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완 희망연대노조 SKB 비정규직지부 사무국장

지난해 창문에 매달려 일하던 전자제품 수리 노동자가 추락해 숨지고, 스크린도어를 고치던 청년이 전동차에 치여 사망했다. 모두 간접고용 노동자다. 대기업은 외주화로 업무뿐만 아니라 위험까지 비정규직에게 떠넘겼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사회를 바라는 기대는 차고 넘친다. 안전사회를 여는 열쇠는 노동자들이 쥐고 있다. 일자리가 안정적이어야 집중도가 높아지는 건 당연한 이치다. 안전업무 외주화는 분명 독이다. <매일노동뉴스>가 대기업 외주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네 차례로 나눠 지면에 싣는다. 위험업무를 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우리 사회 감춰진 노동을 드러내고, 변화를 이끄는 작은 물결이 되기를 기대한다.<편집자>



최근 미래창조과학부는 방송통신업의 불법도급에 대한 의견을 내놓았다. 주택기사의 경우 전봇대작업은 위험하니 공사면허가 있는 업체의 정직원이 해야 하고, 신호를 보내 주는 탭이 전봇대가 아닌 옥상에 있는 경우와 아파트는 구내선로가 설치돼 있기 때문에 공사면허가 없어도 설치작업을 해도 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현장에서 일하는 기사들은 이 대책을 어떻게 평가할까.

나는 SK브로드밴드의 설치기사다. 주택에서 인터넷을 설치하는 업무를 한다. 노동조합이 생기고 단체협약에 따라 센터 정직원이 되기 전에는, 센터와 일대일로 계약을 해서 일하는 외주기사로 근무했다. 외주기사 신분일 때를 돌아보면 억울하다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전봇대작업을 하면서 떨어져 보기도 하고 빌라 현관 위 캐노피에 사다리를 걸치고 작업하다가 사다리가 뒤로 넘어가면서 심하게 다쳐 보기도 했다. 다칠 때마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다음 일을 어떻게 하지?” 혹은 “센터에는 뭐라고 말하지?”였다.

4대 보험료는 노동자와 센터가 반반씩 부담해야 하지만 외주기사는 센터 부담금까지 100%를 낸다. 그런데도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센터가 산재처리를 안 해 준다. 일을 하다가 다리를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다쳤는데 센터는 오히려 화를 냈다. “다음 예약된 고객은 어떻게 할 거냐” 또는 “조심해서 일하지 왜 다쳐서 머리 아프게 만드냐”면서 말이다. 결국 산재처리 없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죄인 된 기분으로 다음날에도 일했다.

센터를 옮겨서 주택설치보다 상대적으로 덜 위험할 것 같은 아파트 설치 업무를 배우기로 했다. 전봇대에 올라가는 일은 없으니 편할 것이라는 생각은 첫날부터 깨졌다. 아파트는 보통 지하에 장비가 설치돼 있다. 불이 들어오지 않아 휴대전화 불빛에 의지해 장비를 찾아야 하고, 군데군데 바닥이 꺼져 있는 경우도 있고, 심한 곳은 한 사람 들어가기도 힘든 틈을 기어 들어가야 장비를 겨우 찾을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지하주차장은 사람들의 왕래가 잦다. 손이 닿지 않는 천장배관 부근에 장비가 있는 경우가 많다. 심한 곳은 배관 위에 장비가 있어 사다리 없이는 연결을 할 수 없을 정도다. 이런 곳에서는 높은 데서 뛰어내리다가 다리를 다치는 일이 다반사다.

오래된 아파트는 옥상에 장비가 있다. 옥상에서 집안까지 외벽으로 선을 내려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20층 가까이 되는 아파트 옥상에 서서 밑으로 선을 내리려고 바라보면 강심장인 사람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무섭다. 전봇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다.

지난해 9월27일 의정부센터에서 비 오는 날 전봇대에 올랐던 설치기사가 감전돼 추락사하는 일이 발생했다. 관리자는 아침 조회에서 실적을 강요하면서도 조심하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비가 오는데 전기선이 지나가는 전봇대에 올라가라고 하는 게 맞는 건가. 더 기가 막힌 건 사고를 당한 기사는 도급기사여서 산재처리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센터 일을 하다가 사람이 죽었는데 정작 센터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얼마의 보상금만 지급하고 가족과 합의했다. 센터 관리자 두 명이 검찰에 기소됐는데, 아직까지 처벌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그가 정직원이었다면 어땠을까. 비 오는 날 위험하게 전봇대위에 올라갔을까. 산재처리 못 받고 합의금 얼마 받고 끝내야 했을까. 센터가 "책임이 없다"고 일관할 수 있었을까.

의정부센터 사고로 도급기사 문제가 이슈가 되고 미래부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방송통신업의 가장 큰 문제였던 도급기사 문제가 해결되는 듯했다. 그런데 미래부에서는 해당 업무는 지자체로 이관된 업무이니 시·도지사가 관리·감독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옥상에 탭이 있는 경우와 아파트는 여전히 도급기사가 작업을 해도 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위험의 외주화가 합법이라고 손을 들어주는 꼴이다.

추락사고가 났던 의정부센터에서는 관행적으로 하던 것이니 계속 도급기사를 쓰겠다고 한다. 어떤 센터는 도급기사가 하면 안 되는 지역에 조합원(정직원)들을 몰아 놓고 그 외 지역은 도급기사를 쓰겠다는 편법을 내놓았다. 센터장협의회에서 나온 말은 가관이다. 만약 불법도급과 관련해 시정명령이나 벌금이 나오게 되면 행정소송을 걸겠다고 한다. 노동자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자는데, 소송을 걸어서라도 위험으로 내몰겠다는 것인가.

SK브로드밴드의 설치·장애처리·망관리 업무를 하는 노동자는 전국에 3천명이 넘는다. 그중 35% 정도의 노동자가 불법도급 형태로 일하면서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일을 하면서 사고가 없어야 하겠지만 만약 사고가 나더라도 산재처리는 받아야 하지 않을까. 살기 위해 일하러 간 일터에서, 더 이상 죽어서 돌아오는 사람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설령 크고 작은 사고로 다치거나 사망에 이른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보상은 정부와 기업에서 응당 해 줘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노동자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했던 산재보험의 취지인 것이다.

위험을 외주화해서라도 비용 부담을 줄이겠다는 사용자의 의식변화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정부도 그에 상응하는 진전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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