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일 저녁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없는 3월, 그래야 봄이다! 헌재 탄핵 인용! 박근혜 구속! 황교안 퇴진! 19차 범국민행동’ 집회 모습. 노동과세계 변백선
▲ 노동과세계 변백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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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없는 봄을 맞을 준비가 됐습니까. (이번 집회가) 마지막 촛불집회였으면 좋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지난 4일 오후 헌법재판소 100미터 전방에서 한 청년이 방송차 위에 올라 외쳤다. 그는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해 박근혜를 파면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19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함성으로 화답했다.

이날 오후 8시께 경찰 바리케이드에 막혀 행진을 멈춘 시민들은 “세월호를 인양하라. 박근혜를 구속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칩을 하루 앞둔 이날 날씨는 영상 10도 안팎으로 따뜻했다. 시민들의 옷차림은 한결 얇아졌지만 구호는 절박해졌다.

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2학년7반 허재강군의 어머니 양옥자(50)씨와 박래군(56)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공동대표는 무거운 표정으로 집회에 참가했다.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듯했다.

헌정 사상 유례없는 권력형 비리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결말로 치닫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10일을 전후해 탄핵심판 선고를 할 것으로 전해졌다.

겨울 내내 촛불집회에 함께한 시민들은 봄을 맞을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돼야 진짜 봄이 온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서울 도심에서 탄핵 찬반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촛불집회는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태극기집회는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가 주최했다. 촛불집회에는 주최측 추산 100만여명이 참석했다.

“피의자 박근혜 때문에 국민 반으로 갈려”

촛불집회가 열린 광화문광장은 성난 민심의 용광로를 방불케 했다. 대상은 분명했다. 촛불집회 시민들은 박 대통령을 탄핵한 뒤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자고 요구했다. 반면 탄핵 반대 태극기집회 시민들은 박 대통령을 탄핵한 국회·언론·촛불시민을 심판하자고 주장했다. 이들은 청계광장을 기점으로 갈렸다.

파이낸스센터 앞 계단에 20대 초반 청년 2명이 각자 다른 피켓을 들고 섰다. 대학생인 신바오로(21)씨는 ‘박근혜 구속’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었다. 신씨의 피켓을 보자 태극기를 든 50대 남성들이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야 이 ○○아 내려가. 아무리 젊어도 그렇지”라고 고함을 쳤다. 일부 남성은 신씨를 위협하며 다가왔다.

경찰이 신씨를 에워싸고 “위험하니까 내려가자”고 타일렀다. 신씨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피켓을 든 이유를 묻자 "탄핵반대 태극기집회가 진실을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신씨는 “태극기를 든 시민들이 촛불시민을 빨갱이라고 매도하고 폭력까지 휘두른다”며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말하는 게 잘못이 될 수 없고, (일부 시민의 위협을) 감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대학생 A(21)씨는 "억지 탄핵 원천무효"라는 피켓을 들었다. A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잘못했다고 생각했는데, 민주노총이 집회를 주도하고 이석기 석방 구호가 나오는 것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며 “아직 유죄가 입증되지도 않았는데 야당이 밀어붙여 대통령을 탄핵시켰다”고 주장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김수경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특검 수사도 안 받으며 막무가내 버티는 동안 국민끼리 싸우고 있다”며 “헌법재판소는 하루빨리 탄핵을 인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 흘려서라도 대통령 지킨다?
“역사에 오명 남겨선 안 돼”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선고일이 다가오면서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은 극단적인 구호로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우리의 피를 뿌려서라도 탄핵을 기각시키자”라는 막말성 구호도 나왔다. 전직교사라고 본인을 소개한 박아무개(77)씨는 태극기집회에 빠짐없이 참석했다고 했다.

집회에 오면 마음이 평온해진다는 그는 기자와 이야기하는 동안 전교조·북한·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에 적개심을 나타냈다. 한국전쟁을 경험했다는 박씨는 “전쟁통에 남대문지하도에 쌓여 있는 시체더미를 밟으면서 피난을 갔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밥 한 끼를 제대로 못 먹으면서 견뎠다”며 “박정희 대통령 때문에 먹고살게 됐는데 국민이 은혜를 갚지는 못할망정 박근혜 대통령에게 짐승도 못할 짓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도 자식도 없는 박 대통령이 무슨 돈이 필요해 그런 일을 벌이겠냐. 고영태 일당이 최순실을 이용해 (국정농단을) 한 것”이라고 단언한 뒤 “지금 대한민국은 사상전쟁을 하는 전시상황이고, 총과 칼을 들어서라도 박 대통령을 지키겠다”고 주장했다.

촛불집회는 지금까지 19차례 열렸다. 한국 사회 적폐를 없애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다. 이날 집회에서는 삼성전자 LCD 공장에서 일하다 뇌종양에 걸린 직업병 피해자 한혜경씨와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도시가스검침분회 조합원인 김명신씨가 무대에 올랐다. 직장인 백아무개(27)씨는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로 구성된 4·16합창단의 무대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백씨는 "세월호에서 304명이 희생됐는데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고 정부가 몇 년 동안 진실을 숨기고 있어 안타깝다"며 "탄핵이 기각되면 돌을 들고 쫓아가고 싶은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역사에 오명을 남기지 않기를 바란다"고 요청했다.

“박근혜 파면해 진실과 새로운 사회 인양하자”

세월호 유가족 양옥자씨는 이날 촛불집회가 마지막 집회가 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서둘러 상경했다. 양씨는 탄핵이 인용돼 세월호를 인양하고 진상을 규명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촛불집회에 참석했다고 했다.

그는 박 대통령 대리인단이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자료와 관련해 “유가족을 기만하는 인간쓰레기 같은 짓”이라고 분개했다. 대통령측 자료가 신빙성이 떨어지고 재판을 방해하기 위해 억지로 짜깁기한 자료를 냈다는 판단에서다.

양씨는 “탄핵이 인용되면 참사 당일 대통령의 7시간을 다시 조사해 밝혀내야 한다”며 “야권 대선 주자들이 세월호 얘기를 많이 하니까, 탄핵이 인용되면 조금이라도 참사의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래군 비상국민행동 공동대표는 "세월호 7시간이 탄핵사유에 들어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탄핵사유에 세월호 7시간이 들어가야 이후 개헌을 통해 국민 생명권 내용을 헌법 안에 넣어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며 "탄핵 이후 박근혜·우병우에 관한 수사가 본격화할 수 있도록 검찰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 공동대표는 특히 "국민통합은 탄핵 반대세력까지 끌어안아야 통합되는 게 아니라 정의를 제대로 세우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퇴진행동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선고일이 확정되면 선고 전날과 당일 이틀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연속집회를 한다. 선고 당일 헌법재판소 앞에서는 탄핵반대 집회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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