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상신 워크인연구소 연구실장

박근혜 시대가 드디어 막을 내렸다. 무려 6개월 동안이나 노동의 집중력을 떨어뜨린 사건이 마무됐으니 속이 후련하기 그지없다. 국민을 배반한 정치권력을 우리 헌법체계의 테두리 안에서 가장 합법적인 방법으로 종식시켰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이번 탄핵사태를 겪으면서 많은 시민은 헌법정신을 재발견했으리라 본다. 탄핵심판 결정문을 보면 헌법이 무엇이고 왜 소중한지를 깨닫게 하기에 충분하다. "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근거이고, 국민은 그러한 헌법을 만들어 내는 힘의 원천"이라는 결정문 대목에서 나는 충격적일 만큼 나의 무지함을 느꼈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이 구절을 읽을 때 "모든 국민이 아시다시피"라고 수식어를 붙였지만, 나는 그 의미를 몰랐다고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돌이켜 보면 우리 세대는 헌법보다 국민교육헌장이 익숙했다. 교과서 표지를 넘기면 첫 장에 있던 국민교육헌장을 먼저 봐야 했다. 노동을 연구한답시고 기껏 아는 헌법 조항은 33조1항에 불과했다. 해당 조항은 노동자가 노동 3권이라고 부르는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그리고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는 것이다. 33조는 머릿속 깊이 있지만, 정작 노동자에게 중요한 권리는 32조에 있었다. 32조는 노동(헌법은 '근로'라고 표기한다)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면서, 동시에 노동자 기본권에 대한 국가 의무도 규정하고 있다.

국가의 의무는 노동자 고용증진과 적정임금을 보장하도록 노력하고, 최저임금제를 시행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적정임금으로 해석할 수 없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국가가 노동자의 적정임금을 보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노동자 임금결정의 주체와 관련해 기업주뿐만 아니라 국가에도 의무를 부과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저임금 노동자에게 적정임금을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다.

헌법이 국가를 상대로 적정임금뿐만 아니라 적정분배 의무도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적정분배는 헌법 119조에 있다. 119조는 경제민주화를 규정한 조항으로 알려져 있는데, 노동자 입장에서는 경제민주화보다 더 의미 있는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119조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라는 표현으로 시작한다. 이 문장에 이어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문장의 순서로 중요도를 판단할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헌법이 적정한 소득의 재분배를 유지해야 할 의무가 국가에 있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헌법이 근로조건의 기준을 인간의 존엄성 수준에서 제시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헌법 32조3항은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다시 10조의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 내용과 연결된다.

따라서 국가는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수준으로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밖에도 헌법은 여성과 아동의 노동을 특별히 보호하도록 국가 의무규정으로 정해 두고 있다. 헌법은 32조4항에서 여성이 특별한 보호를 받을 수 있고 부당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32조5항에서는 연소자 노동을 보호한다.

주목되는 것은 32조6항이다. 국가유공자·상이군경·전몰군경 유가족은 우선 고용의 기회를 갖는다는 조항이다.

해당 조항을 보면 고용노동부가 노조 단체협약 내용 중 일부 조항을 고용세습이라고 주장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일부를 제외한 다수의 단협은 산재노동자 유가족을 우선 채용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산재자 유가족을 우선 고용하는 것은 고용세습이 아니라 헌법정신의 맥락에서 봐야 한다.

헌법은 국가와 국민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담아내고 있다. 헌법은 적정임금과 적정분배, 그리고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국가기관의 존립근거이고 노동자는 그런 헌법을 만들어 내는 힘의 원천이다.



워크인연구소 연구실장 (imksgo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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