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2학년 땐 적당히 좀 놀아라.”(아버지)

“안 돼. 남친도 사귀어야 하고 미팅도 해야 한단 말이야. 3·4학년 땐 못해. 공부해야 해서.”(딸)

아빠 손을 잡고 산에 올랐던 여고생. 굵은 뿔테 안경을 썼던 앳된 딸은 대학 2학년 스무 살 성인이 됐다.

3년간 딸과 함께 진짜 산과 ‘입시산’을 오르내렸던 아빠. 한창 대학생활을 즐기고 있는 딸을 바라보는 표정은 어김없는 ‘딸바보’다.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서교동 <매일노동뉴스>에서 만난 한석호(53)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과 그의 외동딸 수민(20)씨.

아빠와 딸은 2013부터 2015년까지 동반산행을 했다. 아빠는 산행일지를 꼼꼼히 기록했다. 딸이 입시공부를 하면서 보인 눈물과 웃음, 옆에서 마음 졸이고 응원했던 가족의 모습도 글로 남겼다.

아빠는 그 글을 엮어 올해 1월 <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자>(레디앙)를 펴냈다.

 

함께해서 행복했던 입시산행

딸의 고교 입학을 앞두고 있던 2013년 새해 첫날, 아빠는 다짐했다. “앞으로 3년, 딸이랑 가능한 많이 산에 가자.”

등산만이 목적은 아니었다. 지옥이라고까지 불리는 입시생활의 외로움을 함께하겠다는 마음이 컸다.

“딸은 앞으로 3년간 꼼짝없이 ‘입시산’을 올라야 한다. 대한민국 입시산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험악하기로 이름난 곳이다. (…) 내가 딸의 입시산행을 대신할 순 없지만, 아빠이자 친구로서 딸아이가 외롭지 않도록 더불어 오르고 더불어 내려와야 한다.”(책 본문 중에서)

딸 누리(집에서 부르는 이름)에게 제안했다.

“고등학교 가면 밤늦게까지 공부하느라 힘들 거고, 책상에만 앉아 있어서 살도 많이 찔 테니까, 아빠랑 매주 산에 가자. 체력도 기르고 다이어트도 하고.”

“맛있는 거 사 준다”는 약속에 딸은 흔쾌히 동의했다. 3년에 걸친 아빠와 딸의 동반 입시산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부녀가 함께한 등반은 38회. 수학문제 하나라도 더 풀어야 하는 고교생 입장에서 결코 적은 횟수가 아니다. 주로 서울 인근 산에 올랐는데 한겨울에 1박3일 지리산 등반도 했다.

산에서 아빠는 딸과 소통하려 애썼다. 공부·친구·사회문제·꿈을 얘기했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는 산길을 인생에 비유했다. “절대 삶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일상생활도 입시산을 오르는 동반산행이었다. 딸이 시험공부와 성적으로 힘들어하면 아빠와 가족은 함께 힘들어했다. 회의다 집회다 노동운동에 바쁜 아빠는 함께 공부하고 진로를 고민했다. 대학 수시전형에 지원한 딸의 자기소개서를 함께 써 내려갔다.

딸은 바람대로 심리학을 전공할 수 있는 이화여대 사회과학부에 합격했다. 아빠와 딸은 입시산에서 무사히 내려왔고, 동반산행을 마무리했다.

함께 산을 오르고, 책까지 펴낸 것은 딸을 위해서였다. 가난한 노동운동가가 딸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오히려 아빠에게 더 큰 선물이 됐다.

아빠 : 딸한테도 선물이지만, 저한테도 어마어마한 선물이었어요. 경찰이 민주노총을 침탈하기도 했고, 일도 많았어요. 아침 8시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 게 힘들었는데, 그런 일상을 버티게 해 주는 청량제였으니까요. 행복이라는 표현으로 말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딸이 동행해 준 게 고맙지요.

: 대학 가서 술을 먹고 친구를 만나는 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집에 있는 시간이 줄었고,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도 줄었습니다. 아빠랑 산에 다닐 때는 잘 몰랐는데, 그때가 정말 소중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빠 : 가시나야, 늙으면 더 와 닿아.(웃음)

세상과 동행하는 홀로서기

딸의 대학 합격과 입학은 아빠가 딸에게 처음으로 준 ‘물질적’ 도움이었다.

딸은 ‘사회기여자 전형’으로 지금의 대학에 입학했다. 사교육 한번 제대로 받지 못했는데도 열심히 공부했다. 대학을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항쟁에 뛰어들었다가 고초를 겪은 아빠의 민주화운동 경력도 한몫했다. 딸은 사회기여자 전형을 알고 난 뒤 아빠에게 "아빠 개고생 내가 꿀 빤다"며 들떴다.

: 아빠가 감옥 다녀오시고 고생하셨는데 제가 이득을 봤지요.

아빠 : 물질적으로 유일하게 딸에게 도움을 준 거 같네요.

그런데 등록금이 걱정이었다. 1학년 1학기 등록금은 457만9천200원. 고등학교 등록금도 지인 도움으로 겨우 댔는데. 다행히 국가장학금 제도라는 것이 있었다. 그래도 부족해 212만9천200원은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딸에게 안긴 생애 첫 부채였다.

: 아빠가 갚겠지요.(웃음)

아빠 : 그래도 1학년 2학기와 2학년 1학기는 국가장학금으로 해결했어요. 집이 가난하니까 더 주던데요.(웃음) 반값등록금 싸움을 한 결과 같은데요. 제가 국가에서 도움을 받은 것은 처음입니다.

딸의 고등학교 졸업식이 있던 지난해 2월. 아빠는 그토록 행복했던 딸과의 입시산 동반산행이 끝났다는 사실이 못내 서운했다. 딸은 “세상과 동행하는 홀로서기”에 나섰다.

아빠 : 이제는 마음을 정리했어요. 대학 들어가면서부터는 내 품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그걸 인정해야지요. 일단은 놔두고 보자. 스스로 판단하도록 하자 이거지요. 세상과 동행하면서 홀로서는 훈련을 받아 봐라, 품에서 벗어나 많이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면, 그때 가서 손잡고 얘기하고 산에 가면 되지요.

딸은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교우관계가 좋았다. 친구들의 고민을 잘 들었고, 상담도 했다. 대학에 들어간 뒤에도 합창단 동아리, 학생회 활동을 한다. 폭넓은 인간관계를 맺고 있다. 사람관계는 가장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가장 힘이 되는 것도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딸이 사람관계 훈련을 잘하고 있다”는 것이 아빠의 생각이다.

: 잘 모르겠어요. 지금 잘 지내고 있는 것인지 돌아봐야 알겠어요. 크게 힘든 고민은 없습니다. 진로가 불투명한 게 가장 큰 고민이죠.

▲ 정기훈 기자

“제가 행복하려면 세상을 바꿔야죠”

딸은 고교 시절에 “쌍용자동차 아저씨들처럼 노조활동 하다가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들을 도우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대학전공을 심리학으로 정했다. 그 꿈을 좇아 지금의 대학에 들어갔다. 올해 2학년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전공과정을 밟게 된다.

: 지금은 막상 뭘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혀요.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다 보니 막막하네요. 고등학교 때는 전문직을 하더라도 인권운동이나 상담심리 같은 일을 하고 싶었는데. 저 빼고 취업준비를 위해 스펙쌓기에 몰두하는데, 저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도 스펙쌓기를 해야 하는지.

딸이 인권운동을 하려고 심리학을 선택하게 된 것은 아빠의 영향이 컸다. 아빠는 평생 노동운동에 몸담았다. 엄마인 황혜원(52)씨도 민주노총에서 일했다. 지금은 지역 풀뿌리 운동을 한다.

아빠는 딸이 노동운동이나 전업운동을 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경제적으로 궁핍하기도 하고, 때로는 출세주의자로 손가락질 받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고교 시절부터 딸에게 “전문성을 갖고 운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데 딸이 생각한 게 인권운동이었다. 노동운동보다 경제적으로 힘든 인권운동 말이다.

아빠 : 한국 사회가 엉망진창인데, 운동이 소금 역할을 하지요. 운동가와 운동집단이 필요해요. 그래서 복잡합니다. 딸이 운동을 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 하면 좋겠다는 생각….

딸이 입학한 이화여대는 지난해 내내 사회적 논란과 관심의 중심에 섰다. 평생교육 단과대학 설립에 반대한 학생들이 본관을 점거해 농성을 했다. 농성이 끝난 뒤에는 국정농단 주범 최순실의 딸 정유라 특혜 논란이 불거졌다.

: 본관 점거농성을 할 때 저는 전면에 나서지 않았거든요. 간단한 일을 도우면서 농성장만 열심히 지켰어요. 그런데 아빠가 맨 앞에서 싸우라는 거예요.

아빠 : 데모 열심히 하라고 했죠. 딸아이가 운동적인 삶을 사는 것에 대해 두 가지 감정이 있지만, 이왕 하려면 열심히 하라고 했어요.

아빠가 펴낸 책에서 딸의 고등학교 2학년을 얘기한 부분의 제목이 눈에 띈다. ‘팽목항에서 함께 울다’.

아빠는 책에서 “참사 이후, 난 반쯤 미쳐 있었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밤마다 만취했고, 집에서는 가족들에게 몹쓸 말을 했다고 한다. 동료나 선배들에게 자주 실수를 했다.

“난 세월호에 짓눌려 허우적댔다. 살해당한 아이들과 딸이 중첩되는 심리에서도 벗어나지 못했다. 기를 쓰면서 떼어 내려 해도 어느새 중첩되곤 했다.”(책 본문 중에서)

2014년 4월16일 희생·실종된 단원고 학생들과 딸은 동갑내기다. 딸과 아빠는 팽목항을, 광화문과 안산의 분향소를 함께 찾았다.

아빠 : 딸아이에게 비정규직 세상과 참사 세상을 물려주게 됐어요. 하늘을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창피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노력할 건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짐을 떠넘기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딸아이 세대가 기성세대가 못한 것을 이뤘으면 합니다. 함께 손잡고 이 세상을 바꾸자고 말하고 싶어요.

: 세월호 참사 때 아빠가 너무 힘들어하셨어요. 아빠가 사고를 낸 것도 아니고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세상을 제대로 바꾸지 않으면 저도 제 자식에게 미안해할 것 같아요. 제가 행복하기 위해서라도 세상을 바꿔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장 큰 행복은 자식과의 동행”
딸에게 준비한 200통의 편지


노동운동가인 아빠는 요즘 ‘자식교육’ 또는 ‘자식과 소통하기’ 전문가로 나서는 모습이다. 책이 출판되자 노동교육이 아닌 자식 관련 강의에 초청받기도 했다. 강의요청은 추가로 들어오고 있다.

아빠는 책에서 자식과 소통하고, 동행하는 길을 제시하고 싶었다. 책 서문에 “자식을 아이로 남기면, 자식은 부모 인생의 의무고 짐이 된다. 벗으로 세우면, 든든한 동반자가 된다”고 썼다. 자식에게 돈이나 물질적으로 해 줄 것이 없는 부모가 많은 요즘, 새겨들을 만한 얘기다.

아빠 : 엄마 아빠가 아이 눈높이에 맞는 기대에서 출발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아이들이 감당 못할 기대로 부담을 주기 시작하면 갈등이 생기고 멀어지게 되거든요. 술을 한잔하든, 어깨를 한번 쳐 주든 간에 아이 눈높이에서 소통하고 동행해 보세요. 산이 아니라도 좋아요. 뭐든 함께해 보세요. 세상의 행복은 참 많고 다양한데, 그중에 으뜸은 자식과의 동행인 것 같아요.

고등학교 3년 동안 아빠와 동반산행을 했던 딸은 이제 세상과의 동행에 나서고 있다. 아빠는 “이제 제2의 동반산행은 불가능할 것 같다”고 했지만 정말 그럴까. 딸의 입시산행은 끝났지만 인생산행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사실 아빠는 준비하고 있는 게 있다.

2001년 9월 딸의 네 번째 생일 다음날 아빠는 딸이 보는 앞에서 형사들에게 끌려갔다. 그해 2월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반대투쟁을 주도한 혐의였다. 세 번째 감옥살이였지만 딸아이가 사무쳐 견디기 힘들었다.

1년7개월 동안 딸에게 200통의 편지를 썼다. 편지에서 “아빠가 필요로 할 때가 있으면 만사 제쳐놓고 달려가겠다”고 약속한 것도, 4년 전 딸과 동반산행을 계획한 이유 중 하나였다. 나중에 그 편지들을 딸에게 주려고 한다.

아빠 : 그때는 아이가 너무 어려서 읽지도 못했고. 한 번도 안 보여 줬어요. 딸이 대학 졸업하고 사회로 나갈 때 읽어 보게 하려고요. 산에 가면서 말하지 못했던 얘기들, 세상에 대한 얘기들, 딸에 대한 내 마음을 담았어요. 사회에 진출할 때 중요한 조언이 될 수도 있고, 다시 동행에 나서는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아요.

: 울까 봐 보기 싫어요. 그래서 이번 책도 처음에는 읽기 꺼렸어요. 아빠 엄마가 힘드셨던 것들을 알게 되면 감사하긴 한데, 또 미안하잖아요.

딸은 고개 숙여 아래를 쳐다봤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았다. 아빠는 딸만 바라봤다.

▲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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