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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파괴 없는 세상-유성기업 노동자 한광호를 보내는 날에
▲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 4일 한 노동자의 영결식이 있었다. 유성기업의 금속노조 조합원이었던 한광호. 목숨을 끊은 지 353일 만에 동지들이 그를 떠나보내는 행사였다.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앞에서 ‘노조파괴 없는 세상’이라고 쓴 커다란 현수막을 앞세우고 그들은 "끝나지 않은 노조파괴 사태에 종지부가 찍힐 때까지 유성기업·현대차를 상대로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19차 촛불집회가 열렸던 날이었다.



2. 1974년 충북 영동에서 태어나 유성기업㈜ 영동공장에 입사해 사측의 노조탄압 와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서 자라 학교를 다니고 그곳에서 취업해 일해 왔던 평범한 노동자였다. 평범한 노동자를 죽음에 내몬 것은 사측의 노골적인 노조탄압이었다. 한광호는 세 번 노조 대의원으로 활동했다. 2011년에 이미 노사가 합의한 대로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시행하지 않고 직장폐쇄, 무자비한 용역투입, 그리고 기업노조 설립과 민주노조 활동에 대한 모진 탄압이 행해졌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조합원들에 대해 임금삭감과 업무차별, 고소·고발, 징계남발 등이 무차별적으로 행해졌고, 이로 인해 조합원 10명 중 6명은 심각한 정신건강 위험에 노출됐던 것으로 조사·발표됐다. 이런 와중에 지난해 3월 야간근무 중이던 한광호는 사측으로부터 징계위원회 개최를 위한 사실조사 출석을 하라고 통보받았던 것이고, 당시 그는 사측로부터 11건의 고소·고발과 두 차례 징계를 받은 상황에서 세 번째 징계절차가 시작된다는 말에 크게 낙담했다. 같은달 17일 영동군의 한 공원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3. 이제는 현대·기아차 등 완성차 사업장에서 도입·시행하고 있는 주간연속 2교대제를 두고서 벌어진 일이었다. 2011년 유성기업에서 노동자 파업투쟁에 대한 직장폐쇄와 용역투입, 그리고 경찰병력 투입에 이르기까지 몰아쳤던 일은 살인적인 주야 맞교대제하의 밤샘 심야노동을 철폐하고자 하는 노동자의 요구로부터 시작됐다. 그 요구가 유성기업이 납품하는 현대차 자본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고, 유성기업 사용자는 그 요구 관철을 위해 투쟁하는 노조를 파괴하는 데 적극 나섰다. 창조컨설팅으로부터 노조파괴 컨설팅을 받아 사용자가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했음을 보여주는 자료까지 폭로됐다.

유성기업은 2011년 10월8일과 11월3일 현대차 제출용으로 작성한 ‘유성노조 가입 확대전략’과 ‘향후 징계절차 진행 및 유성기업노조 조합원 확보’ 보고서에 “경영컨설팅업체와 접촉해 HR(인적자원)제도 개선·시행에 대한 미팅을 진행했고 11월 중 조합원들이 피부로 실감할 구체적인 활동이 시작될 예정인 바, 금속노조 유성지회 소속 조합원들의 심경 변화를 촉진시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적시했다.

실제로 유성기업은 지회 조합원을 징계하고, 지회를 탈퇴해 기업노조에 가입한 조합원은 승진시키는 등 현대차에 보고한 대로 실행했다. 이와 같은 유성기업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는 법원에서 인정돼 이례적으로 징역형이 선고됐다. 하지만 현대차 사용자는 부당노동행위로 처벌되지 않았다.



4. 2011년이니 벌써 몇 년째인가. 사용자의 탄압에 굴복하지 않은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오늘도 광장과 거리에서 농성과 시위를 이어 가고, 일부는 복귀해 공장에서 싸우고 있다. 지금까지도 노동자들은 아산공장과 영동공장은 물론이고 광화문광장과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 앞에서 농성과 오체투지로, 천안 등의 법원과 검찰청 앞에서 1인 시위로 끈질기게 투쟁하고 있다. 지난해 광화문광장 촛불집회가 청와대 앞까지 합법적으로 행진하게 된 것도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오체투지 시위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경찰의 집회·시위 금지에 대해 노동자들은 서울중앙지법에 집행정지신청을 했고, 그 결정을 받아 시위를 했다. 그 뒤 촛불집회는 청운효자동주민센터까지 행진할 수 있었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촛불집회에서 다른 투쟁사업장 노동자들과 함께 서울의 광장과 거리에서 박근혜 탄핵을 외치며 앞장서 투쟁했다. 때로는 촛불집회 3분 발언대 무대에 올라 유성기업 사용자의 노조탄압을 비난하고, 때로는 그저 참석해 촛불시민으로 박근혜 탄핵을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리고 마침내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탄핵심판을 앞두고 있는 오늘,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자신의 동료이자 동지인 한광호를 천안 풍산공원묘역에 안치했다.



5. 노조탄압에 맞서 온 유성기업 노동자들에게 '박근혜 있는 세상'은 자신들이 꿈꾸는 노조파괴 없는 세상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촛불광장에서 '박근혜 없는 세상'을 외쳤던 것이다. 박근혜 탄핵으로 자신들이 꿈꾸는 세상이 어서 올 수 있기를 기대하고 오늘도 이 나라의 광장과 거리에서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다.

한광호는 노조파괴 없는 세상을 볼 수가 없었다. 노조탄압을 하는 사용자 자본에 맞서기가 너무도 힘들었던 노동자 한광호는 지난해 3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마도 자신의 동료들이 촛불광장에서 목이 터져라 외치는 걸 봤다면 그는 노조파괴 절망의 세상에 낙담하며 목숨을 끊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박근혜 없는 세상이 어쩌면 노조파괴 없는 세상을 앞당길 수 있다고 낙관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가. 오늘까지 벌써 1천500만명 이상이 참여했다는 촛불집회가 꿈꾸는 박근혜 없는 세상이 이 나라 노동자들이 꿈꾸는 노조파괴 없는 세상을 앞당길 수 있는가. 분명한 것은 박근혜 없는 세상이 바로 노조파괴 없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민·국민·참여 등 갖가지 이름이 붙은 정권을 지나오면서 우리는 이 나라에서 정권교체로 노조파괴 없는 세상이 오는 것은 아니라고 알게 됐다. 사용자 자본에 자행하는 노조파괴를 부당노동행위로 적극적으로 법집행하는 걸 어떤 정권에서도 보지 못했다. 연봉이 얼마인 정규직노조, 귀족노동자라 비난하면서 노조 파업을 엄단하겠다는 협박은 민주의 당 정권에서도 계속됐다. 다소 자제하기는 했어도 공권력은 노조 파업을 파괴하는 데 사용됐다. 분명히 오늘 광화문광장과 강남대로에서 한광호의 동지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박근혜 퇴진을 외치면서 노조파괴 없는 세상을 꿈꾸고 있건만, 박근혜 없는 세상이 노조파괴 없는 세상은 아닌 것이다.



6. 노조파괴 없는 세상, 어떤 세상일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오늘도 광화문광장에서 울려 퍼지고, 촛불시민이 노래하는 대한민국헌법은 노조파괴 없는 세상을 이미 선언했다. 노동자는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33조에 이미 규정해 놓았다.

노동자 기본권인 노동기본권을 헌법이 규정한 대로 노동자에게 행사하도록 보장하는 것이 대한민국 권력의 할 일이었다. 박근혜는 물론이고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할 일이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국민경제니 국가안정이니 뭐니 노동자 권리보다 한참 위에 뭔가가 있다고 내세우면서 권력은 노동자를 꼼짝하지 못하게 사용자에 복종하도록 사업장에 가뒀다.

노동기본권은 노동자의 것이 아니었다. 노동자의 기본권으로 선언한 지 70년째를 보내고 있건만, 대한민국헌법을 노동기본권을 노동자의 것으로 이 나라의 법과 권력은 집행하고 있지 못하다. 사실 노조파괴 없는 세상, 대단히 먼 세상이 아니고, 그저 대한민국헌법이 규정한 대로 보장한 대로 노동자의 것으로 행사하도록 하면 되는 것인데도, 이 나라에서는 그것이 너무 어렵다.

노조파괴가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는 나라에서 노동기본권은 노동자의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법전과 헌법교과서에 분명히 노동자의 기본권이라고 적혀 있지만 말이다. 그러니 유성기업 노동자 한광호는 사용자의 노조탄압에 낙담해서 죽고 말았다. 그리고 오늘 이 민주공화국의 나라,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나라에서 또 다른 한광호가 사용자의 노조탄압에 낙담한 채 노동기본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노조가입률 10%는 이걸 변명할 여지 없이 말해 주고 있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는 시민들이 촛불광장에서 최고권력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고 민주공화국의 국민으로 행동하지만, 자신의 사업장에서는 노동자 권리를 위해 노동기본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노조파괴 없는 세상, 유성기업 노동자 한광호가 꿈꾸는 세상은, 아직 우리에게 멀기만 하다. 박근혜 없는 세상이 노조파괴 없는 세상이라고 감히 말할 수 없는 오늘, 우리는 온전히 그를 보내 줄 자격이 없다고 자백할 수밖에 없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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