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국정농단으로 망가진 국가 위신은 연이은 평화롭고 거대한 촛불집회로 꽤 회복되고 있다. 이제 대통령의 헌법을 무시한 월권적 행위에, 국회가 요구한 파면요청서에 대한 최종 승인만 남았다. 8명의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갈림길에 있는 이 나라 민주주의의 명운을 쥐고 있는 상황이다. 부디 그들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짧은 민주주의가 이만큼 성숙했음을 보여 주며 실추된 위신을 결정적으로 회복하는 도약대 역할을 해 주길 바란다.

금명간 이뤄질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 여부 최종 판결은 놓아 두고, 최근까지 헌법재판소 변론 과정에서 나타난 공정성 시비와 피소추인측의 어처구니없는 태도는 이 사건을 가슴 졸이며 바라보는 많은 국민의 안타까움과 공분을 자아내게 한다. 보도된 바, 피소추인측 변호인단은 재판정에서 법률가라고 칭하기 어려울 정도의 무례한 행태와 거친 언사를 일삼았다. 마치 법정이 아니라 또 하나의 선동광장이었고, 법리가 아니라 감정표출과 떼쓰기가 횡행한 3류 막장정치의 현장이 된 듯하다. 그러한 행태를 감히 표출한 변호인단과 그것에 관용을 베푼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인내 모두 놀라울 따름이다.

이제 마지막 시즌을 맞이한 ‘케이팝스타’라는 인기 예능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는 지난 6년간 젊은 가수지망생들을 발굴하고 키워 내는 경연장으로 기능했고, 그 과정을 예능적 묘미를 가미한 방송물로 잘 구현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번 시즌에도 수개월간 전 세계적으로 수만명의 참가자들이 참여한 결과 10명의 젊은 가수지망생들이 선발돼 경연을 하고 있다.

왜 이 방송은 끊임없이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고 인기를 구가할까. 모든 오디션 프로들의 명맥이 그다지 길지 않은데, 어떻게 공중파에서 6년이라는 시간을 이어 오면서 최장수 프로그램이 될 수 있었을까.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특히 오디션이라고 하는 냉혹한 승부의 장에 날카롭고도 따뜻한 조언이 가미되고, 여기에 참가자들과 심사위원들 간 비하인드 준비 과정과 소회까지 실으면서 매회 스토리와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식의 구성의 묘미야말로 가장 큰 비결일 것이다.

이 방송물에서 3명의 심의위원들은 심판자로서, 동시에 조언자로서 두 가지 역할을 모두 수행한다. 노래와 춤이라고 하는 객관적이고 표준적으로 평가하기 곤란한 참가자들의 퍼포먼스에 대해 매번 무엇이 좋았고 무엇이 안 좋았는지, 무엇이 감동을 자아내고 무엇이 밋밋한 흉내에 불과했는지 예리하게 가리고 일관되게 그리고 과감할 정도로 솔직하게 평을 한다. 타고난 재능과 노력을 격찬해 주면서 아쉬운 점과 발전해야 할 점을 충심을 다해 놓치지 않고 짚어 준다.

때론 의견이 갈리기도 한다. 그때마다 상호 의견을 존중하면서 최대한 서로 보완자 역할을 하도록 노력한다. 훌륭한 참가자의 멋진 경연을 보고 룰을 바꿔 누군가를 다음 라운드로 올리려 함께 궁리해 보기도 하지만, 방송국에서 정한 굵은 규정에 끝내 승복한다. 석연치 않고 아쉬운 구석이 없지 않을까마는 탈락한 참가자들은 심사위원들의 결정에 기꺼이 승복한다. 언제나 그들이 마지막 발언기회를 얻고 눈물로 감사와 다음 결의를 표출하는 것으로 한 라운드가 마감된다.

만일 심사위원들이 사익을 추구하고 룰을 함부로 어기며 누군가를 봐주고, 참가자들이 판정에 불복하고 항의하며 심사위원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제작진이 심사위원들의 부당한 요구에 눈감고 참가자들이 권위에 도전하는 것도 없던 일로 쉽게 덮으며 유야무야하려 했다면 어땠을까. 그러다 끝내 그러한 사실이 언론에 회자되고 시청자들이 저간의 정황을 알게 된다면? 당연히 이 방송은 곧장 폐지됐을 것이다.

6년째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 프로그램에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고 끝까지 공정함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시청자들이 참가자들이 펼치는 기예의 미적 아름다움을 즐기는 일은 이러한 공정성의 엄격한 준수와 신뢰 있는 판정, 그리고 그것에의 담담한 승복의 보이지 않는 노력 과정을 토대로 한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는 정정당당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그것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려면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공익을 향해 솔직하게 몰입하며 결과에 승복하는 문화가 우리의 관계와 제도 곳곳에 스며들어 지배해야 한다.

헌법재판소 심리 과정에서 발생한 어처구니없는 행태가 위험스러운 것은 성숙돼 가는 아름다운 문화를 파괴하고, 제도와 절차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의심하게 만들려는 나쁜 저의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암묵적으로 과거 민주주의가 숨죽이고 제도와 절차가 권력자의 노리개로 전락했던 시절로의 회귀를 지향한다. 대통령 탄핵소추 인용 여부를 떠나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mjnpark@kl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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