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법원이 사내하도급 불법파견 범위를 폭넓게 인정하는 판결을 잇따라 내놓자 재계가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직접생산공정뿐만 아니라 일정한 흐름을 갖는 간접공정(연속흐름공정) 사내하도급 노동자까지 불법파견 판정을 받으면서 자동차업계뿐만 아니라 철강·서비스업 전반으로 논란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법원 판결을 분석해 최대한 불법소지를 없애자”는 취지의 교육부터 국회·정부에 대한 정책건의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재계가 법 위반사항을 원천적으로 개선하지 않고 편법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노동부 불법파견 감독 분석 후 대책 마련

23일 재계에 따르면 한국생산도급연구소는 다음달 8일 원청과 하청업체 인사·계약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고용노동부 사내하도급 점검 대비와 고용유연성 확보방안 세미나’를 연다. 연구소는 도급업체들이 설립한 한국생산도급연합회 부설 연구소다.

연구소는 교육 안내문에서 “합법적인 사내하도급에 대한 노하우를 알려 드리겠다”며 “불법파견·위장도급 해결방안과 고용유연성 확보, 생산성 향상 방안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노동부가 1천360개 업체를 근로감독해서 4천119건의 위법사항을 적발해 사법처리하고 2천624명의 불법파견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도록 조치했다는 사실도 적시했다.

연구소는 △2016년 노동부 불법파견·위장도급 점검 결과 분석과 2017년 근로감독 방향 및 대응방안 △최근 사내하도급 법적 이슈와 대책 △도급과 근로자 파견, 위장도급과 불법파견의 개념과 법적 판단기준 △불법파견·위장도급 적발 기업사례 및 법적 제재 사항 분석 △합법적 사내하도급 관리방안과 전략을 교육할 예정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법원 판결과 노동부 감독사항을 분석해 도급의 불법소지를 줄이면서 고용유연성을 어떻게 확보할지를 공유하는 것이 주된 교육목표”라며 “최근 관심이 급증하면서 교육 신청자는 물론 컨설팅을 해 달라는 기업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지난 21일 ‘주요 노동판결과 기업 대응 설명회’를 열어 사내하도급 불법파견 법원 판결을 올해 가장 주목해야 할 사건으로 꼽았다.

대한상의는 법원이 직접생산공정에서 연속흐름공정 사내하도급으로, 자동차업계에서 철강과 서비스업계로 불법파견 판결을 확대하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법원은 자동차 생산라인(컨베이어벨트)뿐만 아니라 포장·배송 같은 간접공정과 철강업종 기계정비·고철장·에너지·폐수처리 같은 업무, 크레인 작업까지 모두 불법파견으로 판시했다.

이날 강사로 나선 김동욱 변호사(법무법인 세종)는 “만일 대법원이 철강업체 사내하도급 사건에 대해서도 원심처럼 불법파견으로 판결할 경우 제조업에서의 노무도급 사용은 사실상 금지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불법파견의 원인이 되는 엄격한 파견규제를 전향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계 관계자는 “법원 판결에 대해 가타부타 말하긴 어렵지만 기업의 인력운용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측면에서 심각하게 보고 있다”며 “국회나 정부에 정책건의를 통해 개선책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사정위원회는 '외주화 연구회' 발족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이날 파견·용역·사내하도급 문제를 논의하는 외주화 연구회를 발족했다. 연구회는 내년 2월까지 1년간 원·하도급 노동자 간 격차완화 이슈를 논의한다. 노사정위는 "하도급 노동자의 고용안정성을 강화하면서도 기업 경영권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피할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불법파견 같이 과도한 외주화로 발생하는 문제를 다루겠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노동계 관계자는 “지금은 파견노동의 오·남용을 막고 파견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라며 “불법파견을 합법파견으로 둔갑시키는 편법적 논의를 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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