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3월8일은 세계 여성절이다. 매년 그렇지만 이맘때면 여성 인권을 주제로 한 보도가 꽤 나온다. 평소 무관심을 만회하려는 작은 노력으로 평가한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에서도 지난날을 반성하며, 5명의 여성에게 장미꽃 한 송이씩 선물했다. 어찌나 기뻐하던지.

그런데 유독 올해는 여성절이 없다. 언론 지상에서도 종적을 감췄다. 한겨레·경향 정도가 여성절의 유래나 여성인권 현황을 소개한 정도다. 필자가 확인해 보니 보수를 자처하는 일간지에는 아예 의미 있는 기사가 없었다.

이해는 간다. 언론의 속성상 굳이 여성절을 다루지 않더라도 요즘 나오는 뉴스로도 할애된 지면은 차고 넘치지 않는가. 탄핵 결정을 앞둔 긴박한 때이기도 하고 정체 모를 미국산 신무기에다 중국의 경제보복에 이르기까지.

여성절은 설 곳이 없다. 여성 대통령이 등장한 지 4년, 드디어 여성절이 사라질 운명에 처한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닌가.

사라질 운명에 처한 여성절의 현실, 그 원인을 찾아가 보자. 일차적으로는 우리가 여성절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까닭이 크다. 시민과 노동자 개개인이 무심한 탓도 있겠지만 사회와 정부가 의도적으로 내버려 둔 탓이 더 커 보인다.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여성절은 여성의 노동기본권과 정치기본권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1800년대 후반 미국에서 시작된 여성운동은 1900년대 초 유럽에 넘어와서는 사회주의운동의 한 축을 차지하게 된다. 자연스레 여성절은 사회주의자들과 페미니스트들의 행사였다.

더 나아가 여성운동이 러시아혁명을 촉발했다는 분석도 있다(한겨레 3월8일자). 로마노프 왕조를 무너뜨린 1917년, 러시아 2월 혁명이 3·8 여성절의 기원이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역사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가까이 부녀능정반변천(婦女能頂半邊天)의 기치로 현대 중국을 일군 인구의 절반은 바로 여성이었다.

여성절이 만들어진 역사-우리와는 너무 거리가 먼 여성이 존중받아 온 세계사-는 그간 우리 사회를 지탱한 편협한 사상에다 그보다 더 피폐한 정부의 이념 아래에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으리라. 그 결과는 어떤가. 근본을 알 길 없는 화이트데이·빼빼로데이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우리는 세계사적으로도 희귀한 세월을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바뀌길 희망한다. 매년 되뇌는 주장이지만, 여성절을 국경일로 정하고 시민들에게 특히 학생들에게 진실한 의미를 가르쳐야 한다. 우리 사회만큼 여성절이 필요한 곳도 없다.

지난 4년 우리나라에는 여성 대통령이 있었다(이런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존중한다). 그 무엇 하나 제대로 된 정책이 없었지만 여성정책은 수준 이하였다. 아주 일찍 접은 희망이지만, 한때는 여성절에 대통령이 행사를 주관하고 축사도 하는 모습을 그려 보기도 했다. 이제야 생각해 보면 가당치 않은 망상이었다. 거기에다 한일 위안부 합의라니. 정부가 나서 소녀상을 철거한다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번 정부는 일하는 여성노동자에게 더 가혹했다. 가장 중요한 노동조건인 임금격차는 훨씬 벌어졌다. 우리나라 남녀 성별 임금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단연 수위다. 여성의 임금이 남성의 64%에 불과하다. 비정규 노동자 비율은 또 어떤가. 여성노동자들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정규직에서 탈락해 비정규직으로 떨어지는 비율이 확연하다. 20대에 25%에 불과하던 게 40대에는 무려 40%의 여성노동자가 비정규직이라는 보고까지 있다.

연령에 따른 여성 비정규 노동자 급증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이른바 여성의 경력단절이 꼽힌다. "경단녀 되던 날 아이를 붙잡고 울었다"(매일노동뉴스 3월8일자)는 기사까지 나온 마당이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용자 동의 없이도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까지 발의했다. 조속한 입법을 기대해 본다.

우리나라는 단군 이래 가장 부강하게 됐지만 역설적이게도 여성의 지위는 가장 열악한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대책이 절실한 때다. 여성을 위한 적극적 배려 내지 차별철폐(affirmative action)가 요구된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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