를 만드는 개헌에 주력하면서 혁명을 유산시키려 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 노동운동의 임무는 보수세력의 한결같은 주장처럼 ‘분노의 광장’과 거리에서 이탈해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 자유주의세력의 주장처럼 정권교체에 사활을 거는 것도 아니다. 박근혜 정권이 민중에 의해 탄핵된 마당에 수구세력 집권은 거의 불가능하게 됐기 때문이다. 물론 개헌을 지렛대로 해서 중도세력과 보수세력이 연합하고, 이들이 정권을 차지한 뒤 헌법을 개정하는 것을 용인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실현될 가능성 역시 그리 높지 않을뿐더러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세상을 바꾸는 것, 헬조선을 해체하고 변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유주의세력이 집권하더라도 이 역사적 과제를 책임질 가능성이 별로 없고, 그 과제는 노동계급과 민중에 의해서만 확실하게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선 판이 벌어지고 블랙홀처럼 대중의 관심을 빨아들이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럴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정권교체에 목매달지 않고 악폐와 적폐 청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게 형성될 가능성도 높다. 노동운동은 바로 그것을 자신의 임무로 받아안고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방법은 지배세력이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실행하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하면 일상으로 돌아가지 말고 계속 투쟁해야 하고, 선거에 몰입하라고 하면 대중투쟁에 몰입해야 하고, 문제를 제도정치권에 맡기라고 하면 그들에게 맡기지 말고 광장정치·거리정치에 힘을 실어야 한다. 그동안의 경험을 성찰해 봤을 때 적폐 청산과 사회변혁 같은 거대 과제가 일부 진보언론이나 논객들이 주장하듯이 거리나 광장이 아닌 국가기구, 즉 제도정치권을 통해 실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와 더불어 당면변혁의 성격과 목표를 분명하게 해야 한다. 당면 변혁은 사회주의 변혁도 아니고 민족해방 변혁도 아니다. 당면변혁은 독점재벌과 파쇼적 국가기구를 두 축으로 하는 천민자본주의 앙시앙 레짐(구체제, 헬조선)을 해체하는 반(反)자본독재 급진민주주 변혁이다. 이 변혁은 광범한 노동계급 대중이 정치투쟁에 능동적·적극적으로 떨쳐나설 때 실현할 수 있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