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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파괴 없는 세상 만들자

그를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노동조합을 함께했던 동료들과 법정에서 사용자측에 맞섰던 변호인단이 그들이다.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그의 이름을 부르는 가족들도 물론이다. 고 한광호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조합원이 4일 그들의 곁을 떠난다. 그의 한을 풀어주려 애썼던 시간이 벌써 1년이다. 장례식은 민주노동자장으로 치러진다.

그런데 그의 장례식은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과 조기 대선 바람이 불면서 그의 이름도 잊힌 것 같다. 마치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가 이슈화한 데 반해 그가 끈을 놓지 않았던 노동조합은 주목하지 않는 것처럼. 그의 죽음도 기억할 만한, 기억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침묵되는 죽음’으로 취급받았다. 물론 평범한 노동자의 죽음마저 기억할 이유가 있느냐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고 한광호씨의 삶은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그리고 노동조합과 떼려야 뗄 수 없다.

고 한광호씨는 회사의 노조파괴 시도에 맞서 싸웠다. 그의 삶을 180도 바꿔놓은 것은 회사의 노조파괴였다. 발단은 회사측이 노사합의를 뒤집은 데 따른 것이다. 주간연속 2교대를 시행하기로 한 회사측은 돌연 노조를 무력화하는 것으로 입장을 전환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의 일이다. 합의사항을 지키지 않자 노조측은 파업에 돌입했고, 회사측은 공격적 직장폐쇄를 강행했다. 현장 복귀를 원했던 노조측을 물리친 회사측은 직장폐쇄를 유지하면서 기업노조 설립을 추진했다. 당시 유행했던 사용자측의 노조파괴 전략이었다. 창조노무컨설팅이 기획하고, 원청사인 현대자동차가 개입한 것은 노조파괴 사태의 한 단면이었다.

노조파괴 사태에는 기획과 자문을 맡은 창조노무컨설팅과 원청사인 현대자동차가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성기업 사건 판결문에는 현대차와 유성기업이 얼마나 치밀하게 지회를 와해시키려 했는지가 적시됐다. 현대차-유성기업-창조컨설팅이 유기적으로 협력했던 정황은 자세히 드러났다.

이처럼 원청-하청-노조파괴 전문가의 부당노동행위가 드러났음에도 노동부와 검찰은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지회는 2011년 5월부터 2012년 10월 사이에 현대차·유성기업 등을 부당노동행위로 다섯차례 고소했지만 검찰은 2013년 12월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지회가 낸 재정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여 재판을 한 끝에 판결이 내려졌다. 지난달 17일 사건 당사자인 유시영 유성기업 회장이 징역 1년6월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노조파괴 사태가 발생한 지 무려 6년 만에 판결이다. 반면 이 사태에 개입했던 현대자동차에 대한 검찰 수사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지회는 검찰에 고소한 데 이어 법원에 재정신청까지 하면서 현대차를 법정에 세우려했지만 진척되지 않고 있다. 그야말로 재벌에 대한 검찰의 역겨운 편들기다. 해마다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사건이 늘고 있지만 노동부와 검찰이 기소하는 건수는 미미하다. 재판을 통해 사용자의 유죄가 확정되더라도 징역형 처벌을 받는 이는 극히 드물다. 그러다 보니 노조파괴 사용자 100명 중 99명은 감옥에 가지 않는다는 속설까지 떠돈다. 유시영 유성기업 회장처럼 법정구속 되는 일은 드물다는 얘기다.

한광호씨는 이러한 사태의 한 가운데 있었다. 고인은 회사로부터 3차 징계를 위한 사실조사 통보를 받은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노조 탄압에 따른 중증 정신질환을 앓았다.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업재해 판정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피해는 그 뿐만 아니라 지회 조합원도 겪고 있다. 회사측이 지회와 조합원을 상대로 한 민형사상 고소·고발만 무려 1천300여건이다.

이처럼 유성기업 사태는 재벌대기업의 적폐와 부당노동행위가 기승을 부린 전형적인 사례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밝혀지면서 재벌을 개혁하자는 요구가 높다. 이른바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이다. 양대노총이 최근 발표한 대통령 선거 요구안에도 재벌개혁 과제가 일순위로 포함됐다. 그런데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구호는 있지만 재벌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노동조합에 대한 얘기는 쏙 빠져있다. 대선 공간에서 노동조합은 초라하기까지 하다. 이러니 재벌개혁이라는 구호가 공허해진다. 노동존중 평등사회도 추상적이긴 마찬가지다. 차라리 '노조파괴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구호가 낫다. 그것이 고 한광호씨를 기억하는 방법일 것이다. 이번 대선에선 '노조파괴 없는 세상, 부당노동행위 근절하는 정부'를 이슈화하는 건 어떨까.

박성국  park21@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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