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다혜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얼마 전 가까운 20대 청년 바리스타로부터 상담요청을 받았습니다. 지인은 전국에 매장을 두고 있는 꽤 규모 있는 카페 겸 레스토랑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었는데 한밤 퇴근길에 갑자기 구두로 해고통보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연을 들어 보니 매출이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급여일에 급여 일부만 지급됐고, 자신의 정확한 급여지급 내역을 확인하고 싶었던 지인은 회사에 임금명세서를 요청했다가 “그런 걸 요구하는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라는 얘기와 함께 그날 딸기주스를 주문량보다 두 잔 더 만들어 재료를 낭비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고 했습니다.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어 봐야겠지만 우선 근로기준법상 정당한 해고사유가 될 수 없고 적법한 해고절차도 거치지 않아 부당한 해고로 판단된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런 다음 미지급임금 산정 등을 위해 근로계약서를 보자고 했더니 지인은 계약서를 쓰기는 썼는데 관리자가 본인 앞에서 알아서 쓰더니 두 부다 가져가서 내용을 제대로 모른다고 했습니다.

며칠간 답답한 과정을 거친 후 지인이 겨우 받아 온 계약서는 근로계약서가 아니라 용역계약서였습니다. 지인은 관리자가 불러 주는 대로 작성날짜와 이름·주민번호·서명을 했을 뿐 자신이 4대 보험에 가입되지 않고 사업소득세를 내는 ‘사장님’으로 계약을 했다는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사실 청년이 그간 거쳐 온 직장들은 매니저 지시와 손님 주문에 따라 아메리카노를 내리고 딸기주스를 만드는 바리스타를 본인도 모르는 사이 사장님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 요상한 회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떼이는 돈(근로소득세 및 4대 보험 본인부담금을 구분하지 않고 흔히들 이렇게 통칭한다는군요)이 적으니 더 이득이라며 4대 보험 미가입을 강권하는 사용자부터, 대기업 브랜드 카페에서 일하지만 소속은 인력파견업체인 경우(무려 매우 유명한 카페의 사례!)까지, 지인이 겪은 외식업계 실태는 영세 자영업자부터 번듯한 대기업 할 것 없이 장르만 다를 뿐 똑같았습니다.

그런데 지인 명의로 발급된 사업소득 원천징수영수증을 보니 업종구분이 희한합니다. ‘기타모집수당’. 이 바리스타는 아메리카노와 딸기주스 고객을 모집한 수당으로 임금을 받았다는 의미일까요. 회사 관리자는 “우리도 법률전문가에게 조언을 얻은 것이고, 다들 문제없이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며 자세한 설명은 해 주지 않았습니다. 원천징수영수증 하단의 업종구분 리스트에는 익숙한 직종들이 보입니다. 학원강사·보험설계사·대리운전·캐디·퀵서비스 등. 그냥 노동자가 아니라 ‘특수’한 노동자라는 이름이 붙어 버린 이들, 이름만큼이나 특이하고 답답한 근로현실을 살아 내고 있는 ‘특수고용노동자’들.

우리는 어느 순간 사장 지시에 따라 커피를 내리는 카페 바리스타도 역시 사장이 되는 현실에 살고 있습니다. 법률적 판단은 어떨지 모르지만, 이 청년의 전 직장 등을 중심으로 일부 파악해 보니 한국에는 상당수의 사장님 바리스타와 사장님 홀직원이 고객모집수당을 받는, 사실상 특수고용노동자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20~30대 청년들이 차지하고 있는 이 업종에서 4대 보험은 당연히 미가입 내지는 사장 강권에 따른 선택이고, 일하다 다치면 산재는커녕 병가를 달라고 사장에게 사정해야 하는 일이 흔합니다.

이들을 특수고용노동자나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또는 '특고'라고 호칭하는 것부터가 이들의 근로자성을 깎아 내는 것은 아닌지, 흔히 쓰는 언어부터 망설이게 됩니다. 바리스타나 홀서빙 직원도 그저 ‘평범한’ 노동자가 되고 싶었던 것뿐이니까요. 하지만 사용자가 법률전문가 조언을 받는 동안 이들은 정규교육과정을 모두 거치고도 ‘노동자로 사는 일’에 대해 별로 배운 바 없이 자신을 사장이라 칭하는 계약서에 서명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특수한’ 노동자로 낙인찍히고 배제된, 기존의 특고노동자들의 노동자로서 이름찾기가 더뎌지는 동안, 생각지도 못한 직역까지 노동의 ‘보편성’을 지운 채 ‘특수성’을 덧입히려는 시도가 마구잡이로 시행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끼칩니다.

청년 바리스타와의 상담 결론은 초라합니다. 자신을 적극적으로 기망한 회사와 다시는 어떻게도 엮이고 싶지 않다는 지인의 의사에 따라, 이쯤에서 끝내는 게 이득인 걸 알아챈 회사도 근로자성 시비를 걸지 않고 미지급임금과 해고예고수당을 지급하는 선에서 마무리됐습니다.

이처럼 우리 노동시장에서 취약노동을 중심으로 ‘바닥으로의 경주(race to the bottom)’가 예상치도 못할 수준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서둘러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아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노동교육인지 노동조합인지, 둘 다인지,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머리를 모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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