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지연 변호사 (법무법인 여는)

대상결정 : 대전지방법원 2017.1.31 선고 2016카합50368 결정1)


1. 사건의 개요

기획재정부가 2016년 1월28일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권고안을 발표하자, 공공기관들은 일제히 위 지침에 따라 기존의 호봉제를 폐지하고 성과연봉제를 전면적으로 확대하는 내용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했다. 그 과정에서 공공기관들은 이사회 의결만을 거쳤을 뿐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필요한 과반수 근로자 집단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 이에 공공기관 노동조합들은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에 반대하며 전국철도노동조합이 74일간 파업을 이어 간 것을 비롯해 유례없는 규모의 파업을 전개했고, 취업규칙 무효확인 소송 등을 제기하면서 취업규칙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2. 결정취지

대전지법 제21민사부는 1월31일 한국철도공사·한국철도시설공단·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한국가스기술공단·한국수자원공사가 과반수 노동조합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변경한 취업규칙의 효력을 1심 판결 선고시까지 임시로 정지하는 내용의 가처분 결정을 했다.

3. 대상결정의 쟁점 및 의미

가. 사안의 쟁점

가처분이 인용되기 위해서는 우선 보전해야 할 실체법상의 권리(피보전권리)가 있어야 하고, 그와 같은 권리를 미리 보전해야 할 필요(보전의 필요성)이 있어야 한다.

성과연봉제 도입을 위한 취업규칙의 변경은 임금체계의 전면적 개편에 해당하고, 나아가 각 근로자 상호 간에 이불리에 따른 이익이 충돌하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대법원 판례에 따를 때 근로기준법 제94조1항 단서와 단체협약 등에서 정한 노동조합의 동의를 얻어 진행했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공공기관들은 그러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개정 취업규칙은 무효이고(피보전권리의 존재), 쟁점은 결국 ‘보전의 필요성’으로 압축됐다.

나. 쟁점에 대한 판단

앞서 다른 공공기관 노동조합의 가처분 신청에 대해 몇몇 법원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더라도 당장 생계에 곤란을 겪을 손해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으며 공공기관의 자력에 비추어 추후 금전배상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나 급박한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없는 반면 가처분 신청이 인용될 경우 정부 지침에 따른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고 자율적 교섭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는 점 등을 들어 보전 필요성을 부인하고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나 대상결정은 “이 사건 취업규칙은 임금체계 자체에 본질적인 변경을 가지고 오는 것일 뿐만 아니라, 저성과자로 평가된 근로자들의 경우 개정 전 취업규칙에 의할 때보다 임금액이나 임금 상승률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채무자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고, 그와 같은 동의가 없이 취업규칙 개정이 이뤄진 경우 노동조합에는 동의 없이 이루어진 취업규칙 개정이 무효라는 확인을 구할 이익이 있다고 봤다.

또한 보전 필요성과 관련해서도 ① 이 사건은 (금전지급단행 가처분이 아니라) 기존 법률관계를 그대로 유지하는 내용의 소극적인 임시의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으로, 가처분이 인용되더라도 채무자로서는 이 사건 취업규칙의 적용시점을 일시적으로 늦추게 될 뿐이므로 특별히 이로 인한 불이익이 있지 않은 점 ② (채권자가 불이익으로 주장하는) 기재부의 인센티브 및 페널티 지침은 취업규칙 문언 이외의 외부적 사정으로서, 법원에 의해 강행규정 위반 상태가 적법하게 회복됐다는 점을 이유로 불이익을 부여한다는 것은 부당한 조치여서 불이익이 발생하리라고 보기 어려운 점 ③ 반면 이 사건 신청이 기각될 경우 채무자 소속 근로자들이 근로를 제공한 대가로서 상당기간 누려온 기득이익인 ‘임금채권에 대한 법적안정성이나 예측가능성이 침해될 우려’가 크고 이는 사후적인 금전배상만으로 완전히 전보되기 어려운 것인 점 ④ 오히려 변경된 취업규칙의 적용시점이 늦춰지는 기간 동안 사용자는 노동조합과 적극적이고 성실하게 협의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고,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에 헌법상 보장된 단체교섭권이 충분히 발현될 수 있다는 점 등을 종합해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다. 본 결정의 의의

대상결정은 전국적으로 이뤄진 공공부문에서의 위법행위를 막아 세운 것일 뿐만 아니라 노동가처분의 법리와 노사관계의 실태에 관한 깊은 이해를 보여 준 역사적인 결정이다. 그 의의를 몇 가지 점에서 짚어 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이 임금체계의 본질적 개편이자 불이익한 취업규칙 변경으로서 근로기준법에 따라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아야 할 대상임을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법리에 충실하게 ‘취업규칙의 문언’을 기준으로 불이익 여부를 판단했고, 정부의 지침은 법률의 범위 내에서 발령되고 집행돼야 한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 공공기관들이 ‘법’을 따르지 않고 ‘정부 지침’만을 따라 위법한 행위로 나아간 데 대해 법원이 제동을 건 것이다.

둘째, 사용자의 일방적 임금체계 변경과 같은 사용자의 전횡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손해는 단순히 금전적인 것이 아니라 “임금채권의 법적안정성과 예측가능성”임을 인정함으로써 이 사건의 본질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 사건은 “집단적 노사관계에서 임시의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임에도, 몇몇 다른 법원들은 단지 근로자 개개인의 금전적 불이익으로만 환원하면서 단체협약 상의 합의권과 같은 비재산적 법익을 별다른 근거 없이 무시하거나 전혀 맞지 않는 금전지급단행 가처분의 요건을 끌어오는 등으로 왜곡된 법리판단을 전개한 바 있다. 하지만 대상결정은 공공기관의 임금체계 일방 변경이 단지 임금 수준의 불이익뿐 아니라 노동조건에 대한 노동자들의 결정권을 침해하고 노사관계의 대등성을 무너뜨리는 문제임을 올바르게 바라봤다.

셋째, 재판부는 가처분 인용을 통해 위법 상태가 제거돼야 노사가 적극적이고 성실하게 협의를 해 단체교섭권이 충분히 발현될 수 있다고 봤다. 실제로 일방적 이사회 의결 이후 정부와 사용자들은 더 이상 교섭 여지없이 이미 성과연봉제 도입이 완료된 것처럼 주장해 왔고, 가처분 기각은 이러한 위법 상태의 강행을 합리화해 줄 뿐인 점에서 대상결정은 지극히 타당하다.

결국 대상결정은 성과연봉제 도입은 정부가 시한을 두고 강요하거나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도입해서는 안 되며 노사의 충분한 협의와 그에 따른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지극히 법과 원칙에 입각한 상식적인 결정이다. 일방적 성과연봉제의 폭주를 막아 세운 대상결정을 환영하며, 향후 다른 가처분 사건이나 본안 사건에서도 이러한 판단이 유지되리라 기대한다.


각주
1) 같은 취지(同旨) 취업규칙 효력정지 가처분 : 대전지법 2017.1.31 선고 2016카합50370(한국철도시설공단)·2016카합50384(한국가스기술공사)·2016카합50390(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2016카합50490(한국수자원공사)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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