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박근혜 4년, 이제는 끝내자”고 지난 25일 촛불집회가 열렸다. 광화문광장과 전국 주요도시 광장에서 107만명이 참석했다고 했다. 박근혜가 대통령에 취임한 4주년의 날이었다. 여전히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있지만 특검 수사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대상자로 세우고서 맞이하는 17차 촛불집회였다. 4년 전에 대한민국 국민은 선거를 통해 대통령으로 선출했고, 오늘은 광장에서 대통령에서 물러나라고 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1조의 나라이니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인 대통령을 두고서 ‘대한민국의 주권’을 가진 국민이 어제는 투표를 통해서 선출하고, 오늘은 광장의 촛불집회를 통해서 퇴진을 위해 행동하고 있다. 어제는 선거권자로서, 오늘은 촛불시민으로서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앞에서는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는 행동을 이 나라 국민은 하고 있다.

2. 하지만 광장의 정치를 두고서 비정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정당정치라고 말하고, 민주주의는 대의정치라고 말하며 광장의 정치는 비정상이라고 말한다. 기껏해야 비상한 민주주의라며, 정상의 민주주의를 회복시키기 위한 임시적 국민의 행동이라고 말한다. 보수든 민주든 진보든 그 색이 무엇이든 박근혜 이후의 대권을 노리는 정치인들은 오늘 이 나라에서 광장의 정치는 정상적인 민주정치가 아니라는 데는 이구동성이다. 그들에겐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대통령 등을 통한 정치야말로 정상적인 민주정치다. 그들에겐 대표를 통하지 않고 국민이 직접 광장에서 행동하는 정치는 비정상적인 것으로 하루속히 벗어나야 할 정치다. 그러니 그들도 ‘이제는 끝내자’고 말하지만 그 말은 박근혜만을 두고서 하는 말이 아니다. 광장의 정치도 끝내자는 말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촛불집회의 광장에서 매주 노래했던 대한민국헌법 제1조2항이었다. 광화문광장 촛불시민들의 노래였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목이 터져라 노래했다. 그것은 비정규의 노래가 아니었다. 국회의원이든 대통령이든 ‘너희’의 권력은 ‘우리’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당당한 노래였다. 적어도 그 노래를 부를 때는 촛불광장의 국민은 권력자들을 부리는 주권자였다. 자신의 의사를 따르라고 제가 선출한 대표 권력자들에게 명령하는 국민이었다. 그 노래는 감히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비정규의 정치로 취급돼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 선언이었다. 감히 비정규로 취급받아서는 안 된다고 당당히 정치의 중심이라는 국민의 노래였다. 이렇게 오늘 대한민국 국민은 광장의 정치를 비정상이 아니라고 외치고 있다.

3. 이 세상에서 국민의 정치는 비정규로 취급돼 왔다. 사실 정규와 비정규는 노동자의 신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노동법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고용기간·간접고용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것은 노동자를 사용하는 사용자가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다하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노동법상 사용자로서 책임에 관해 정규직의 사용자는 져야 하는데 대해 비정규직의 사용자는 그렇지 않다. 그런데 정치에서의 정규와 비정규는 그 의미가 다르다. 국민은 주권자라고 규정해 놓았지만 국민은 권력을 선출하는 선거권자로 취급됐을 뿐이다. 선거권자로서 말고는 권력으로부터 주권자 국민으로 받들어지는 일은 없었다. 자신이 선출한 권력에 복종하는 일이 국민의 의무였다. 국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국가의 행위는 온통 권력의 것이었다. 그저 권력이 국가의 행위를 국민의 뜻을 헤아려서 해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정규의 정치를 차지한 대표자 권력은 자신을 선출한 국민을 그 정치에서 비정규로 몰아내 왔던 근현대사였다. 권력을 선출하는 것 말고는 주권자 국민의 일이 없게끔 민주공화국의 정치는 체계적으로 구축돼 왔다. 국민의 일이 아닌 권력의 일로서 민주공화국은 체계화됐다. 정당정치·대의정치·책임정치 등이 민주공화국의 정규 정치로 불려 왔고, 국민은 정당 대표자를 권력자로 선출하는 일 말고는 다른 국가의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철저히 취급돼 왔다. 이렇게 오늘 민주공화국에서 국민은 철저히 정규의 정치에서 배제됐다. 국민을 배신한 권력을 심판하는 일조차도 주권자 국민의 일이 될 수가 없었다. 국회의 탄핵 소추와 헌재의 탄핵 결정을 통해서 국정농단, 헌법질서 파괴의 권력 대통령을 심판할 수 있는 것이지 민주공화국의 국민의 일은 아니었다. 오늘 광장은 버림받았다. 국가의 행위를 결정하고 집행하는 일에서 보자면 오늘 민주공화국에서 광화문광장은 아테네의 광장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광화문광장에서 국민의 외침은 배제된 민주주의의 절규였다. 정규의 정치에서 배제된 국민이 선 채로 외칠 수 있는 광장의 노래였다. 정규의 정치에 대한 비정규의 반란이었다.

4. 비정상과 비정규의 정치는 어서 빨리 벗어나야 할 정치라는 걸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본 것처럼 민주주의로 보자면 그것은 결코 비정상과 비정규로 취급돼야 할 정치가 아닌 것이다. 비정상의, 비정규의 것으로 취급해 온 정치가 오히려 비판받아야 한다. 사용자에 제공하는 노동에서 다를 것이 없음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갈라 노동자의 신분을 차별하는 것이 비판받아야 하는 것처럼 본래 국민의 의사에 따라 결정하고 집행해야 할 국가의 일이 국민을 대신한 권력의 일을 정상이고 정규의 것으로 취급해 온 세상은 비판받아야 한다. 광장은 국민의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민주주의는 국민의 것이지, 국민을 대신하는 권력의 것일 수는 없다. 국민이 스스로 행동하는 걸 비정상으로, 비정규로 취급하는 정치는 국민을 위한 것일 수 없다. 민주주의로 보자면 권력은 국민에 기대서만 정당할 수 있다. 국민을 배제하고서는 정당할 수 없다. 아무리 압도적인 득표로 선출된 권력이라도 국민을 배제하고서 행사하는 권력이 정당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선출된 대표에 의해서 권력을 행사하는 대의제는 선출해 준 국민에 기대서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국민을 배제하고서는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다. 국민이 광장에서 직접 행동하는 민주주의를 두고서 대의제가 비정상의, 비정규의 것이라고 비난해선 안 될 일이다.

5. 노동법이 노동자의 고용을 보호하고 중간착취를 배제하며 사용하는 사용자로 하여금 그 책임을 지도록 하는 노동자 보호법이라면 노동자가 원하지 않는 비정규직 제도는 용납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권리를 위한 노동자운동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갈라 차별적 노동자 신분을 부여하는 제도를 용서해서는 안 된다. 17차례의 촛불집회는 광장에서 국민 행동으로 한국현대사에 위대한 민주주의를 써 왔다. 대의정치로 보자면 그것은 비정상과 비정규로 취급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국민이 스스로 주인되는 민주주의로 보자면 광장에서 국민 행동이야말로 진정으로 민주주의다. 그걸 비정상으로 비정규의 것으로 취급하는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논의해야 할 일이다. 오늘 촛불광장에서 비정규직 폐지가 국민의 의사로 결집돼서 하나로 행동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않고 있다. 박근혜 일당을 처벌하고 심판하는 데, 무엇보다도 대통령 박근혜를 퇴진시키는 데 촛불광장의 국민이 행동하기에도 숨이 가쁘다. 자신이 선출한 권력을 심판하기 위해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서 있는 것도 비정상으로 취급되고 있으니 노동의 요구를 외치는 데까지는 너무 멀다. 그런데 이 비정규직 세상은 국민을 배제하고 서 있는 대의제와 별개가 아니다. 노동자를 사용하는 사용자 자본이 사용자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도록 규정한 비정규직법은 국민이 선출한 권력에 의해서 입법돼서 시행해 왔다. 국민의 절대 다수가 노동자인 이 자본의 세상에서 국민의 의사로 고용 등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지 않는 비정규직 제도를 결의하고 집행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국민을 배제하는 정치야말로 비정상인 것으로 취급당해야 한다. 국민이 직접 행동하는 민주주의야말로 정규의 것으로 인정돼야 한다. 국민소환제·국민발안제 등 몇 가지가 제도화되는 것만으로 국민의 정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말해선 안 된다. 국민의 의사가 상시적으로 표출되는 광장의 정치, 국민의 행동이 국가의 행위가 되는 국민의 정치가 정규의 정치로 되는 날, 비로소 민주주의는 사칭이 아니라 제 이름으로 불릴 수가 있다. 광장이 국민의 것인 것처럼 정치, 국가의 일도 국민의 것이어야 한다. 박근혜 정권을 끝내는 것 말고도 할 일이 많은 대한민국 국민이어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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