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16차 촛불집회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된 다음날인 18일 열렸다. 전국 도시의 광장에서 약 85만명(주최측 추산)의 촛불시민들은 승리를 노래했다. “이재용을 구속하라”고 그동안 촛불집회 때마다 목이 터져라 외쳐 왔던 요구가 특검의 재청구와 법원의 결정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돼 이재용은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됐기 때문이다. 이날 촛불시민들은 청와대·헌법재판소 등으로 행진하면서 “촛불시민이 승리했다” “광장이 승리했다”고 환호했다. 지난해 10월 말 시작된 촛불집회는 이날 이렇게 또 하나의 승리를 기록했다. 분명히 지금 이 나라의 광장은 촛불을 통해 위대한 한국현대사를 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국회·대통령·법원 등 권력기관 위에 국민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시대고,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2항을 해설서 없이 그대로 읽을 수 있는 위대한 촛불시대임에 틀림이 없다.

2. 이렇게 위대한 광장의 시대에 노동의 노래도 들려온다. 촛불집회 주최단체로 민주노총 등 노동단체가 참여하고 행진에 앞장서 왔으니 노동의 주장이 구호로 외쳐졌음은 당연하겠다. 대선후보자들도 촛불민심을 받아안겠다며 다투어 노동에 관한 공약을 말하고 있다. 촛불집회가 직접민주주의를 실험하는 장으로, 광장의 요구를 국민의 의사로, 대한민국의 의사로 실현해 내려는 실험도 행해지고 배틀토론·국민토론 등 다양한 촛불시민들의 토론이 행해지고 거기서 노동에 관한 것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일자리·노동시간단축·공정임금제·기본소득·노동기본권·육아휴직 연장·비정규직…. "경제를 살려 일자리를 만들고, 청년실업 해결을 위해 공공부문 등 좋은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주 52시간을 초과한 장시간 노동을 규제하는 노동시간단축을 통해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대기업 지원을 통해 중소사업장 노동자의 임금 향상을 도모해야 한다" "국가가 국민에게 일정액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도록 해야 한다" "삼성에 노조를 설립하는 등 노조 조직률을 확대해야 한다" "육아휴직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 "비정규직 차별을 규제하고 비정규직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 "성과연봉제·비정규직 확대 등 노동개악을 중단해야 한다"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해야 한다" 등 오늘 노동에 관한 촛불광장과 대선후보자들의 말이다. 오늘 이후에도 촛불집회에서, 대통령선거운동 기간에도 계속해서 쏟아질 것이다.

3. 그런데 말이다. 오늘 광장은 위대하지만 노동은 그렇다고 말할 순 없다. 무수히 쏟아지는 노동에 관한 말에도 불구하고 오늘 광장에서 노동이 위대하다고 말할 수가 없다. 실로 오늘 광장의 힘은 주권자 국민이 직접 국가 대한민국의 의지를 말하고 국가권력을 대리인으로 전락시켰던 것이라고까지 말할 만하다. 그야말로 위대한 직접행동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이런 촛불광장이지만 노동에 관한 주장은 그렇지 못하다. 노동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노동자의 직접행동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오늘 촛불광장에서는 그것이 없지만 여기서 나는 그걸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촛불시민혁명의 시대라고 불리고 있는 이 위대한 시대에 노동에 관한 것은 그렇지가 않다고 말하고 싶은 거다. 일자리 확대, 노동시간단축,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과 중소기업 노동자 처우개선, 비정규직 차별규제 등 쏟아지는 것들은 지금까지 이 나라에서 대선 공약으로, 노동개혁 등 권력의 정책으로 추진해 왔던 것들과 달라 보이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이라고 내게는 여겨진다. 청년실업·저출산·임금 격차·비정규직 등 문제가 다르지 않으니 대책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런데 말이다. 그런 거라면 박근혜 정권이 추진해 왔던 노동개혁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 못 된다고 나는 말해 줄 수밖에 없다. 고작해야 방법과 정도의 차이에 불과하다고 나는 말해 줄 수 있다. 기껏해야 의지의 차이라고 말해 줄 수 있다. 그런데 아직 권력을 차지하기 전에 하는 말이니 과연 박근혜 정권의 것과 얼마나 차이가 있을지도 나는 아직은 정확히 알 수가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4. 아무리 복잡해도 어디로 뻗은 길인지 살펴봐야 한다. 노동자는 이 자본의 세상에서 사용자 자본에 복종하는 자다. 헌법과 근로기준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노동자를 ‘근로자’로 정의하면서 이러한 의미로 규정했다. 광장에서 권력에 호령하는 위대한 주권자 국민일 수 있어도, 사업장에서는 사용자 자본의 호령에 복종해야 하는 자라고 노동자는 규정되고서 이 세상은 자본의 운동을 시작했다. 노동하는 농민이 지대를 빨아들이던 영주·지주 등의 봉건 지배에서 벗어났을 때, 그는 토지에서 추방돼 사용자 자본의 사업장에서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노동자로 살아야 했다. 봉건의 지배자가 노동하는 농민에게 지불하던 것은 사용자 자본이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임금으로, 노동하는 인민의 신분이 농노에서 노동자로 바뀜에 따라 노동에 대한 보상이 바뀌었다. 그렇다면 여전히 지대는 노동자의 것은 아니다. 지대는 언제나 지배자 권력의 차지다. 이름을 바꾼 채 지대는 오늘 사용자 자본의 차지다. 토지가 아니라 공장 등 작업장에서 노동의 결과물을 차지해 왔다. 오늘 세상을 자본과 노동으로 구분해서 보자면 사용자 자본은 봉건 지배자가 지대를 차지하던 것처럼 노동자의 노동의 결과를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건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것이다. 1위 재벌 삼성뿐만 아니라 그 삼성의 하청업체 중소사업장의 자본조차도 노동자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그렇다. 단지 그것이 재산권과 직업 선택의 자유, 영업의 자유 등 헌법이 규정한 국민의 기본권에 근거한 것으로 정당성이 부여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오늘 대한민국 권력의 실체에 관해서 노골적으로 말하는 이 위대한 촛불시민혁명의 날에도 노동에 관해서는 숨김없이 말하고 있지 않다.

5. 이 나라에서 노조운동, 나아가 노동운동까지도 민주노총을 제외하고서는 말할 수 없다. 그런 민주노총이 오늘 이 나라에서 촛불을 타오르게 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는 걸 부인할 사람은 없다. 세월호, 아니 광우병, 더 멀리 효순이·미선이까지 촛불집회에서 커다란 자리를 차지해 왔다. 그런 촛불집회가 쌓이고 쌓여, 그런 것들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커다란 불길로 타오른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촛불집회에서 민주노총의 그런 자리 때문에 촛불이 꺼지지 않을까 매우 조심스럽다. 촛불집회에서 나는 그런 거라고 보았다. 노동자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외치는 것도 그렇고, 어쩌다 외치는 노동의 구호도 위와 같은 것들이다. 이 세상을 자본과 노동으로 들여다보면서 근본적 문제의 제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사업장을 노동이 차지해야 한다고 소유의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용자 자본에 대한 고용의 압박 없이 내세우는 일자리 대책, 법정 근로시간을 노동제로서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서 말하는 노동시간단축 대책, 사업장 규모 및 노동자 신분을 불문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할 대책 없이 말하는 중소사업장 노동자 및 비정규직 대책, 비정규직 폐지 없이 비정규직 사용을 당연한 전제로 하면서 말하는 비정규직 대책, 노조의 설립·교섭 및 쟁의에 관한 일체의 규제 폐지 없이 말하는 노동기본권 보장 등 지금 이 나라에서 쏟아지고 있는 노동에 관한 주장은 촛불광장이 위대한 만큼 초라하다.

사실 무엇이 중하지 않겠는가. 오늘 이 나라에서 주권자 국민의 눈으로 보자면 온통 주장하고 외쳐야 할 것들이다. 직접행동을 통해서든, 대표를 통해서든 헌법이 선언한 국가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외쳐야 할 것 투성이다. 노동자도 국민으로서 이 헌법 파괴 국정농단의 나라를 두고서 ‘이게 나라냐’며 분노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그는 국민이라도 노동자,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노동자의 처지에서 이 자본의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라보며 이 세상의 권력 자본에 대해 노동의 권리를 꺼내야 할 자는 노동자 자신이다. 오직 노동자, 노동자 자신의 운동인 노동운동만이 현상에서 본질로 뚫고 들어가 노동자의 권리를 말할 수가 있다. 이런 노동자, 노동운동이야말로 무엇보다도 중하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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