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동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헌법상 통치구조 정점에 있는 대통령의 탄핵 여부가 수일 내로 결정되는 역사의 시기. 4개월간 1천500만개의 촛불이 켜지고 국민의 80%가 박근혜 탄핵을 요구하는 대한민국. 누군가는 권력상실의 두려움이, 누군가에게는 권력획득의 기회가 왔다. 하지만 불안정 노동자들과 실업자, 취업준비생, 입시전쟁을 치르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이 땅은 어떤 곳인가. "이게 나라냐?"의 그 나라가 바로 이곳 헬조선. 헬조선에서 만난 먼 나라 꿈꾸는 별들의 도시 '라라랜드'의 세바스찬과 미아.

얼마 전 문화생활을 전폐하고 산다는 통렬한 비판을 받으며 <라라랜드>라는 영화를 보러 갔다. 아니 영화보기에 강제로 동원됐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그래서 듣보잡 <라라랜드>에 관해 사실 궁금증보다는 짜증이 났다. 적당히 보다가 밀린 잠을 보충하리라 마음먹고 앉았는데, 사람 일이라는 게 계획대로 되지만은 않는 법. 심지어 잠들만 하면 음악이 꽝꽝거리는 뮤지컬 영화.

젊은 날의 고뇌와 좌절은 청춘의 공통적인 표상이다. 러브스토리를 곁들이면 웬만한 소설이 되지 않고 영화가 되지 않을 삶이 어디 있을까. 영화는 할리우드가 탄생시킨 백인 연인의 서사적 성공스토리였다. 일과 사랑의 양립 문제와 불확실한 미래에 고뇌하고 좌절하는 청춘의 일적인 성공을 다룬 애잔한 러브스토리였다.

하지만 ‘개천에서 용나지 않는’ 헬조선에서 ‘캘리포니아 드림’을 보고 있자니 개 발에 편자 느낌이랄까. 미래를 잃고 생존 벼랑에 있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사랑학개론은 세상물정 모르는 염장질이 아닐까. 아름다운 멜로디도 고통이 배가되는 소리일지 모른다. 마이클 볼튼의 'Love is a wonderful thing'이 아름답게 들릴까. 박진선의 노래 '사랑이 최고라'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릴까. '돈도 사랑도 명예도 다 싫다'는 너무 처연하고 비극적인 윤심덕의 노래가 청춘들의 심경에 더 닿아 있지 않을까.

<라라랜드>는 재즈피아니스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과 배우지망생 미아(엠마 스톤)가 주연을 맡고 다미엔 차젤레 감독이 연출한 영화다. 지난달 26일 시상식이 있었던 아카데미 14개 부문 후보에 오르고 6개 부문 수상에 빛나는 영화란다. 그보다 앞서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7관왕을 차지했다고 한다. 석 달 전 국내에 개봉돼 장기흥행을 하고 있다는데 몰랐다니. 현 시국에, 헬조선에, 그게 대수냐 싶다. 하루하루 삶을 버겁게 이어 가기 바쁜 밑바닥 인생들에게 할리우드 영화이야기는 등 따뜻하고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 있겠지만 쓴웃음 지으며 굳이 이 글을 쓴다. 하도 답답한 세상이니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고진감래(苦盡甘來)를 되새기자 싶어서다. 위정자로부터 개돼지 취급을 받는 5천만 민중들과 불안정 노동으로 생계를 꾸리는 2천만 노동자들 처지 때문에 자괴감이 가슴에 사무치는 시절에 우연찮게 할리우드 영화 한 편 보고 맞장구친 것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최근 노조파괴 대명사가 된 유성기업의 유시영 회장이 구속되고, 그의 범법행위에 몸부림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광호라는 노동자가 353일 만에 장례를 치렀다. 국정농단에 밤잠을 설치신 박근혜 임기와 순실 섭정기에 벌어진 일이다. 그런 나라다. 이곳은.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 3권이 유린돼 해고와 민형사상 탄압에 상시적으로 노출돼 있는 노동 3권 향유 주체들. 바로 노동자들이다. 이 땅에 임노동이 시작된 이래 항상적으로 그랬다. 정도의 차이만 존재할 뿐. 적폐 중의 적폐는 바로 노동권 유린 문제다. 노조를 파괴한 부당노동행위자를 엄벌에 처하는 헌법상 기본권 보장 정상화 조치를 원한다. 부당징계 해고는 물론이고 회계조작 정리해고는 또 얼마나 비일비재했던가. 노동적폐만 해도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누적돼 있다.

이번 기회에 지난 세월 헬조선의 구석구석에 쌓여 있는 모든 적폐를 들어내고 쓸어버릴 수는 없을까. 피와 땀과 눈물이 없이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대를 숨길 수 없다. 매주 촛불을 들고 광화문광장에서 외치는 이유다. 체제와 시대를 불문하고 단결한 민중의 규모와 역관계만큼 얻어진다는 냉정한 역사적 사실을 체득하고 있으므로.

앙시앙 레짐(구체제) 혁파라는 '라라랜드'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피끓는 청춘들의 꿈과 사랑이 이뤄지고, 노력만큼의 결실을 맺는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는 사회. 최소한의 기대에 불과한 이 정도를 라라랜드로 꿈꾸는 이 시대는 불행한 시대다. 순실시대 헬조선에 장시호·정유라는 있어도 세바스찬과 미아는 없는 슬픈 현실이다.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의 ‘노력영웅’은 아니더라도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평범한 삶을 누리며 칭송받는 새 사회는 불가능한 꿈인가. 그 꿈의 실현을 위해 좌절은 하되 포기는 하지 말자. 이 땅의 아들딸들아. 온갖 성의 세바스찬, 미아야. 라라랜드를 향한 촛불을 켜고 횃불을 들자.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hdlee2001@empas.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