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더미래연구소가 최근 정부 고용정책과 복지정책 기능을 합쳐 고용복지부를 만들겠다는 부처 개편안을 내놓으면서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 조직개편을 둘러싼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대선 주자들이 구체적인 공약으로 성안한 것은 아니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연구소 제안을 토대로 정부 개편안을 고민하겠다고 밝혀 관심을 끈다.

그러나 고용·복지 통합안은 현실 적합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노동계 양대 축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고용과 노동정책을 분리하는 방안에 반대하고 있어 실제 개편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일자리복지는 노동부, 생활복지는 복지부

5일 노동계에 따르면 더미래연구소는 최근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를 합쳐 고용복지부를 신설하고 보건정책은 보건청으로, 노동정책은 중앙노동위원회로 이관하는 방안을 공개했다. 일자리와 복지정책을 통합해 국민 삶을 돌보고 노동정책 기능은 중앙노동위원회로 이관해 독립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부처별 정책기능을 살펴보면 실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일자리 문제가 복지보다는 노동정책과 밀접한 데다, 실업급여와 취업지원 같은 일자리 관련 복지사업은 노동부가 이미 수행 중이다. 복지부는 일자리와의 연관성이 적은 저소득층 지원 같은 생활형 복지사업을 하고 있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고용과 복지라는 단어만 놓고 보면 뭔가 밀접한 연관이 있을 듯 보여 정치권에서 통합 이야기가 나오지만 노동부와 복지부가 하는 업무를 실제 들여다보면 상호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며 “고용과 복지 문제가 중요하다면 부처 통합보다 각자 하고 있는 일을 더 잘하도록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노동부와 복지부 역시 “부처 간 업무 연관성이 적고 사업 전달체계도 노동부는 지방노동청과 고용센터, 복지부는 읍면동 주민센터로 분리돼 있어 통합시 효율성을 높이기 어려운 구조”라며 부정적 의견을 내비쳤다.

노동계는 일자리 문제와 노동정책의 연관성을 강조하면서 부정적 의견을 밝히고 있다. 이창근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일자리정책은 일자리를 새로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이미 있는 일자리를 나누고, 더 좋은 일자리로 전환하는 것까지 포함하는 문제”라며 “노동시간을 단축해 일자리를 나누거나 나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만드는 일은 노사관계·노동정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청년실업 같은 일자리 어려움이 지속되면서 고용이 굉장히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긴 했지만 결국은 경제나 노동정책과 함께 풀 수밖에 없는 문제”라며 “독일·일본에서 고용·복지를 통합한 거대 부처를 만든 사례가 있긴 하지만 기계적으로 갖다 붙인다고 효율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고 비판했다.

고용·산재보험 운용·관리는 누가?

고용복지부가 신설될 경우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 관리기능을 어디에 둬야 할지도 문제다. 고용·산재보험은 규모가 24조원에 달하는 거대 기금이다. 한 해 18조원에 이르는 노동부 예산의 86%가 고용·산재보험을 비롯한 기금에서 나온다. 노동부가 수행하는 대부분의 일자리사업과 지원예산은 주로 고용보험기금을 재원으로 편성된다.

고용복지부가 신설되면 일자리 예산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금 또한 이관해야 한다. 그러나 고용·산재보험 기금은 노사가 낸 돈으로 조성된다. 노사단체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기금운용·관리 차원에서 본다면 노사단체를 주로 접하는 노동 관련 부처가 기금을 맡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전문가들은 복지보다는 오히려 직업훈련·평생학습 기능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한다. 현재 교육부와 노동부가 기능·기술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운용한다. 학교에서 하면 교육부가, 기업이나 직업훈련소에서 하면 노동부가 담당부처가 된다. 전자는 '직업교육'으로 후자는 '직업훈련'으로 분류되는 까닭이다.

최근에는 일·학습 병행제 같은 기업 중심 도제식 교육훈련이 중요시되면서 직업교육과 직업훈련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예컨대 기술을 주로 가르치는 특성화고의 주무부처는 교육부다. 반면 학생들이 일·학습 병행제 같은 도제교육을 받기 위해 기업에서 실습을 하면 주무부처가 노동부로 바뀐다. 학교 예산은 교육부가 지원하고, 실습훈련 관련 교육비·기업 지원비는 노동부가 낸다. 고등학생뿐만 아니라 노동자와 구직자들도 기능·기술을 일반대학이나 전문대에서 익히면 직업교육으로 분류돼 교육부 지원을 받고, 폴리텍대나 기업·직업훈련소에서 기능·기술을 익히면 직업훈련으로 분류돼 노동부 지원을 받는다.

더군다나 여야 대선 주자들이 국가교육위원회 신설 같은 교육부 폐지·축소 공약을 발표하면서 직업교육과 직업훈련 통합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진 상황이다. 한 노동전문가는 “노동부가 고용업무 주무부처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고용복지플러스센터 같은 일자리 관련 복지사업을 주관하게 됐다”며 “4차 산업혁명처럼 기술이 급속하게 변화하는 시대에는 새로운 기능을 익히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평생학습 기능을 통합해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 전문가는 “새 정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임기를 시작해야 하는데, 정권 초기에 미래창조과학부·문화체육관광부·기획재정부처럼 손대야 할 부처가 한두 곳이 아니다”며 “노동부 같은 사회부처 개편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고 전면개편보다는 일부 기능조정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노동부가 노동탄압? 꺼지지 않는 조직개편 불씨

그렇다고 노동부 조직개편 목소리가 사그라든 것은 아니다. 노동계에서는 기업프렌들리를 노골적으로 천명한 이명박 정부와 공정인사(일반해고) 지침·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처럼 노동자에게 불리한 노동정책을 펼친 박근혜 정부까지 보수정권 10년을 거치면서 노동자 보호조치가 약화했다는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이런 인식이 노동부 조직개편 논의의 불씨가 되고 있다.

정문주 정책본부장은 “보수정권 10년 동안 노동부는 노동권을 후퇴시키고 노동탄압에 열을 올렸다”며 “새 정부가 들어서면 책임을 묻고 노동부가 노동자를 위한 부처로 거듭날 수 있도록 조직을 개편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진보적 성향의 야당 대선 후보들은 근로감독관 확충과 수사권 강화로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적극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근로감독관이 노동경찰로서 기능하도록 실질 수사권을 강화하겠다”고 말했고, 이재명 성남시장은 한발 더 나아가 노동경찰 1만명 확충을 공약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노동을 제1의 국정과제로 삼겠다”며 노동부 장관이 부총리를 겸임하는 노동부총리제 시행을 약속했다.

이창근 정책실장은 “경제를 살리면서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안은 노동자들의 소득을 늘려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소득주도 성장모델밖에 없다”며 “노동을 중심으로 경제와 사회 모두를 살리려면 노동이 경제논리에 종속되지 않도록 노동부를 사회부총리 부처로 격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