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현 공인노무사(노동법률사무소 시선)

“내일부터 물류창고로 매일 출장을 나가 현장팀장 지휘 아래 판촉행사 용품 포장작업을 하세요.” 10년차 수석디자이너인 의뢰인에게 내려졌던 인사팀장의 주문이다. 그 디자이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의뢰인은 10년 동안 회사에 수많은 베스트상품을 쏟아 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수석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다.

시련은 회사가 다른 그룹사로 인수되면서 시작됐다. 회사를 인수한 오너의 딸이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이었다. 오너는 자신이 인수한 계열회사의 수석디자이너가 자신의 딸이 되기를 원했다. 이러한 연유로 회사는 의뢰인에게 사직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30대 열정을 모두 쏟아 일한 의뢰인은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회사는 거주지로부터 200킬로미터 떨어진 물류창고로 매일 출장을 보내 포장작업을 하라고 지시했다.

필자가 처리하는 사건 대부분의 진실한 속사정은 이렇다. 해고 자체를 목적으로 한 수단으로서의 배치전환·인사명령·정직 같은 인사권을 통한 부당한 처분, 그리고 이러한 공식적 처분이 있기 전 조직적으로 자행되는 집단따돌림, 업무배제, 과도한 업무 부여, 모욕적 언행, 업무실적 조작을 통한 부당한 인사고과 등 모두가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 금지"라는 노동법 체계를 무력화하기 위해 이미 사용자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기법이 된 지 오래다.

평생을 몸담아 일하고자 했던 노동자들의 피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과도한 업무나 부적절한 근무환경으로 인해 건강상 문제가 오는 경우가 다반사다. 특히 정신적 충격에서 오는 공황장애·우울증·외상후 스트레스장애 등 그야말로 심신이 피폐해진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의사에 반해 직장에서 쫓겨나는 것이다.

사용자들은 자신만만하게 이러한 나름의 기술을 사용하고 이른바 노사문제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은 고액의 대가를 받으며 이러한 사내 괴롭힘을 컨설팅한다. 노동자들은 개인적인 힘으로 사용자의 행위에 대응하기 어렵고 준비 측면에서도 사용자만큼 전문적이지 않다. 무엇보다 사용자는 행위의 부당성을 법원이나 노동위원회에서 지적당해도 해당 행위만 잠시 철회하면 그만이라는 것이 문제다. 즉 해고를 목적으로 한 배치전환이 부당하다고 판단된다면 그 배치전환을 취소하고 복직명령을 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사용자는 다시 '해고'라는 목적을 위해 부적절한 괴롭힘 행위를 감행한다.

한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부당노동행위를 명시하고 있다. 사용자의 특정한 행위나 처분 행위, 그 자체의 목적성이 노동조합 파괴나 활동 방해에 있다고 판단될 경우 형사처분을 하고, 해당 행위가 법적 처분이라면 그 효과를 무효로 한다. 나아가 민사적으로 이러한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별도로 할 수 있도록 길을 열고 있다.

개별적 노동관계법에서도 위와 같은 부당노동행위 제도와 유사한 입법을 검토해야 할 시점이 왔다고 본다. 다시 말해 사용자의 처분행위 내지 업무 권한을 이용한 괴롭힘의 목적이 근로기준법상 해고제한 법리를 무력화하기 위해 자행된 것이라면 개별적 노동관계법의 부당노동행위로 보고 별도 형사처분을 가하며 민사적 제재를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할 수 없다."

정당한 이유가 없다는 걸 인식하면서도 편법을 동원해 노동자를 해고하려는 사용자의 우회로를 더 이상 방치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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