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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직장의 문턱을 넘으려면김요한 공인노무사(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 김요한 공인노무사(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1년 전 이맘때 많은 이들이 집권 여당의 영구집권을 걱정했다. 4월 총선이 예상과 달리 여소야대로 귀결됐지만 권력의 성벽은 여전히 높아 보이기만 했다. 돌이켜 보면 한순간이었다. 1천만 촛불이 박근혜를 탄핵 심판대에 올리기까지의 시간 말이다.

박근혜 정권에서 청산돼야 할 적폐쯤으로나 취급받던 노동운동 진영도 기쁜 마음으로 도도한 역사의 물결에 동참했다. 그리고 1987년 6월 항쟁 이후의 노동자 대투쟁을 떠올리며 기대했다. 나라의 민주주의를 지켜 낸 이 거대한 광장의 촛불이 이제 직장으로 옮겨붙어야 한다고. 한 인간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이야말로 민주주의가 가장 절실히 필요한 곳이라고.

직장 문 앞에서 멈춰 버린 촛불

세상이 뒤바뀌는 일은 순간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박근혜 탄핵이 확정되고 조기 대선으로 노동자들에게 (표면적으로나마) 유화적인 정권이 등장한다면, 노동자들의 자신감이 대중적으로 분출할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현시점에서만큼은 우리의 기대와 달리 광장의 촛불이 직장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는 “광장의 조증(躁症)과 삶의 울증(鬱症)”이라고, 또 누군가는 “광장과 일상의 분리”라고 표현했다. 그랬다. 광장에서 이 나라 최고 권력자를 끌어내렸던 시민들은 직장에서는 다시 원자화된 개인으로 돌아갔다. 부정한 권력을 규탄하기 위해 자유발언대에 긴 줄을 섰던 그들은, 직장에서는 경영자의 전근대적인 지시를 묵묵히 견뎌 내며 “이직, 아니 아예 이민이 답”이라고 했다. 변한 건 없다. 장시간 노동은 계속되고 임금은 오르지 않는다. 비정규 노동자들은 해고되고 출산을 앞둔 여성노동자는 퇴직을 강요받는다. 그 뜨겁던 광장의 민주주의가 일터에서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노동자는 노동 바깥에서야 비로소 자기가 자신과 함께 있다고 느끼며, 노동 속에서는 자기가 자신을 떠나 있다고 느낀다.”(카를 마르크스) 심지어 민주주의조차 노동을 떠나야만 실현되는 것인가? 노동자들이 노동하는 곳으로 돌아올 땐 민주주의 대신 금수저들의 전제(專制)를 현실로 받아들여만 하는 것인가.

노동조합 가입률을 높이는 두 가지 제언

그럴 순 없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 노동자의 존엄성은 일터에서 제일 먼저 보장돼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노동조합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 점에 대해 중언부언할 필요는 없겠다. 그보다는 노동조합의 조직률을 높이기 위한 제언 두 가지를 하고자 한다.

첫째, 평생직장 개념 자체가 사라진 오늘, 더 이상 사업장 단위의 전통적인 노조 조직화 방식으로는 노동조합을 확대하기 어렵다. 또 기업 규모별로 지불능력 차이가 크다는 점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300명 이상의 대기업에서 노조 조직률이 62.9%인 반면 100명 미만 사업장 노조 조직률은 2.7%에 불과하다. 미조직 노동자들을 개인 자격으로 가입시키고, 사업장 단위 단체교섭이 아니더라도 이들이 노동운동의 새로운 주체로서 활동할 수 있는 정치적·조직적 공간을 열어 줘야 한다. 이제 제발, 더 이상 더는, 민주노총에 가입하고 싶다고 찾아온 노동자들을 “동료들 더 모아 오세요” 하면서 돌려보내지 말자.

둘째, 청년노동자들을 조직하지 못하면 노동조합은 얼마 지나지 않아 노인조합으로 쇠락하고 말 것이다. 어느 산별노조는 앞으로 10년이면 조합원 3분의 1이 정년퇴직을 한다고 한숨이다. 이제라도 각급 산별노조·지역본부·단위노조 등은 청년 활동가들을 의무적으로 채용하고 전진 배치하자. 만국의 아재들이여, 인정하시라. 청년노동자들의 정서와 상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창의적인 계획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 아니겠는가? ‘30년 노동운동 경력’보다 젊음 그 자체가 필요하다. 사람이 없다는 탓만 하지 말고, 젊은 활동가가 없으면 키워 낼 고민과 계획을 내오자. 그들의 반짝이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노동운동의 새로운 활력이 되도록 판을 펼쳐 주자.

위 두 가지 사업에서 공단을 거점으로 하는 근로기준법 준수 요구는 유용한 매개 고리가 될 수 있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서 활동하는 민주노총 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 ‘노동자의 미래’는 최근 ‘무료노동·부당해고 신고센터’를 만들었다. 30분씩 일찍 출근시키거나 퇴근시간을 넘겨 일을 시키면서 임금을 떼어먹는 사용자의 불법행위는 역사가 깊다. 이러한 무료·무급노동, 그리고 일상적 구조조정이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는 사실을 널리 알려 내야 한다. 그리하여 미조직 노동자들, 특히 부당한 대우에 민감한 청년노동자들을 적극적으로 노동조합에 가입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노동조합이 노동자 연대 터전이 되자

광장에서 시민들은 촛불로 연결됐다. 어깨를 맞댄 시민들이 서로 촛불을 옮겨붙일 때 부당한 권력은 탄핵됐다. 이제 일터에서는 노동조합이 촛불의 역할을 해야 한다. 노동조합이 가장 열악한 처지에 있는 비정규직·여성·청년·이주 노동자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터전이 돼야 한다. 노동자들의 단결과 연대만이 직장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자본의 부당한 독재를 탄핵할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먼저 앞세워야 할 일이 있다. 조합주의라는 우리 안의 부끄러운 적폐를 불사르는 것이다. 노동조합이 전체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집단의 협소한 이해를 지키는 데 머문다면, 노동조합은 반드시 실패한다. 다시 민주노조 정신으로 돌아가자.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김요한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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